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금은 ‘웨이팅 타임’

지난 2분기 반짝 호황을 누린 반도체에 다시 먹구름이 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듯싶었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일렀다. 그렇다면 반도체는 언제쯤 부진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 도사리고 있는 변수가 숱하다”면서 “2021년은 돼야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반도체의 회복 시점을 예측해 봤다.

3분기 들어 반도체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2021년은 돼야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3분기 들어 반도체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2021년은 돼야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반도체의 반등을 이끌었던 코로나 특수가 반짝 효과로 끝났다.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간 상승세를 이어오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지난 7월 하락세로 돌아섰다. 업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변수는 없었다. 8월엔 반도체 가격의 하락 곡선이 더욱 가팔라졌다. 

하락세엔 예외가 없었다. 서버ㆍPCㆍ모바일용 D램은 물론 낸드플래시까지 일제히 가격이 떨어졌다. 특히 지난 2분기 반도체 반등을 이끈 서버용 D램(DDR4 32GB) 가격의 하락이 뼈아팠다. 지난 4~6월 143.15달러(약 17만원)까지 치솟았던 서버용 D램의 고정거래가격(이하 동일)은 8월 들어 128달러로 고꾸라졌다. 같은 기간 PC용 D램(DDR4 8Gb)은 3.31달러에서 3.13달러로, 모바일용 D램(LPDDR4 8GB)은 32.3달러에서 29.5달러로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역시 4.68달러까지 오른 이후 4.35달러로 하락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서버용 D램과 모바일용 D램의 가격은 오는 4분기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반등하던 반도체가 하락세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쉽게 말해, 공급은 넘치고 수요는 부진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반도체 가격을 띄운 코로나 특수의 실체도 사실은 ‘비대면 문화로 인한 수요 증가’보단 ‘불확실성 우려에 따른 재고 확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어규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3분기는 반도체 성수기”라면서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불확실성 우려가 커지면서 서버업체들이 비수기였던 지난 1~2분기에 미리 반도체를 사들였고, 재고가 쌓인 탓에 3분기 수요가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서버용 D램 전망 = 그렇다면 반도체 수요는 언제쯤 살아날까. 특히 매출 비중이 높은 서버용 D램과 모바일용 D램의 수요 회복이 관건이다. 서버용 D램부터 따져보자. 먼저 고객사들이 비축해놓은 반도체 재고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두달여 뒤엔 재고가 소진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예측했다. 이를 감안하면 4분기부터는 수요가 살아나기 시작해 적어도 오는 2021년 1~2분기엔 가격이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고 소진 이후 수요가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를 두고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박상순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1년엔 반도체 가격이 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공급 측면에서 올해 투자가 없다면 2021년엔 공급이 타이트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고객사들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구매를 안 할 순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요 증가분에 대비해 생산능력을 확충해 놓았기 때문에 그만큼 수요가 늘지 않으면 공급과잉이 쉽게 해소되진 않을 것”이라면서 “1~2분기 땐 재고 확보 목적이 컸던 만큼 그 정도의 수요가 다시 발생하긴 어렵고, 다만 수요가 완만하게 회복세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인텔의 신형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시기도 중요 이슈다. 신형 CPU가 출시되면 서버업체들은 서버를 업그레이드하고, 이는 서버용 D램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텔의 신형 CPU 출시는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모바일용 D램 전망 = 그럼 모바일용 D램은 어떨까. 서버용 D램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낫다. 위축됐던 모바일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의 개화 여부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5G 시장이 본격 개화하면 모바일 교체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1개 모바일에 탑재되는 D램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콘텐트 수요 증가와 인프라 확장에 따라 서버용 D램 수요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긍정적인 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4.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애플이 올 하반기 첫 5G 스마트폰(아이폰12)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아이폰12가 5G 시장의 개화를 한발짝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5G 시장이 열린다고 해도 당장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용 D램의 출하량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세트 판매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거나 서프라이즈를 기대할 만한 여력이 있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따져봐야 할 변수는 또 있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경우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미국이 승인을 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화웨이 변수 호재인가 악재인가

화웨이는 반도체 시장의 큰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핵심 고객사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에서 화웨이와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3%, SK하이닉스는 1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0조원에 이른다. 

화웨이는 서버용ㆍ모바일용 D램을 모두 취급하지만 당장 모바일용 D램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화웨이가 제재 전에 재고를 축적하기 위해 반도체를 사재기하고 있는데, 반도체 가격 하락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봤을 땐 다를 수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 중국의 세트 제조사들이 화웨이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빠르게 대체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수요가 더욱 위축되고 불확실성 우려도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를 둘러싼 호재도, 악재도, 변수도 많다. 올해는 아직 기다려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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