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운반선 잘 나가는 건 좋은데 …

LNG 운반선 건조 능력은 한국 조선이 독보적이다. 발주만 났다 하면 국내 조선사가 휩쓸기 일쑤다. 더구나 손꼽히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만큼 수익성도 높다. 하지만 한국 조선에서 LNG 운반선의 비중이 높아진 게 긍정적 성과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엔 무서운 함의가 숨어 있다. 그게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LNG 운반선의 딜레마를 취재했다. 

한국 조선이 지난 2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LNG 운반선 발주량이 부쩍 늘어난 덕분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 조선이 지난 2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LNG 운반선 발주량이 부쩍 늘어난 덕분이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조선산업은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렸다. 시장에선 사상 최악의 수주절벽이라고 불렀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선박 발주량이 급감한 탓이었다. 그해 1~9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999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2020년 1~9월(이하 같은 기준)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은 975만 CGT다. 최악의 수주절벽으로 불렸던 2016년보다 발주량이 2.4% 더 적다. 지난해(2003만 CGT)와 비교하면 무려 51.3%가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코로나19 여파까지 맞물리면서 발주가 뚝 끊겼다.

국제유가가 바닥을 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서부텍사스유(WTI) 기준 2016년 1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평균 국제 유가가 배럴당 40.59달러(최저가 26.21달러)였다. 반면 올해 같은 기간 WTI의 평균 가격은 37.24달러(최저가 10.01달러)에 불과했다. 

발주량이 줄어드니 수주실적도 부진했다. 지난 9월까지 한국 조선이 수주한 선박은 총 262만 CGT. 2016년(129만 CGT)보단 나아졌지만 지난해 실적(527만 CGT)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국 조선과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한국 조선은 2018ㆍ2019년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올해는 중국 조선보다 221만 CGT가량 뒤처져 있다.

부진한 수주실적이 당장 조선사의 위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수주한 선박이 실제로 인도되는 2년여 뒤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통상 조선사는 2년 반 정도 분량의 일감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업황이 좋을 땐 3~4년치 일감을 확보해놓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1년에서 1년 반 분량의 일감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어두운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시장에선 대형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 조선이 강점을 보이는 LNG 운반선이 올해 말 대거 발주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대형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ㆍ모잠비크ㆍ카타르 등 3곳이다. 

러시아에선 22척의 LNG 운반선이 발주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중 10척은 지난해 러시아 조선사 즈베즈다에 발주한 15척 중 일부다. 즈베즈다는 LNG 운반선을 건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조선사에 재발주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15척 가운데 5척은 지난해 삼성중공업이 맡았다. 나머지 12척은 2차 예상 발주량이다. 

모잠비크의 LNG 운반선 발주 규모는 16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8척의 건조의향서(LOI)를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정식계약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카타르발 ‘잭팟’을 향한 시장의 기대치도 매우 높다. 한국 조선은 지난 6월 카타르와 100척 규모의 슬롯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LNG 운반선 가격은 17만4000㎥급 기준 1억8600만 달러(약 2160억원)로, 주요 선종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다. 시장의 전망처럼 올해 말 발주가 쏟아진다면 한국 조선을 향한 우려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다. 하지만 발주시기를 100% 확신하긴 어렵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프로젝트 개시일에서 역으로 계산해보면 올해 말엔 발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됐을 때의 얘기다. LNG 프로젝트는 국제유가나 경기상황, 생산설비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실제 연기되는 프로젝트도 상당수다. 러시아ㆍ모잠비크 프로젝트에서 LNG 운반선 발주가 나온다는 얘기도 2018년부터 있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카타르와 맺은 슬롯계약 역시 가계약에 불과한 데다, 발주시기는 물론 발주량도 변동될 여지가 크다.


우려해야 할 건 또 있다. 한국 조선의 LNG 운반선 의존도가 부쩍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무서운 함의含意가 깔려 있다. [※참고 : 2018ㆍ2019년 한국 조선이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던 건 LNG 운반선 발주가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전년 동기 대비 39.3% 줄었고, 2018년보다는 57.4% 감소했다.] 

LNG 운반선의 의존도가 커진 첫째 이유는 중형조선소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조선이 대형 조선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일감도 대형 조선사에 맞는 ‘큰 배’ 위주로 바뀌었다”면서 “하지만 대형 선박 발주는 변동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조선이 수주하는 선종은 주로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유조선(VLCC)이다.  LNG 운반선 발주가 줄면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VLCC로 만회해야 하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VLCC의 발주량도 급감한 데다, 중국에 빼앗기는 일감도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조선의 LNG 운반선 의존도가 높아진 둘째 이유이자 리스크 요인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선박 위주로 수주실적을 쌓던 중국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VLCC 등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어서다. 

이은창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기술격차가 좁혀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경계해야 할 일인 건 사실이다. 최근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이 중국에 잠식당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조선 기술격차는 쉽게 좁히기 어렵다. 문제는 기술력만으론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가령, 선주가 중국 금융에 손을 벌리거나, 주요 LNG 수요처인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 조선에 발주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사례가 쌓이다보면 우리와의 기술격차도 좁혀질 수 있다.”

가볍게 여길 만한 문제가 아니다. 기술격차마저 좁혀지면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데다 가격경쟁력까지 앞세운 중국 조선과의 경쟁이 더욱 힘들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NG선 이후의 차별화된 기술이 필요한 때”라면서 “당장 티가 나진 않겠지만 지속적인 연구ㆍ개발(R&D) 노력과 구조 개선을 통해 LNG 운반선 집중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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