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제조업체 ‘반스’의 직진출 선언

▲ 스포츠신발 브랜드 반스가 내년 1월부터 단독매장을 운영한다. 단독매장 개설·다양한 상품라인·이미지 고급화가 직진출 전략이다.
스포츠신발 브랜드 반스(Vans)가 직진출을 선언했다. ABC마트를 통하지 않고 신발을 팔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단독매장을 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는 반스의 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성공한다면 ABC마트의 위상이 흔들릴 공산이 있어서다.

‘이제 로열티만 받는 것은 감질 난다.’ 스포츠신발 브랜드 ‘반스’(Va ns)가 국내 직진출을 선언했다. 10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에이든 오미라 VF 아시아퍼시픽 사장은 “한국시장에서 반스를 액션스포츠 분야 1위로 성장시킬 것”이라며 “2017년까지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앞으론 라이선스를 통해 국내시장에 진출했던 간접 방식에서 벗어나 직진출로 수익 증대를 꾀하겠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출시된 반스는 신발 멀티숍 ABC마트코리아의 라이선스로 국내에 들어왔다. 2002년 공식 론칭됐다. 반스의 아담한 디자인은 소비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반스 단화는 가격까지 저렴해(3만9000원) 불티나게 팔렸다. 용돈이 궁한 중고생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단숨에 인기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반스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약 500억원이다.

오미라 VF 사장은 “한국의 스포츠•아웃도어시장은 앞으로 5년간 연평균 52%의 성장률이 예상된다”며 “한국시장 직진출 시기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을 반스의 직진출 데뷔 무대로 삼은 것이다.

VF사는 반스 직진출을 위해 사전작업까지 마쳤다. VF사는 지난 8월 100% 자기자본을 들여 한국 법인 VF코리아를 설립했다. 또한 30억원을 투자해 한국 직진출 전략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반스 브랜드를 보유한 VF사는 노스페이스•잔스포츠 등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패션기업이다. 1899년에 세워진 이 기업은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키웠다.

 
국내 최대 신발종합유통기업 ABC마트 아성에 도전하는 반스의 국내 직진출 전략은 세가지다. 단독매장 개설•다양한 상품라인•이미지 고급화다. 반스는 내년 2월부터 대리점 백화점, 멀티숍, 그리고 숍 3개의 유형으로 단독매장을 오픈한다. 2013년까지 20여개의 단독매장을 열고 2017년까지 150여개를 오픈하는 게 목표다. 현재 반스코리아는 강남•압구정•홍대 등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대리점을 모집하고 있다. 회사 영업팀 관계자는 “서울의 주요 상권 일부에서는 계약체결이 진행되고 있다”며 “2013년 1월까지 매장 단장을 마치고 2월부터 오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품라인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진다. 반스 본사는 시즌마다 평균 1800여개의 신발을 선보이는데 현재 ABC마트에 입점된 반스 신발은 70여개에 불과하다. 전체 제품 중 20%만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히든카드도 있다. 2013년 봄여름 신상품이다. 반스코리아는 ABC마트와의 계약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신상품을 반스 단독매장에만 공급할 방침이다. ABC마트와의 차별화를 위해 반스는 단독매장에서 신발•의류•가방•모자를 판매한다. 신발 중심인 ABC마트와 달리 반스 단독매장은 소비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밀 수 있는 플래그쉽 샵으로 운영한다. 이는 ABC마트에서 반스가 익숙한 한국 소비자를 단독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조치다.

직진출 시도 업체 많아

아울러 고급화 전략을 구사한다. 중저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현재 반스코리아가 책정한 신발 가격대는 단화 기준으로 4만4000원대. ABC마트보다 4000~5000원 싸다. 가장 비싼 신발은 70만원을 호가한다.

반스코리아 유통 담당자는 “ABC마트코리아가 반스 단화를 저렴하게 판매한 탓에 유독 한국에서만 반스가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며 “고가의 보드슈즈와 하이탑 슈즈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반스의 고급화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스의 직진출 선언 이후 ABC마트는 공식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ABC마트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ABC마트와 반스코리아가 계약 여부를 놓고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반스의 직진출이 실패할 거라는 의견이 많다. 반스가 과거 유명 브랜드의 직진출 실패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직진출을 선언한 폴로는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힌다.

캐주얼 명품 브랜드 폴로는 직진출을 선언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폴로는 지난해 두산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폴로랄프로렌코리아로 단독매장을 열었지만 한국시장 적응에 실패했다. 폴로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플로트래디셔널 캐주얼 부문’ 점유율 통계에서 2011년 4월 15.3%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보다 3%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 직진출 실패 요인은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한국 패션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 치명타라는 분석이다. 푸마 관계자는 “외국 본사가 욕심을 내서 국내 법인을 세워 직진출했지만 유통망을 크게 확장하지 못했다”며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에 대한 분석 없이 무작정 뛰어든 게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반스의 직진출 배경을 다르게 본다. 설령 직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얻는 수익이 ABC마트코리아로부터 받는 로열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반스코리아 영업팀 관계자는 “우리의 목표는 초반 매출이 부진하더라도 반스 브랜드가 꾸준히 오래 가는 것”이라며 “한국 소비자에게 반스의 새로운 제품라인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스의 국내 직진출 선언 이후 ABC마트코리아는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연일 반스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ABC마트코리아의 반스 라이선스 계약기간은 올해 12월 31일까지다. ABC마트코리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신발유통구조의 지각변동이다.

 
신발유통구조 지각변동 일어날까

2002년 한국에 진출한 ABC마트코리아는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ABC마트코리아는 반스 말고도 호킨스•누오보•스테파노로시 등 30여개의 PB(자사)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다. 반스의 직진출이 성공하면 PB브랜드의 직진출이 가시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세계 최대 신발유통종합기업으로 군림하는 일본 ABC마트의 위상이 흔들릴 공산도 있다.

스포츠브랜드 업계 관계자는 “반스의 직진출이 성공하면 ABC마트의 아성은 급격하게 무너질 것”이라며 “PB 브랜드의 직진출 러시가 빨라지고 유통시장을 장악한 신발유통종합기업에 대한 비판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직진출을 선언한 반스가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스의 승부수가 먹히면 ABC마트의 아성에 균열이 생길 수 있어서다. 반스는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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