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특약
예민의 새로운 레지던시

한국의 예술·문화가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가가 여전히 많고,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대 학생 다섯명이 머리를 맞댔다. 민·관·학이 함께하는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 소셜리빙랩’ 수업의 일환이다.

예민팀 다섯명의 학생들은 생계가 어려운 지역 예술가를 돕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예민팀 다섯명의 학생들은 생계가 어려운 지역 예술가를 돕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281만원(이하 문화체육관광부ㆍ2018년 기준). 예술가가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연평균 개인 수입이다.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예술가의 비중은 전체의 72.7%에 달한다. 예술가가 여전히 ‘배고픈 직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K-팝’이 전세계적 인기를 끄는 지금, 한국 예술계의 어두운 뒷면이다.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러 지자체가 도시에 문화·예술 콘텐트를 접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부천시 등 7개 도시를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데 왜 정작 예술가의 삶은 ‘풍요’와 거리가 먼 걸까. 

사실 예술가의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는 이들이 늘면서 수차례 공론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결 과정은 더디기만 하다. 예술인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지난 20대 국회 때 발의됐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폐기된 건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가톨릭대 강영모·김하늘·이영현·이유진·임희연 학생이 머리를 맞댔다. 가톨릭대가 지난 3월부터 운영한 교과목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 소셜리빙랩’의 일환이었다. 팀명은 예술가 문제를 민·관·학이 협력해 풀어나간다는 의미에서 ‘예민’으로 정했다.[※참고 :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 소셜리빙랩은 학생들이 직접 골목을 누비며 사회문제를 마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수업이다. 부천시·부천시사회적경제센터·부천문화재단이 함께하는 협업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먼저 예술가의 처우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술 경력 단절을 겪는 예술인은 전체의 68.2%(2018년)로 2015년 66.3%보다 되레 늘었다. 경력 단절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입 부족(68.2%)’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니 자신만의 창작 공간을 갖는 것도 어려워했다. 집과 분리된 창작 공간을 보유한 이들은 27.0%에 그쳤다.  

학생들은 그래서 예술가에게 창작공간과 경제적 지원을 함께 제공하는 ‘레지던시(residency)’를 주목했다. 사실 레지던시는 이미 국내외 예술계에서 활성화한 프로그램이다. 지자체ㆍ단체ㆍ기업 등이 예술가들에게 일정 기간 거주ㆍ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계도 숱했다.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인 탓에 예술가에게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 레지던시가 형성된 후 인근에 상업적 야시장이 생겨나면서 의미가 퇴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민(예술가)ㆍ관(부천시)ㆍ학(가톨릭대)’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레지던시를 고민했다. 해답은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찾았다.

임희연 학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히 예술가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지양했어요. 대신 예술가가 예술 관련 멘토링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받는 방법을 택했죠. 예술가로선 창작공간과 수입을 보장받고, 예술 활동에 관심이 있는 멘티들은 전문가의 조언을 얻을 수 있으며, 지자체는 의미 있는 사업에 지원하는 게 가능해 ‘1석3조’라고 생각했죠.”

학교로서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예술가에게 공간을 내주면 방학기간 방치되는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학교를 예술가들에게 개방해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고, 학생들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는 건 ‘덤’이었다. 

레지던시와 민ㆍ관ㆍ학을 접목하기로 결정한 예민팀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테스트(프로토타입·prototype)해 보기로 했다. 부천시에서 활동하는 웹툰 작가를 멘토로 섭외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웹툰 제작 기초인 아이디어 구상ㆍ스토리텔링ㆍ콘티 작업부터 채색작업까지 멘티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도약을 위한 절반의 성공

동시에 이런 내용을 가톨릭대 생활 앱인 ‘에브리타임’ 등에 홍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제약이 적지 않았지만 예민팀 학생들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학교 관계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이유진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어요. 다행히 학교 일부 공간(성심관)을 활용할 수 있었죠. 코로나19 사태만 진정된다면 공간 확보는 어렵지 않을 듯했어요.”  

아쉬운 점도 있었다. 지원자(멘티)가 생각만큼 모이지 않았다. 김하늘 학생은 “사실 3~4명 정도는 지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 지원자는 단 한명이었다(웃음)”면서 “평소 그림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던 단 한명의 학우를 위한 프로그램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웹툰만으론 한계가 있었다는 건데, 이는 ‘나쁜 결과’인 것만은 아니었다. 멘토링 분야를 다양하게 만든다면 멘티 수요를 확보할 가능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천시가 매년 다양한 영상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상예술 분야의 레지전시는 시도할 만했다. 

소셜리빙랩을 통해 3개월간 예술가의 현주소를 분석한 예민팀은 부천시에 ‘민ㆍ관ㆍ학 레지던시’를 제언했다. 강영모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부천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예술가의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건 관官이 주도해야 하죠.” 이영현 학생이 말을 이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부천시가 멘토를 모집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더욱 양질의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부천시는 ‘문화도시’를 자처한다. 웹툰의 요람이란 평가도 받는다. 예민팀이 제언한 ‘민ㆍ관ㆍ학 레지던시’는 부천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부천시의 답이 궁금하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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