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화 개인展

➊웅녀, 캔버스에 유채, 116.8×91㎝, 2020 ➋범망경梵網經, 캔버스에 유채, 97×130.3㎝, 2020 ➌알영-혁거세, 캔버스에 유채, 130.3×97㎝, 2018
➊웅녀, 캔버스에 유채, 116.8×91㎝, 2020 ➋범망경梵網經, 캔버스에 유채, 97×130.3㎝, 2020 ➌알영-혁거세, 캔버스에 유채, 130.3×97㎝, 2018

1987년 7월 9일, 이한열의 장례식에 커다란 걸개그림이 우뚝 섰다. ‘그대 뜬 눈으로’라는 작품에 부활한 이한열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자신의 장례식 행렬을 이끌었다. 이 걸개그림을 그린 최민화 작가는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부랑’ ‘분홍’ ‘유월’ ‘회색 청춘’ 등 문제적 연작을 이어가며 민중의 삶을 캔버스에 담아 왔다. 그러던 그가 1990년대 말부터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고대 시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Once Upon a Time’ 연작을 통해 그는 역사학자가 아닌 화가의 입장으로 신화 속 주인공들을 불러냈다. 이번 전시회 ‘Once Upon a Time’에서 그가 20여년 몰두해온 주제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서양의 신화적·종교적 도상圖像의 형체와 상징성을 연구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 민화, 그리스로마신화, 르네상스 회화, 무슬림의 종교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유다. 웅녀에게 마늘과 쑥을 건네는 단군신화의 한 장면은 이브가 아담에게 사과를 먹자고 유혹하는 장면과 중첩되고, 르네상스 회화에 등장하는 근육질의 남성과 민화 속 잉어·거북·연꽃 등이 공존하는 식이다.

1층 전시장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서동요’의 선화공주와 서동은 달빛 아래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이고, ‘정읍사’의 여인은 산마루에 올라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린다. 2층 전시장에선 신화 속 인물들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고, 주몽은 백성들과 엄체수를 건넌다. 캔버스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은 그림을 더욱 집중해서 들여다보게 만든다. 지하 전시공간에선 작가의 탐구정신과 회화적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서 주목할 건 시공간을 초월한 인물들뿐만이 아니다. 캔버스 위에 엷게 뿌려진 색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연작에서 작가는 한국의 오방색과 힌두문화의 문화적 색감을 사용해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파스텔톤을 만들어냈다. 마치 고대의 시공간이 희미하게 재생되는 듯한 효과를 준다. 민중화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신화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Once Upon a Time’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0월 11일까지 열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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