PB시대 빛과 그림자

이마트 PB(Private Brand)제품인 ‘노브랜드 초코파이’와 오리온 NB(National Brand)제품인 ‘초코파이’는 다를까. 과거 PB제품은 ‘가성비가 좋은, NB제품의 대체품’으로 꼽혔다. 그랬던 PB가 최근 달라졌다. 이젠 ‘NB제품 못지않은 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값이 싸고 품질까지 좋은 제품이 넘쳐날 테니 소비자에게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성큼 다가온 PB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취재했다.

품질을 차별화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브랜드의 힘이 약해지고 PB시장이 성장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품질을 차별화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브랜드의 힘이 약해지고 PB시장이 성장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까지만 해도 PB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산물이었다. 경기침체 와중에 값싼 PB가 마트ㆍ편의점에 쏟아지면서 일부 소비자는 열광했고, PB 시장은 커졌다. 일부에선 ‘값만 싸지 품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반짝인기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그게 아니었다. 쿠팡ㆍ마켓컬리 등 온라인 플랫폼 업체까지 PB 시장에 뛰어들면서 유통업계의 지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 ‘PB시대가 곧 열릴 것’이란 전망도 곳곳에서 쏟아진다. 

PB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대표 업체는 이커머스 공룡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 7월 PB 사업부문을 분할해 별도의 자회사 씨피엘비(CPLB)를 설립했다. 이곳의 수장으론 미국 아마존 출신의 PB 전문가 미넷 벨리건 부사장을 임명했다. 쿠팡이 PB사업을 본격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쿠팡은 2017년 첫번째 PB브랜드 ‘탐사’를 론칭한 이래 꾸준히 PB브랜드를 확대해 왔다. 성과도 냈다. ‘탐사 생수’는 쿠팡의 생수 카테고리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곰곰(식품)ㆍ코멧(생활용품)ㆍ베이스알파(의류잡화)ㆍ줌(세제) 등 PB브랜드도 부쩍 늘어났다. 9월 10일 현재 쿠팡의 PB브랜드는 16개, 제품 수는 1700여개에 이른다. 

흥미로운 점은 PB의 가치가 이전과 다르다는 거다. 기존 PB제품이 ‘NB(National Brand) 제품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저렴한 대체품’이라는 혹평을 받은 게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NB 못지않다’ 혹은 ‘NB보다 품질이 좋다’는 호평을 받는 PB제품도 많다. 

실제로 온라인 식료품 업체 ‘마켓컬리(컬리)’가 선보인 PB브랜드 ‘컬리스’는 프리미엄 PB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2월 처음 출시된 ‘컬리스 동물복지 우유’는 국내 10여개뿐인 동물복지농장에서 생산한 원유를 사용한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우유제품의 경우 목장에서 공장으로 옮겨 살균처리를 마친 제조일자를 표기하는 반면 컬리스 동물복지 우유는 착유일자를 기재해 소비자가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월ㆍ수ㆍ금요일에 주문 시 착유한 지 24시간 이내의 우유를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PB의 면모 

NB브랜드보다 높은 퀄리티를 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켓컬리는 올해 주요 사업 계획으로 ‘PB 확대’를 꼽고 ‘동물복지 유정란’ ‘R15 모닝롤’ ‘아삭한 열무김치’ ‘돈육햄’ 등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PB브랜드가 기존 NB브랜드의 대항마로 꼽히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PB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2015년 론칭)’가 대표적인 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무신사는 온라인 패션유통업체로 거듭난 데 이어 PB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무신사 내부에 무신사 스탠다드의 기획·제조를 담당하는 별도의 팀을 갖췄을 정도다. 그 결과 무신사 스탠다드는 매출액 630억원(2019년)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무신사 측은 “국내 대표 SPA 브랜드로 입지를 다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에선 무섭게 성장하는 ‘무신사 스탠다드’가 일본계 SPA 브랜드 유니클로(에프알엘코리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켓컬리의 PB브랜드 컬리스는 프리미엄 PB를 지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마켓컬리의 PB브랜드 컬리스는 프리미엄 PB를 지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PB시장을 노리는 업체 중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도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앱 상에서 신선식품·가공식품 등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B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6월부터 B마트 PB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0.7공깃밥’ ‘네쪽식빵’ ‘손바닥 케익’ 등 10여종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달앱 주요 이용자인 1~2인 가구에 특화한 PB제품을 선보이고 있다”면서 “향후 생활용품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혀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가 PB사업에 뛰어들며 내세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 ‘플랫폼 차별화를 위해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품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어쨌거나 주목할 점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더 이상 ‘유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거다. 문제는 시장 장악력이 커진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유통과 제조를 아울렀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느냐다. 

그 결과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국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은 유통과 제조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PB란 발판을 통해서다. 현재 아마존이 운영하는 PB브랜드는 135개(이하 2019년 하반기 기준·출처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에 달한다. 아마존과 독점 계약을 맺은 브랜드를 합치면 450여개, 제품 수는 2만여개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아마존에서 본 미래 

아마존이 PB브랜드를 확대하자 기존 제조사를 위협한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실제로 그랬다. 아마존이 자신들의 PB제품을 사이트 상단에 노출하면 기존 NB제품이 배기질 못했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PB상품을 제작하는 것도 일종의 ‘기울어진 전략’이었다. 

유통업계 PB를 둘러싸고 숱한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유통업계 PB를 둘러싸고 숱한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유력 대선후보로 꼽혔던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해 아마존 규제 법안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워런 의원은 “거대 기업이 중소기업을 희생시키고 혁신을 억누른다”면서 “아마존이 PB제품을 아마존 닷컴에서 판매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해 12월 ‘아마존이 비즈니스를 압박하는 방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아마존이 제조사의 이익까지 독점해 신제품 개발을 어렵게 만들고, 제조사가 살아남기 힘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국내 시장에선 유통업계 PB를 둘러싼 잡음이 새어 나온 지 오래다. 유통업체가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제조사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불공정행위를 일삼은 건 단적인 예다.[※참고 : 한국개발연구원(2016년)의 설문조사 결과, PB 납품업체의 10.0%가 유통업체로부터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행위별로는 납품단가 인하 요구(34.0%), 포장변경 비용 전가(22.0%), PB 개발 강요(14.0%) 순이었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 업체까지 뛰어들면서 제조사가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지점에선 이런 반론이 나올 법하다. “저렴한 PB제품이 많아지면 소비자로선 좋은 게 아니냐.”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PB는 ‘제품 개발’의 산물이 아니다. 값싸고 어느 정도의 품질을 갖춘 제품을 빠르게 유통하는 것이다. ‘PB시장이 커질수록 혁신제품을 찾아보기 어렵고, 이는 결코 소비자에게 좋은 흐름이 아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병규 연세대(경영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유통사와 제조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조사는 제품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제조사가 PB제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동기부여나 여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에겐 ‘비슷비슷한 제품’이 넘쳐나는 시장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2016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PB 납품업체의 51.8%가 “NB제품의 특성을 약간 변형해 PB제품을 만든다”고 답했고, 26.2%는 “NB제품의 포장 형태만 바꿔 PB제품을 만든다”고 응답했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경우는 13.3%에 그쳤다. 제조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조사의 이름을 건 NB제품은 높은 소비자 신뢰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면 PB제품은 단가를 낮추는 데 집중해 비싸고 품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 어렵다.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PB시장이 커질수록 기존 메이저 제조사의 시장지배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징조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배달의민족 B마트에서 판매하는 케첩과 마요네즈는 국내 케첩·마요네즈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오뚜기가 만들고 있다.

즉석밥 역시 관련 시장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이 제조한다. 앞서 롯데제과는 이마트에 노브랜드 초코파이를 납품해 오고 있다. 그동안 중소제조업체가 주로 만들던 PB제품에 메이저 제조사가 뛰어들면서 이들 업체의 시장지배력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거다. 제조사 관계자는 “제품 판로 확대 차원에서 일부 PB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PB제품 생산에 소극적이던 메이저 제조사들도 PB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그만큼 PB시장이 커졌기 때문 아니겠나”고 말했다.

미국에선 아마존이 PB를 급격히 확대하면서 부작용이 터져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선 아마존이 PB를 급격히 확대하면서 부작용이 터져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새로운시장이 열릴 땐 장점과 단점이 교차한다. PB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에게 가성비 좋은 PB제품이 전달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갑을관계(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품질저하(제조사의 혁신 의지 하락), 메이저 제조업체의 시장지배력 확대(중소형 제조업체 위협) 등 따져봐야 할 문제점도 숱하다. 그래서 중요한 건 PB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이런 문제점을 사전에 숙지하는 것이다. 

김병규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브랜드의 힘은 약해지고, PB시장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들은 PB를 통해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자신들의 장악력을 넓히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존 유통사, 제조사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각 업체가 다가오는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경쟁력을 점검해야 할 때다.” 

이지원ㆍ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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