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구에 해당하는 준법감시인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 자산을 다뤄야 하는 만큼 상장회사 내부통제 기구인 준법지원인보다 훨씬 까다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준법감시인의 자격을 얻는 건 어렵지 않다. 금융업계에 무늬만 준법감시인이 차고 넘치는 이유다. 

옵티머스자산운용에는 준법감시인이 있었지만 회사의 범죄 행위를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옵티머스자산운용에는 준법감시인이 있었지만 회사의 범죄 행위를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옵티머스(optimus)는 라틴어로 ‘가장 좋은’이란 뜻이다. 하지만 국내 펀드시장에선 이제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될지 모른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 벌인 1조2000억원 규모의 금융사기 때문이다.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끌어모은 자금을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펀드를 돌려막는 데 사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해당 사모펀드는 환매가 중단됐고,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2900여명에 이른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 펀드사기 문제가 불거진 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지난 1년간 환매가 중단된 펀드만 22개에 이른다. 판매액으로는 무려 5조6000억원 규모다. 그럼 펀드사기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금융감독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투자자금을 모집할 당시부터 ‘한탕’을 노리고 투자자와 판매사를 속였다고 한다. 금융회사 간판을 달고 법망을 따돌리는 게 손쉬웠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런 자산운용사의 범죄행위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이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가 ‘준법감시인’ 제도다. 준법감시인은 기업이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는지 감시하고 내부통제 기준을 지키는지 점검하는 회사 내 직원이다. 기업이 법을 위반하면 이사회와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참고 : 국내 금융회사는 의무적으로 준법감시인을 둬야 한다. 2000년 증권거래법을 시작으로 은행ㆍ증권회사ㆍ보험회사 관련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엔 여러 금융 관련법에 산재해 있던 내부통제기준과 준법감시인 규정을 ‘금융사지배구조법’으로 통합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엔 이런 준법감시인이 있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2016년 2월 변호사 A씨를 준법감시인으로 선임했다. 문제는 준법감시인으로 선임된 변호사 A씨가 줄곧 비상근으로 근무했다는 점이다.

사고가 터지고 나서도 A씨는 “회사 임원으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줄로만 알았다”면서 “최근 벌어진 사건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인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7월 23일 열린 ‘사모펀드 신뢰회복을 위한 펀드업계 자율결의’에서 금융투자협회 측은 “준법감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업무역량과 준법의식을 강화하겠다”면서 사모펀드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준법감시인의 허술한 운영이 자산운용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7일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일명 P2P금융업법)’이 시행됐다. P2P금융업법의 시행으로 법망 바깥에 있던 P2P(개인 간 대출) 업체들이 정식 금융회사로 인정된 것이다. P2P 업체도 이젠 준법감시인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내부에선 진통을 겪고 있다.

대형 P2P 업체들은 이미 시중은행에서 화려한 이력을 가직 준법감시인을 모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거나 사업경력이 짧은 P2P 업체 중엔 상근직 준법감시인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곳이 적지 않다. 결국 자격요건만 충족되면 업무역량과 전문성은 무시한 채 준법감시인을 선임하는 일이 빈번해질 게 분명하다는 건데, 구색만 갖춘 P2P 업체가 자산운용사처럼 운영될까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준법감시인 자격요건만 충족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현행 규정상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10년 이상이면 어떤 업무를 했더라도 그 누구든 준법감시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준법감시인은 기업 내부통제의 세 요소인 ▲위험관리 ▲재무정보통제 ▲준법통제를 모두 담당하는 자리다. 업무 범위가 준법통제에만 국한된 준법지원인(상법)보다 더욱 까다로워야 맞다. 업무부담도 만만치 않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문화가 일상이 됐다. 기업에서도 재택ㆍ원격근무가 보편화하면서 이제 임직원들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비상근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천억원대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준법감시인이 비상근인 것은 문제가 있다. 법적으로도 준법감시인은 ‘상근성常勤性’이 핵심이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례는 국내 금융회사의 허술한 내부통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제 더는 ‘무늬만 준법감시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 언택트(비대면ㆍuntact)가 일상화된 환경에서도 준법감시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현업부서와 콘택트(접촉ㆍcontact)하며 내부통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준법감시인 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준법감시인 제도가 아직 정착하지 않는 건 신기한 일이다. 2018년 ‘삼성증권 배당 오류 사고’ 이후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보고서’를 발행했다. 여기엔 준법감시인의 위상과 역할 제고를 위한 좋은 내용이 담겨 있다. 지금이라도 먼지 쌓인 보고서를 들춰봐야 한다. 상장회사 준법지원인에 비하면 앞서가고 있지만, 금융회사 준법감시인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글=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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