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노무현 부동산
2020 문재인 부동산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야권과 보수적 경제학자가 똑같이 꺼내든 카드가 있다.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을 규제했던 노무현 대통령도 2007년 1월 끝내 국민 앞에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말이다.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질 못해서 미안합니다….” 바꿔 말하면 노 대통령도 사과했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그러기 전에 정책을 바꾸라는 거다. 

하지만 야권 일부가 언급하지 않은 말이 있다. 노 대통령의 사과, 그다음의 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말을 복원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느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인정하고 사과했다.[사진=연합뉴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인정하고 사과했다.[사진=연합뉴스]

2007년 1월 23일. 대통령 신년 특별연설이 진행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또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질 못해서 미안합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한 실책을 인정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 힘들어진 사람들을 향한 사과였다. 어느 정도였길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를 했던 걸까. 

2003~2007년 노 대통령 재임 기간의 그래프를 확인해 봤다. 이 기간 유독 가파르게 아파트 가격이 오른 때가 있었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1월까지다. 4개월간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KB부동산 리브온ㆍ2019년 1월 기준 100)는 66.8에서 76.5로 4개월 만에 9.7포인트 올랐다. 전체 기간으로 봐도 2003년 3월 50.5였던 지수는 2007년 1월 76.5까지 올랐다. 부동산값 폭등을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질 만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야권 일부에선 “2007년 노 대통령이 그랬듯 이번엔 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날카로운 데자뷔다. 그들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이전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의 불안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다시 확인해봤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018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91.8포인트에서 100.0까지 올랐다. 8.2포인트 상승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 급등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9월 100.7이었던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020년 8월 110.1로 또다시 11개월 만에 9.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1월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고가주택 기준인 9억원을 처음으로 넘기기도 했다.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KB부동산 리브온) 역시 2018년 8월 집계 이후 최고치인 164.5를 찍었다. [※참고 : 매수우위지수는 100이 넘을 때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수치가 이렇다 보니 2006년의 부동산 상승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가격 자체가 크게 상승한 상태에서 ‘급등’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런 반복적인 급등세를 지금의 정책으로 막아낼 수 있느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정책효과가 최대한 나도록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라면서 “그러면서도 정책 흐름을 뚝심 있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참고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청약 조건, 주택담보대출 요건을 강화하면서 다주택 개인과 법인을 규제해 왔다. 아울러 3기 신도시와 수도권 일대 개발계획이란 공급정책도 병행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일부 정책을 변경할 때엔 시장에 ‘퇴로’를 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등록임대사업제를 보완하면서 일반인에게도 과태료 처분을 낮춰 매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지 않도록 규제 보완이 필요하다.” 공급책과 관련해선 서울 수요의 분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함 랩장은 “서울 수요를 3기 신도시와 그 일대 수도권 공급 사전청약에 돌리는 것이 관건”이라며 “직장ㆍ거주 근접, 교통ㆍ생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느냐가 3기 신도시와 신규 택지의 성공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더이상 군불을 때지 않는다면 당분간 안정세가 유지될 것”이라며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집값이 더 급등하지 않는다면 집값 상승에 베팅하는 전세 형식의 임차 거래는 사라질 것이고 정부는 그다음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61%가 유주택자인데 이 사람들에게 정부의 ‘집값 잡기’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주택 가격보다도 주거권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도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중저가 주택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부소장은 “고가 주택의 가격은 강력한 수요규제책 때문인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세금 부담이 크지 않은 중저가 주택으로 수요가 쏠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규제가 없고 접근성이 높은 중저가 주택으로 수요가 몰려 가격폭등 위험이 있다는 거다. 그는 이어 “공공 재건축 등은 상대적으로 시장 불안을 키울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좋은 공급 방식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용적률 완화로 인구가 늘어나게 될 때 도시 기반 시설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결국 하나다. 정책 효과를 봐가면서 융통성 있게 움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당장은 중저가 주택이라 하더라도 가격이 오르면 이 주택시장 역시 고가주택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책 흐름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조언도 많았다. 

구 소장은 “시장은 정부에서 나오는 멘트나 행동에 담긴 메시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상황 변화에 따라 대처해야겠지만 메시지가 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계추를 다시 2007년으로 돌려보자. 노 대통령의 사과 이후 부동산 시장은 흥미롭게도 이전과 달라졌다. 2007년 1월(76.5) 이후 2008년 2월(78.6)이 될 때까지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2020년 야권의 주장대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이후 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을 바꿨던 걸까.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은 뚝심 있게 일관된 정책을 폈고, 그게 시장에 먹혔다.

 

지금의 야권은 2007년 그날 ‘노 대통령의 사과’만을 언급하지만 실은 그다음 멘트가 있다. “…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또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질 못해서 미안합니다….” 바로 이다음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잡힙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채택하지 못했던 모든 강력한 정책들을 이번에 다 채택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투기가 빠져나갈 데가 없습니다. … 민간 공급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이라도 그렇게 되면 공공 부문이 위축되는 만큼 다 짓겠습니다.”

당장 시장이 불안하더라도 정책 노선을 변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는데, 그 이후 부동산 시장은 거짓말처럼 안정됐다. 당시 언론도 2007년 부동산 시장을 되짚어보며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가격 안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정책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 사과 뒤의 말 ‘약속’  

23번의 정책을 쏟아냈다고 도마에 오른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의 정책을 내놓지 않고 시장을 관망 중이다. 시장은 ‘거래량 감소’란 메시지를 보내며 불안하긴 하지만 급등세는 진정된 상태다. 

2020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은 2007년 노 대통령의 사과 이후 시장처럼 고요해질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변수는 있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은 국가 미래상과 긴밀하게 엮인 채 추진됐다.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부동산 정책이 가동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만 아는 서울 유권자와 서울 출신 국회의원이 지배하는 국회가 만드는 지방정책’을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 그림 속에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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