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시대 또다른 의견

‘PB(Private Brand)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통업체들은 PB 론칭에 적극적이다. PB상품을 판매하는 게 비용 면에서 유통사에 이득인 데다, 가성비·독점판매를 내세워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서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PB시장이 커지자 유통사의 PB가 제조사의 NB(National Brand)를 넘어설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유통사가 공장을 세우지 않는 한 NB를 꺾지 못한단 주장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PB를 둘러싼 또 다른 의견을 취재했다. 

유통사의 PB상품이 제조사의 NB상품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PB상품의 한계도 뚜렷하다. 사진은 삼척중앙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사진=이마트 제공]
유통사의 PB상품이 제조사의 NB상품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PB상품의 한계도 뚜렷하다. 사진은 삼척중앙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사진=이마트 제공]

‘PB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PB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유통업체 중 PB상품을 출시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다. 비용은 적게 드는데 마진은 높고, 독점판매로 충성고객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서다. PB를 가진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이마트 PB ‘노브랜드’다. 노브랜드의 생필품과 가공식품은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좋다’는 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당초 이마트 내에서 팔던 PB였지만 아예 단독매장(노브랜드 스토어)이 나올 만큼 가성비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오프라인 유통사가 PB를 우후죽순 내놓는 동안 온라인 플랫폼업체(온라인 유통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쿠팡·마켓컬리·무신사 등 온라인 플랫폼업체들은 PB상품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이들은 각자 브랜드 콘셉트를 반영한 PB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지난 7월 PB상품을 제작·판매하는 자회사 ‘CPLB’를 출범한 쿠팡은 현재 12개의 PB를 보유하고 있다. 쿠팡의 PB상품 ‘탐사수’는 저렴한 가격으로 자사 생수 부문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PB ‘컬리스’를 론칭할 때 그동안 쌓아온 MD 노하우를 담아 믿을 만한 품질의 식품을 선보이겠다는 걸 목표로 내세웠다. 실제로 컬리스의 대표 제품 ‘동물 복지 우유’는 마켓컬리 내 우유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온라인 의류유통플랫폼 무신사의 PB ‘무신사 스탠다드’는 베이직한 디자인의 의류를 판매한다. 지난해 무신사 스탠다드의 매출은 630억원대로 전체 매출(2197억원)에서 28%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처럼 PB가 유통가에서 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PB가 NB를 넘어설 만큼 위협적일까. 자신만만한 유통사와 달리 PB상품 제조사들은 “PB상품이 NB상품을 온전히 대체하긴 힘들다”며 입을 모았다. 이유가 뭘까. 우선 PB상품과 NB상품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대형 식품업체 A사의 관계자는 “식품업계에선 PB상품은 마케팅용으로 트렌드를 반영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NB상품은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트렌드보단 대중성을 추구하고, 소비자가 꾸준히 찾을 만한 제품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같은 제품군에서 PB상품이 늘어나더라도 NB상품의 수요는 여전히 있다는 거다. 

PB와 NB 성격 달라

PB상품이 NB상품만큼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PB상품과 NB상품 간 질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서다. 중견 식품업체 B사 관계자는 “유통사에서 PB상품 제조를 의뢰할 때 단가를 낮추는 데 중점을 둔다”며 “NB상품에 사용하는 품질 좋은 재료를 쓰면 단가가 그만큼 높아지니 PB상품에는 그런 재료를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회사에서 동일한 품목으로 만들었더라도 NB상품보다 품질이 좋은 PB상품이 나오긴 어렵다는 거다.

그는 “우리 회사의 NB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가치를 믿고 구매하는 것”이라며 “가성비를 내건 PB상품과 다르니 가격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밝혔다.

PB의 한계는 또 있다. 제조사가 PB상품의 비중을 늘리는 데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PB상품이 NB상품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데다, PB상품 제조로 얻는 수익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대형 식품업체 C사의 관계자는 “아무래도 PB상품을 만들면 유통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그렇다고 PB 비중을 늘릴 필요가 없는 이유는 수익성도 낮고 브랜딩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제과업체 D사도 “온라인 유통사의 PB상품을 제조하긴 했지만 NB상품에 비해 워낙 품목이 적어 실적에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PB상품이 NB상품을 온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사진=GS리테일 제공]
PB상품이 NB상품을 온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사진=GS리테일 제공]

다만 기업의 규모에 따라 PB상품의 비중은 달라진다. 유명한 NB상품을 보유한 대기업 제조사의 경우 매출에서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NB상품이 있긴 하지만 품목이 적고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은 매출에서 PB상품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중소 빙과업체 D사의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사에 입고하는 제품 비중이 PB와 NB가 9대 1에 달할 때도 있다”며 “NB상품을 늘리고 싶지만 판관비 여유가 없어 대기업의 상대가 안 된다”고 털어놨다. 

“역사 속에선 NB가 승자”

온라인 유통사가 PB상품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하는 온라인 유통사가 다른 판매자의 제품을 밀어내고 PB를 키울 수 있냐는 거다. A사 관계자는 “온라인 유통사에 PB를 납품하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이 크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오프라인에서 비싼 NB상품도 온라인에선 반값으로 팔리지 않나”며 꼬집었다.

PB와 NB의 경쟁을 두고 ‘승자는 이미 NB로 판명 났다’는 의견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과) 교수는 “유통업계의 역사를 보면 PB와 NB 싸움에서 NB가 이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유통사는 제조사의 핵심 역량을 쉽게 빼앗지 못한다. 게다가 공장을 세우지 않는 한 유통사로선 제조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조사는 바보가 아니다. PB가 위협이 되면 되레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역습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앞으로도 PB와 NB 간의 전쟁은 이어질 거다. 언젠간 유통사와 제조사가 타협해야 할 시점이 온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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