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병규 연세대 교수

그동안 유통업체는 말 그대로 ‘유통’만 했다. 제조사로부터 받은 물품이나 제품을 소비자에게 전달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들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쿠팡ㆍ마켓컬리 등 온라인 유통업체(플랫폼 업체)까지 가세했다. 유통만 하던 플랫폼이 진화를 시작했다는 건데, 김병규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를 ‘P-플랫폼(Producing-Platform)의 시대’라 명명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김 교수를 만나봤다.  

김병규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유통업체, 제조사가 공존해야 시장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사진=천막사진관]
김병규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유통업체, 제조사가 공존해야 시장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사진=천막사진관]

“독점을 막기 위해 플랫폼 업체가 자신의 플랫폼을 활용해 사업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 지난해 미국에선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마존이 PB(Private Brand)를 급격히 늘리면서, 아마존 플랫폼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사사업자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통부터 제조까지 아우르려는 아마존의 야욕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그로부터 1년여, 한국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이커머스 업체 쿠팡은 지난 7월 PB사업을 담당할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했다. 마켓컬리무신사배달의민족 등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업체도 올해를 기점으로 PB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단순한 플랫폼이 아닌 생산과 유통을 겸비하는 ‘P-플랫폼’이 됐다는 거다. P-플랫폼이라는 용어를 고안한 김병규(46) 연세대(경영학) 교수를 만나 P-플랫폼 시대 전망을 들어봤다.  

✚ ‘P-플랫폼’이 뭔가요.  
“‘생산하는 플랫폼(Producing-Platform)’이라는 의미예요.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이 상품을 전달하는 유통업체에서 생산과 유통을 겸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죠.”

✚ 아마존이 PB를 판매한 지는 꽤 오래되지 않았나요.  
“맞아요. 아마존은 2009년 처음으로 문구류 PB브랜드인 ‘아마존 베이직’을 출시했어요. 주목할 건 2017년 이후 PB브랜드와 제품 수를 급격히 늘렸다는 점이죠.”

현재 아마존의 PB브랜드(아마존 독점 브랜드 포함)는 450여개, 제품은 2만여개에 달한다. 생활용품ㆍ식품ㆍ의류ㆍ가전 등 거의 모든 상품을 아우른다.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업체도 아마존처럼 PB브랜드를 늘리고 있다. 쿠팡을 필두로 마켓컬리 · 무신사ㆍ배달의민족 등이 P-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유통을 넘어서 제조까지 넘보는 이유가 뭔가요.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당초 플랫폼은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얻는 방식이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론 충성고객을 모을 수 없어요. 소비자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 충성고객을 모으려는 이유가 뭔가요.  
“충성고객을 확보하면 어떤 사업으로든 연계가 가능해요.”  

미국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은 사업분야를 다각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온라인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은 사업분야를 다각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예컨대 아마존이 단순 플랫폼에 그치지 않고 직매입 방식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물류를 직접 하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만 고객서비스부터 제품가격까지 통제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죠. 그렇게 충성고객을 모으고 나면 그들을 대상으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요. 아마존이 보험시장 진출을 꾀하는 건 단적인 예죠.” 

✚ 그렇다면 온라인 플랫폼들이 PB를 확대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부터 제조사에까지 위협이 될 수 있어요.”  

✚ 기존 유통업체도 PB를 운영해오지 않았나요.  
“과거엔 PB시장과 유명 브랜드 시장이 명확히 구분됐어요. PB제품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유명 브랜드에 미치지 못했죠. 지금은 달라요.”  

✚ 어떻게 다른가요.  
“아마존의 PB 비타민 브랜드 ‘레블리’를 예로 들어 볼게요. 레블리는 유기농 식물원료로 만든 프리미엄 비타민 브랜드예요. 유명 비타민 브랜드인 센트룸보다 상위에 포지셔닝돼 있죠. 최근의 PB는 유명 브랜드보다 품질이 좋거나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 때문에 기존의 브랜드 제조사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죠.”  

✚ 하지만 한국시장은 미국시장과 다르지 않나요. 아마존 PB가 위협적인 건 아마존이 온라인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꼭 그렇다고 보긴 어려워요. 한국 온라인 쇼핑시장에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쿠팡이나 마켓컬리, 무신사 등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이런 업체들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죠.”  

✚ 그렇다면 P-플랫폼의 역습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존의 브랜드(제조사ㆍ유통사)들은 무얼 해야 할까요.  
“브랜드의 팬을 만들어야 해요.”  

✚ 어떤 의미인가요.
“브랜드의 팬은 브랜드에 감정적으로 애착을 갖는 이들이에요.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등을 고려해서 이성적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충성고객’과는 구분되죠.”  

 

✚ 국내엔 팬을 보유한 브랜드가 많지 않은 듯해요.  
“최근에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봐요. 젠틀몬스터나 마켓컬리 등을 꼽을 수 있겠죠.”  

✚ 이유가 뭘까요.  
“국내 브랜드들은 그동안 상업적 의도를 지나치게 드러내 왔어요. 어떻게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을 소비자에게 여과 없이 보여준 거죠.”

✚ 기업들이 치부를 드러냈다는 건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브랜드가 소비자와의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가지고 있으니 소비자를 비즈니스 상대로 생각하고, 차별하기도 한 거죠. 하지만 이제 소비자의 정보력이 좋아졌고 브랜드의 대안도 많아졌어요. 브랜드가 달라져야 할 때가 된 거죠.”  

김병규 교수는 아마존의 공세에도 살아남은 11개 브랜드(트레이더 조ㆍ넷플릭스 · 파타고니아ㆍ룰루레몬ㆍREI협동조합ㆍ이케아ㆍ인앤아웃ㆍ블루보틀ㆍ테슬라ㆍ나이키ㆍ애플)를 통해 브랜드가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이들 업체엔 공통점이 있었다. 명확한 타깃, 독자적 상품, 쉬운 선택, 차별화된 운영방식, 감춰진 상업적 의도 등 다섯 가지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이다.  

✚ 팬을 만들기 위해 브랜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먼저 문화적으로 타깃을 명확히 정해야 해요. 인구ㆍ나이ㆍ소득 등으로 타깃을 정하는 시대는 지났죠. 20~30대 여성이라고 해도 각자의 취향이나 선호가 모두 다르죠.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이  ‘세련된 취향을 가진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건 좋은 사례예요. 소비자는 ‘나를 위한’ ‘내게 맞는’ 브랜드라고 여길 때 팬이 되죠.”

✚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상품 아닐까요.  
“독자적인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나이키의 경우 제품부터 판매방식까지 꾸준히 혁신을 추구해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브랜드’라는 철학을 실천하는 거죠. 의류업체 파타고니아 역시 ‘사업을 하는 이유가 환경보호를 하기 위해서다’는 철학을 갖고 있고, 재활용 자원을 활용해 만든 상품을 출시하면서 실천하고 있죠. 이들 브랜드가 대체 불가한 이유죠.”  

✚ 하지만 상품이 너무 많은 시대예요.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죠.  
“그래서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쉬운 선택을 도모해야 해요. 일반적으로 상품이 무조건 많아야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소비자가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면 막상 선택한 후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다른 선택을 할 걸 그랬다는 생각 때문이죠.”  

“브랜드, 팬을 만들어라”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다양해요. 미국 햄버거 브랜드 인앤아웃의 메뉴는 단 세가지에 불과하지만 소비자 만족도는 높죠. 맥도날드의 햄버거 종류가 20여개에 달하는 것과 비교되죠. 이케아는 선택을 돕기 위해 쇼룸을 활용하죠. 넷플릭스처럼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해 추천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요.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것’이 리테일의 미래 경쟁력이 될 거라고 봐요.”  

✚ 운영방식의 차별화도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다른 브랜드가 활용하지 않는 운영방식을 찾는 게 중요해요. 한때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지만 이를 따라한 후발업체는 성공하지 못했죠. 제조사와 유통사 모두 현재의 운영방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다른 업체와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 이런 방식으로 제조사와 유통사가 살아남아서 P-플랫폼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뭔가요.  
“어느 시장이든 ‘독점’은 위험해요. 특히 온라인 플랫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이죠. 플랫폼을 이용하는 제조사 · 판매자는 플랫폼의 ‘룰’을 따를 수밖에 없죠. 독점적 위치의 플랫폼이 불공정한 룰을 만들면 제조사ㆍ판매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플랫폼을 견제해야 하는 첫째 이유죠.”

✚ 두번째 이유는 뭔가요.  
“기본적으로 제조사와 유통사는 역할이 달라요. 제조사는 제조사와 경쟁해서 혁신적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하죠. 하지만 독점적 플랫폼이 PB시장을 장악하고 제조사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 제조사가 혁신을 추구하기 어려워지죠. 오프라인 유통업체, 온라인 플랫폼, 제조사 서로가 공존해야 시장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봐요.”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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