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쓰는 편지」
서로의 오늘을 위로하다

이 책에는 많은 이들의 소박한 오늘이 담겨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책에는 많은 이들의 소박한 오늘이 담겨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잠시 시간 괜찮으면 한 줄 써주실 수 있을까요?” 택시기사 명업식씨는 자신의 택시에 탑승한 손님에게 작은 노트를 건넨다. 생각나는 말을 편하게 적어달라는 부탁에 승객들은 의아하다가도 이내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육아 중인 워킹맘, 어머니와 병원 검진 결과를 듣고 택시에 탄 딸, 야근 후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직장인, 딸바보 아버지, 면접 가는 취준생…. 수많은 사람이 가족 사랑과 진로 고민, 연인을 향한 설렘, 세상 걱정과 바람들을 채웠다. 

「길 위에서 쓰는 편지」는 저자가 운전하는 택시의 승객들이 노트에 쓴 손편지 모음이다. 2019년 10월 28일 처음 만들어진 노트엔 세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260여편의 편지가 수록됐다. 글을 썼던 사람들이 SNS에 ‘#길위에서쓰는편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을 올리면서 이슈를 모았고, SBS ‘궁금한 이야기 Y’에도 사연이 소개됐다. 방송 이후 블로그, 맘카페, 인스타그램 등 세대별 주요 SNS에서 이야기가 회자되며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저자는 노트를 준비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뒤늦게 택시 운전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퇴사를 생각할 만큼 승객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짧은 시간이나마 승객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 한권의 노트를 준비하게 됐다.” ‘승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글을 써줄지’ 걱정이 많았지만 우려와 달리 어느덧 노트는 3권을 넘었다. 6개월 만에 517명의 승객들이 길 위에서 편지를 띄웠다. 

“어느날 한 손님에게 노트에 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며 노트 제목을 부탁드렸더니 ‘길 위에서 쓰는 편지’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명한 시인이셨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으로 잘 알려진 박준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름이 붙은 노트에는 아빠의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어린 손님부터 38살에 TOEIC 시험에 도전하는 아이 셋의 엄마, 코로나19로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간호사까지, 많은 이들의 소박한 오늘이 담겨 있다. 고단한 일상이지만 푸념보다 희망을 이야기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 책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다. 노트를 건네받은 승객들은 다른 승객이 남긴 기록 속에서 자기와 같은 삶의 흔적을 발견하곤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들려줄 진심 어린 이야기들을 편지로 남긴다. 양장 표지와 각 사연에 맞는 일러스트, 부록에 실린 ‘편지지’는 선물용 도서로서 소장가치도 높였다. 

일상에서 소통이 사라지고 있다.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서로에게 선뜻 말을 건네기 힘든 만큼 타인에게 속마음을 꺼내 보이거나 위로하는 일도 드물다. 이런 시기에 마주한 이 책은 그래서 더 소중한 선물 같다. 꾹꾹 눌러 쓴 행간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공감되는 이야기와 짧은 한마디는 웃음과 뭉클한 감동을 함께 선사한다. 

세 가지 스토리 

「레 망다랭1~2」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현암사 펴냄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가, 사회운동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를 무대로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모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한다. 좌파 잡지 ‘레스푸아’의 흥망을 중심으로 전쟁의 참담함을 안고 산 사람들의 죄책감, 지식인의 사회 참여문제 등을 그린다.

「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문학동네 펴냄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조차 유별나게 느껴지던 1950년대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두 주인공 루시와 앨리스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충격적 사건을 계기로 헤어진다. 이후 머나먼 나라 모나코의 낯선 도시에서 재회한다. 여전히 서로를 향한 의심과 욕망을 동시에 품은 이들의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1인칭 시점으로 교차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독자를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나는 행복하지 않다’. 불행할 이유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좀처럼 가시지 않는 마음의 비명을 들었다. 아나운서 출신 작가로 승승장구하던 저자는 불현 듯 깨달았다. 소신에 따라 앞길을 결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서슴지 않으며 그런 자신의 성실함을 내심 흡족하게 여겨왔지만, 그것이 한편으론 스스로를 방치하고 상처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의도는 선하지만 내게는 나쁜’ 열정과 노력을 바로잡아 가는 성찰기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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