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연대은행의 성과와 한계

청년들에게 은행 문턱은 한없이 높다. 그러다 보니 급전이 필요할 때 가족 외엔 마땅히 손 벌릴 곳이 없다. 2013년 참다 못한 청년들이 스스로 출자금을 내고 소액대출을 할 수 있는 협동조합(토닥)을 만들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청년들이 대신한 셈이었다. 정해진 이자도 없고, 추심도 하지 않는 이 시스템이 굴러갈지 의문이었지만, 이 협동조합은 8년이나 버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8년 성과를 짚어봤다. 

청년 대출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사진=뉴시스]
청년 대출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사진=뉴시스]

2013년 2월, 청년연대은행 토닥(옛 토닥토닥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청년 조합원(15~39세)으로부터 걷은 출자금으로 조합원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겠다는 취지였다. 토닥의 존재 이유는 충분했다. 비싼 학비를 대느라 빚쟁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취직을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청년들을 구제할 제도적 장치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꼰대 마인드가 통하던 시절,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은 사이에 청년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었다. 초대 이사장이었던 조금득 대표는 2013년 더스쿠프와의 인터뷰(통권 36호)에서 이렇게 밝혔다. “청년들이 고작 돈 몇 푼이 없어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 찍히지 않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숙제가 있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많고, 빚을 갚는 사람이 적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거였다. 토닥은 은행처럼 채권추심을 할 수 없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당시 조 대표는 “조합원을 믿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출금을 갚으려는 사람에겐 재무상담을 해주고, 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도 할 거다. 그런데도 실패한다면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을 할 계획이다. 청년 대출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15년, 다시 토닥을 찾았을 땐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조합원도, 출자금도, 대출금도 제법 늘어난 상태였다. 고정이었던 이자율 책정방식도 ‘자율’로 변경돼 있었다. 낼 사람은 내고 안 내고 싶은 사람은 안 내도 된다는 거다. 대출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다만 고질적인 애로사항이 있었다. ‘출자금과 조합비→대출→상환(이자)’으로 이어지는 토닥만의 시스템을 운영할 비용이 없다는 거였다. 이 때문에 토닥의 일부 관계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희생하고 있었다. 토닥이 추구하는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게 또 하나의 숙제였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5년 뒤인 지난 9월초, 토닥을 또 찾았다. 채권 추심이 없고, 이자도 자율적으로 받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다’이다. 토닥의 누적 출자금은 1억4559만원, 누적 대출금은 3억8713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2015년과 비교해 누적 출자금은 2.1배(2013년 대비로는 3.6배), 누적 대출금은 4.2배(53.4배)가 됐다. 규모가 훌쩍 커졌다는 거다. 

견실하게 성장한 토닥

가장 우려했던 대출금 상환율(2014~2019년)도 88.6%에 달했다. 채권추심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상환율은 그리 나쁘지 않은 수치다. 연락이 두절됐던 조합원이 취업을 했다면서 3년 만에 나타나 대출금을 몽땅 갚는 경우도 있었다. 자율적으로 받겠다던 대출금 이자율(2017~2019년)도 1.7% 수준을 유지했다. 더 놀라운 건 정기후원자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걷힌 정기후원금만 600만원에 달한다. 도움을 받았던 조합원 중 일부가 취직한 다음 정기후원자로 나선 결과다. 정지희 토닥 사무국장은 “초창기 조합원이었던 이들 가운데는 40대를 넘긴 이들도 있다”면서 “이들 중엔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기여하고 싶다’면서 후원만 하는 조합원들이 꽤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 턱없이 모자랐던 운영비 문제는 해결됐을까. 토닥은 조합비를 당초 3000원에서 1만원으로 인상해 운영비를 해결했다. 조합비를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조합비 인상이 새로운 조합원의 가입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지희 국장의 말이다. “어찌보면 토닥의 설립 취지와 상충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너무 낮은 조합비로는 상근자를 둘 여력도 없었으니 현실적인 타협이 이뤄졌다. 외부의 도움 없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도 조합비 인상에 한몫했다.” 

그럼에도 상근자의 급여는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올해 기준 시급 1만523원)보다 그리 높지 않다. 이 때문에 토닥 측은 조합비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외부사업을 병행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민간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용역사업을 수행한다든지, 청년들의 재무상담을 돕는 식이다. 지난해 KDB나눔재단·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사업비를 받아 창업지원기금 지원사업을 진행한 건 대표적 사례다. 

토닥 다시 흔드는 코로나19

유유미 전국주민협동연합회 상임이사는 “토닥은 청년들이 기존 대출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뢰에 기반해 만들고 운영하는 자조단체”라면서 “정부의 역할을 대신해온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여야 정쟁 탓에 미뤄지고 있을 때, 한 프리랜서는 재난지원금을 기다릴 수 없어 토닥을 통해 대출을 받았다. 재난지원금보다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는 거다. 유 상임이사는 “어렵고 힘든 청년들이 이 시스템 안으로 더 들어오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왔다.[사진=토닥 제공]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왔다.[사진=토닥 제공]

자! 이쯤 되면 토닥의 숙제는 끝난 걸까. 정 국장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말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생활비 대출이 가장 많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욕구가 다채로워지면서 대출 사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대출가능 액수를 150만원까지 늘렸는데, 지난 3월부터 다시 100만원으로 줄였다. 이유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이들의 수입이 확 줄고, 대출이 갑자기 늘어서다. 최근 들어 출자금이나 조합비 납부도 줄고 있다. 대출금 상환율도 주춤하고 있다. 토닥은 상환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언제든 납부만 하면 되니까 부담은 없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한다는 건 골치 아픈 문제다. 더 중요한 건 곤경에 빠진 청년들 모두를 토닥의 힘만으로 구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2013년 출범한 토닥은 만 7년을 버텼다. 숱한 진통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버텨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정부’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게 과연 토닥만의 숙제일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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