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필승론에 숨은 실패경영
남들도 다 하는데 성공이 쉬우랴

‘신사업=화장품’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유통ㆍ패션ㆍ식품업계를 가리지 않고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화장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데다 다른 업종과의 접점이 많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화장품 신사업’으로 성공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신사업=화장품 등식’이 실패 방정식으로 전락한 이유를 취재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화장품 사업을 택하는 업체가 많다.[사진=뉴시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화장품 사업을 택하는 업체가 많다.[사진=뉴시스]

등산복 회사가 수분크림을 만들고 미원과 고추장을 만들던 회사가 폼클렌저를 판다. 백화점업체가 화장품 원료업체를 인수하기도 한다. 최근 유통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화장품 시장에서 ‘봄꿈’을 꾸는 이종異種 업체가 숱하다는 거다.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 등을 전개하는 코오롱FnC는 지난 17일 화장품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첫 화장품 브랜드 ‘엠퀴리’를 론칭했지만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번엔 MZ(밀레니얼
Z)세대를 겨냥했다.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만큼 브랜드명도 ‘라이크와이즈(Likewise)’로 정했다. ‘현명하고 명쾌한 생각을 즐긴다(LIKE YOUR WISE BEAUTY)’는 의미에서 따왔다.

회사 관계자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화장품 브랜드로 자체몰 등 온라인 채널에서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면서 “MZ세대 대상의 패션 · 액세서리 브랜드를 운영 중인 만큼 화장품 분야에서도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코오롱FnC는 판매를 중단했던 스킨케어 브랜드 엠퀴리도 재정비해 내년 중 새롭게 선보일 방침이다. 

이처럼 코오롱FnC가 화장품 사업을 키우는 건 매출을 이끌던 아웃도어 브랜드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친 올해 상반기 코오롱FnC의 순매출액은 4042억원으로 전년 동기(4674억원) 대비 13.5%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58억원에서 -742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감칠맛 내는 ‘미원’으로 잘 알려진 식품
소재기업 대상그룹도 화장품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자회사 디에스앤을 통해서다. 디에스앤은 지난 9일 온라인 쇼핑몰 ‘100LABS(일공공랩스)’를 열고 화장품 브랜드 ‘쌀롱드리’ ‘엄마의목욕탕레시피’를 선보였다. 

특히 쌀롱드리의 경우 ‘유기농 쌀 스킨케어’ 브랜드를 콘셉트로 삼고 기존 식품사업과의 시너지를 꾀했다. 대상그룹의 유기농 농산물 브랜드 초록마을로부터 유기농 쌀을 공급받아 사용한 건 대표적 예다. 전 제품이 세계적 비건인증기관 프랑스 이브(EVE)사로부터 비건 인증을 받은 것도 특징이다. 회사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화장품 카테고리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면서 “화장품을 필두로 일상용품·유아용품 등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이다”고 밝혔다. 

인수
합병(M&A)을 통해 적극적으로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업체도 있다. 올해 두차례 관련 업체를 인수한 현대백화점그룹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5월 패션계열사 한섬을 통해 코스메슈티컬(Cosmetic +Medical화장품과 의약품을 합친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컬의 지분 51.0%를 인수했다.

8월에는 또 다른 계열사 현대HCN이 화장품 천연원료기업 SK바이오랜드의 지분 27.9%와 경영권을 함께 사들였다. ‘전통의 유통강자’ 현대백화점그룹의 이같은 행보는 온라인 쇼핑의 공세 속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지향적인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SK바이오랜드 인수를 결정한 것”이라면서 “유통, 패션, 리빙에 이어 뷰티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업체가 신사업으로 ‘화장품’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화장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서다. 인구감소, 경기침체, 온라인 쇼핑 확대 등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유통·패션·식품시장과는 다르다는 거다. 실제로 국내 화장품 시장은 지난 10년간(2009~2019년) 연평균 성장률 12.9%를 기록하고 있다.

대상그룹은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뷰티제품 판매를 시작했다.[사진=대상그룹]
대상그룹은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열고 뷰티제품 판매를 시작했다.[사진=대상그룹]

지난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연간 생산액 기준)는 16조2633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거란 전망이 많다. 코로나19 국면에서 ‘K-방역’과 ‘방탄소년단(BTS)’의 선전 등으로 국가 이미지가 높아지면서 ‘K-뷰티(Beauty)’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또다른 이유는 화장품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서다. 한국콜마·코스맥스 등 OEM
ODM 업체가 증가하면서 제조설비나 원천기술 없이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장품은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줄까. 대부분의 전문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치열한 경쟁 탓에 국내 화장품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화장품 내수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면서 “특히 기초케어 분야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 업체간 차별화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진입장벽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화장품 업체 수가 2만여개(2020년 9월 16일 기준)에 이른다. 올해에만 3679개의 화장품 책임판매업체가 신규 등록했을 정도다. 

화장품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게 녹록한 것도 아니다. 화장품 시장이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백화점
면세점홈쇼핑 등 기존 유통채널과 화장품이 시너지를 낸 사례는 드물다.  롯데백화점이 2016년 론칭했던 화장품 브랜드 ‘엘앤코스’가 2년 만에 사업을 중단한 건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나 기술력 없이는 화장품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나 기술력 없이는 화장품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트렌드전략 컨설팅그룹 트렌드랩506의 이정민 대표는 “유통망을 갖췄다고 해서 경쟁에서 무조건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화장품 시장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장품 온라인 쇼핑거래액이 지난해 12조2986억원으로 전년 대비 24.9%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패션과 화장품의 결합 역시 성적표가 좋지 않다. 화장품 시장에 뛰어드는 패션업체들은 “패션과 화장품은 소비자층이 비슷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의 의견은 다르다. “화장품과 패션의 타깃은 비슷하다. 하지만 화장품의 트렌드 교체 주기가 더 빠르고 유통채널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치밀한 전략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패션과 화장품의 타깃이 엇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끝이라는 얘기다.  김주덕 교수는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결국 성분을 차별화한 고기능성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지 않는다면 롱런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성공은 하늘의 별 따기

이정민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화장품 브랜드는 다양한 제품군을 갖춘 ‘토털’ 브랜드를 지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두개 아이템으로도 성공하는 브랜드가 많다. 그렇다고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화장품 시장을 이끄는 MZ세대는 기존 세대와는 다른 가치들을 추구한다. 독창적이면서도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브랜드를 원한다. 전략적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거다.”  기술력이든 마케팅이든 ‘올인’할 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거다. 남들 하니까 나도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일침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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