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돈 받는 보좌관의 현주소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민의 혈세로 먹고사는 공무원이다. 누구도 이들에게 사적인 일을 지시할 수 없다. 그게 보좌관을 직접 임명하는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무혐의로 끝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아들 군 복무 시절 특혜 논란은 그래서 수상쩍다. 보좌관이 국회의원 자녀의 군 휴가란 국민의 삶과 무관한 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걸까. 아니다. 이들에겐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 보좌’라는 분명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이들의 중차대한 임무를 방해하는 건 대체 누구인가. 더스쿠프(The SCOOP)가 보좌관의 비틀어진 경제학을 풀어봤다.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 특혜 논란은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사진=뉴시스]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 특혜 논란은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사진=뉴시스]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논란.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여든 야든 진영논리에 휩싸여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진흙탕 싸움’에 펜을 집어넣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혐의로 일단락된 이 사건에 ‘진짜 싸워야 할’ 이유가 생겼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이 SNS 메시지 때문이다. 

일시 : 2017년 6월 21일 
추미애 : “*** 대위(지원장교님) 010-****-*****”
보좌관 : “네”
추미애 : “아들이랑 먼저 연락을 취해주세요.”
보좌관 : “네 바로 통화했었습니다. 지원장교에게 예후를 좀 더 봐야 해서 한번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황입니다. 예외적 상황이라 내부검토 후 연락주기로 했습니다.”

분명 추미애 장관은 ‘아들 군 휴가 연장’이란 사적인 업무를 두고 보좌관과 연락했고, 보좌관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응했다. 보좌관이 의원의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9조를 보자.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 

의원의 입법 활동을 뒷받침하라는 얘기인데, 이 ‘입법 활동’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여당측 의원실 A비서의 설명을 들어보자. “정책을 설계하고 입법을 준비하고 지역구의 현안을 챙긴다. 질의서를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다. SNS를 통한 국회의원 홍보, 회계 관리를 포함한 각종 행정 업무, 민원 접수, 손님 접대 등 갖가지 일도 보좌진이 도맡는다. 하지만 국회의원 아들의 병역 문제는 이런 활동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 의원의 사적인 용무에 불과해서다.”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국민의 혈세로 고용된 엄연한 국가 공무원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원 보좌진의 인건비 총액으로 1467억4600만원이 책정됐다. 현재 의원실마다 구성할 수 있는 보좌진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ㆍ7ㆍ8ㆍ9급 비서 각 1명에 인턴 1명 등 총 9명이다. 국회의원 300명의 의원실이 있는 국회의원회관에는 2700명의 보좌진이 일하고 있다. 

자! 어떤가. 추 장관은 공무원에게 ‘사적 일’을 시켰다. 정말 괜찮은 건가. 사례를 약간 비틀어보자. 여기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이 있다. 자녀의 사적인 일을 비서관에게 시켰다. 참지 못한 비서관이 국회의원에게 이 문제를 호소하자 ‘갑질 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비판을 늘어놓고 관련 법안을 쏟아낸다.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왜 다른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을까. 다른 보좌관들은 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까. 이 논란이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좌진을 수족처럼 부리는 일이 국회 관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장교 전화번호 받은 보좌관

다시 A비서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 이 사건에 보좌관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보좌진이라면 그 정도는 일을 의원 대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보좌진 역시 ‘그게 왜 문제죠?’라고 반문하더라.”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사적 업무에 동원해 문제가 된 사례는 적지 않다. 의원 가족의 항공권이나 기차표 예매를 보좌진이 대신하는 케케묵은 행태도 여전하다고 전ㆍ현직 보좌진들은 입을 모았다. 보좌진 월급의 일부를 반납받아 사무실 운영비로 사용해 지탄을 받는 일도 회기마다 반복되고 있다. 

야당 의원실 소속의 B비서관은 “수행비서가 의원이 아닌 배우자나 가까운 지인을 보필하거나, 의원이 되기 전 소속됐던 직장이나 단체를 보좌진이 따로 관리하는 경우도 목격했다”라면서 “의원의 사적 업무가 입법 활동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곳이 바로 국회”라고 꼬집었다. 

19대 국회 때부터 인턴으로 보좌진 생활을 시작한 C보좌관은 “예전에 모셨던 어떤 의원은 기분파였는데, 기분이 안 좋을 땐 ‘오늘 누구 한명 걸려 봐라’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면서 “보좌진이 의원의 표정과 눈치를 살피느라 바빠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원끼리 운동 경기를 했는데 본인이 속한 팀이 졌다는 이유로 의원실을 뒤집어놓은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의정활동과 관련 없는 온갖 잡다한 지시가 쏟아져도 보좌진은 ‘못 하겠습니다’고 말하기 어렵다. 임명과 해임 권한이 오롯이 의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해임이나 징계 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보좌진의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 별다른 사유 없이도 그 즉시 해임이 이뤄진다. 

금배지의 여전한 ‘보좌진 부리기’


보좌진의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다. 항상 격무에 시달린다. 근무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법을 적용받는다. 법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아닌 탓에 휴일 근무와 야근이 잦다. 

특히 국정감사에 돌입하기 한두달 전부터는 피감기관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느라 밤낮없이 일하기 일쑤다. 업무 강도에 회의를 느꼈던 한 전직 보좌관의 설명이다.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생활에 보람을 느끼다가도 격무와 수시로 쏟아지는 연락에 몸이 버티질 못해 결국 국회 문을 나서야 했다. 의원이 일을 벌여놓으면 수습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불규칙한 일정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기 어려웠다.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1호 법안 제출이라는 이벤트를 연출하기 위해 보좌진이 며칠을 밤새웠다는 뉴스를 보면서 ‘회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곳이구나’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추 장관의 논란을 두둔하는 보좌진도 있었다. 10년 가까이 당원으로 보좌진 업무를 해온 한 보좌관은 “입법과 의정 활동의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의원과 보좌진이 공과 사를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도를 넘는 사적 심부름까지 시키는 건 극소수의 사례고, 이 역시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물론 국회의원이 보좌진을 동등한 업무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고 부하직원으로만 여기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여전히 팽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민의 혈세를 받는데도 국회의원 앞에선 ‘을’이 되고 만다. 2700여명의 국회 보좌진의 처지가 고달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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