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에 걸친 갈치와 아버지의 추억

[2020/갈치/서울/오상민작가]
[2020/갈치/서울/오상민작가]

# 어릴 때부터 잘 못 먹는 게 있습니다. 생선입니다. 비린내가 정말 싫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생선회도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먹기 시작했습니다. 

# 아버지는 생선을 좋아하셨습니다. 입이 짧으셔서 생선을 한 번에 다 드시지 못하셨죠. 먹다 남은 생선은 밥그릇을 뚜껑 삼아 덮어놓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다음 식사 때 차갑게 식은 생선을 덥히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돌렸습니다.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을 때 비린내가 온 집안에 진동했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비린내가 싫어 생선을 멀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유일하게 먹는 생선이 있었습니다. 갈치입니다. 신기하게도 갈치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습니다.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갈치는 고소한 맛이 났습니다. 하지만 갈치를 먹다가 목에 큰 가시가 걸린 날 이후부턴 그마저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어린 시절 저와 생선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 경복궁입니다. 정오를 향해가는 해가 처마를 비춥니다. 가을이 온 걸 알리듯 파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근정전의 처마에서 순간 갈치의 머리를 보았습니다. 추녀마루 끝의 잡상들과 기와의 그림자가 이빨을 만들어냅니다. 구름을 먹고 있는 갈치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파란 하늘인지 파란 바다인지 헷갈립니다. 

# 하늘을 보고 있다보니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이제 생선을 돌리던 전자레인지도, 아버지도 볼 순 없지만 왠지 그 향이 나는 듯합니다. 조만간 갈치구이를 한번 먹어야겠습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