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 네가지 간극

개정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사진·거주지 주소·학력 등 차별을 야기할 만한 일부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는 거다.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명시한 곳에 응시했음에도 ‘찝찝함’을 느끼는 구직자가 숱한 이유다. 법안이 현실의 차별을 온전히 막기엔 허점이 있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블라인드 채용에 숨겨진 법과 현실의 네가지 간극을 취재했다. 

사진·학력·거주지 등은 채용절차법상 수집 가능한 요건에 해당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학력·거주지 등은 채용절차법상 수집 가능한 요건에 해당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라인드 채용을 경험한 구직자 중 상당수는 이렇게 말한다. “채용 전형에서 ‘찜찜함’을 느꼈다.” 기분 탓이 아니다. 채용절차법에서 수집 금지하는 항목이 구직자들이 생각하는 블라인드와 차이가 있어서다. 실제로 개정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법)’을 살펴보면, 차별의 근거가 될 만한 요건도 수집 가능한 경우가 많다. 어떤 항목이 그런지 하나씩 짚어보자. 

■간극❶ 사진 = 구직자가 본격적인 취업활동을 시작할 때 먼저 하는 것은 ‘취업용 증명사진’ 찍기다. 그만큼 서류전형에서 구직자의 사진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이를 두고 ‘사진 제출이 외모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는 불법이 아니다. 채용절차법에서 따르면 기초심사자료(이력서·응시원서·자기소개서)에 사진을 부착하는 건 가능하다. 기업은 구직자의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입증자료(학위증명서·자격증명서 등)로 요구할 수 있다. 수집이 금지된 용모 관련 정보란 키·몸무게 등의 수치나 인상·흉터·왼손잡이를 비롯한 신체적 조건이다. 

 

■간극❷ 주소 = 기업이 주소를 수집하는 경우에 혼란스러워하는 지원자들이 많다. 채용절차법에 ‘출신지역 수집 금지’라고 명시돼 있어서다. 여기서 말하는 출신지역이란 ‘출생지·등록기준지·성년이 되기 이전의 거주지 등 사회통념상 출신지역’이다. 

이 때문에 현 거주지 주소나 주민등록상 주소는 ‘출신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력서에 주민등록상 주소를 쓰게 하는 건 불법이 아니란 거다. 하지만 출신지를 떠난 적 없는 구직자나 대학 진학을 위해 이주한 지역에서 10년 가까이 지낸 구직자에겐 출신지역 구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간극❸ 고용법 vs 채용법 = 출신학교와 학력은 구직자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개인정보 중 하나다. 차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서다. 고용정책기본법상 구직자를 학력이나 출신학교로 차별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채용절차법은 학력과 출신학교를 수집금지 정보로 분류하지 않았다. 연구직 등 업무 특성상 학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직종이 있는 데다, 출신학교는 출신지역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업무 매뉴얼을 통해 가능한 한 학력을 수집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간극❹ 공무원 = 공공기관이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어 공무원 임용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이 필수일 것으로 생각하는 구직자가 많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채용은 채용절차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라도 공무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를 채용할 때는 채용절차법을 따라야 한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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