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3사 석유화학 베팅, 묘수일까 자충수일까
정유3사 석유화학 베팅, 묘수일까 자충수일까
  • 김정덕 기자
  • 호수 410
  • 승인 2020.10.14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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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 신성장동력과 리스크

정유업계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중에서도 석유화학 분야는 정유업계의 핵심 공략 지점이다.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3사는 올레핀 생산 설비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묘수일지 자충수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0여년 전 정유사들은 파라자일렌 설비 투자에 집중했다. 하지만 현재 공급과잉을 겪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0여년 전 정유사들은 파라자일렌 설비 투자에 집중했다. 하지만 현재 공급과잉을 겪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규모 적자를 냈던 상반기보다는 낫겠지만, 업황이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권업계가 내놓은 올해 3분기 정유업계 실적 전망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안 좋다’ 혹은 ‘나쁘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국내 증권업계의 특성을 감안하면 정유업계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우선 주력인 정유사업 업황부터 좋지 않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선으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런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종전에 비싸게 들여온 기름들이 제값을 하기 힘들다.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쳤다. 공급 대비 수요가 줄면 정제마진도 좋을 리 없다. 올해 3분기 평균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1.7달러였다. 정유업계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준(배럴당 4~5달러)을 한참 밑돈다. 2분기(배럴당 2.1달러)보다도 더 떨어졌다. 

눈여겨볼 점은 정유업계가 세계적인 탈석유화에 대응해 공들여 키워온 석유화학사업도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석유화학제품인 파라자일렌(PXㆍ폴리에스테르 섬유나 페트병의 원료)의 경우 제품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초만 해도 1톤(t)당 1000달러를 웃돌던 PX 가격은 같은해 말 700달러까지 하락했다. 최근엔 400~500달러 수준이다.

지난 몇 년간 PX 증설에 투자했던 중국 업체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규 공장을 가동하면서 공급이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PX 수요가 대부분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도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정유업계가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걸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정유업계가 꾸준히 신사업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제한이 좀 있다. 정유나 석유화학과 전혀 무관한 분야로 발을 넓히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비중 있게 투자하는 분야는 석유화학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존 정유사업을 완전히 접을 수 없는 만큼 정유업을 활용한 분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석유화학이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수년 전부터 정유업계가 올레핀 설비 투자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고 : 올레핀은 에틸렌이나 프로필렌 등 에틸렌 계열의 불포화 탄화수소를 일컫는다. 흔히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범용 제품이다.]

GS칼텍스는 그해 8월 2조6000억원을 투입해 여수산업단지 제2공장 인근에 에틸렌과 폴리에틸렌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현재 건설 중인 이 설비는 2021년에 가동하는 게 목표다. 

설비 투자 집중하는 정유3사

현대오일뱅크 역시 2018년 5월 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과의 합작사)을 통해 올레핀 생산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고, 이듬해 4월 본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투자 규모는 2조7000억원, 2021년 하반기까지 완공ㆍ가동할 예정이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약 5조원을 들여 울산 온산공단에 잔사유(찌꺼기 기름) 고도화 설비와 올레핀 다운스트림(올레핀을 원료로 한 석유화학을 포함) 설비를 구축한 에쓰오일은 지난해 6월 2차 투자계획을 밝혔다. 2024년까지 7조원을 들여 생산 설비를 더 늘리겠다는 거다.

최근 코로나19로 업황이 악화하면서 투자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지난 7월 콘퍼런스콜을 통해 “엔지니어의 이동에 제약이 있어 미팅 등이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전반적인 프로젝트 기간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계획에는 변함없다는 거다. 

문제는 정유사들의 대규모 올레핀 설비 투자가 ‘새로운 먹을거리’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각 기업의 경영진이 시장 상황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서 그 자체를 두고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려가 없지는 않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장치산업인 만큼 누가 더 빨리 돈이 될 만한 제품을 선정해 생산설비를 들여놓느냐에 따라 시장에서의 입지가 달라진다. 투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설비 투자가 미래를 담보해 줄지는 의문이 있다. PX 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올레핀 시장 역시 중국이 쫓아오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쉽게 말해 ‘증설→중국의 추격→공급과잉→침체’라는 전례를 답습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한편에선 또 다른 비판도 나온다. 정유사들이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석유화학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는 한다”면서 “하지만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석유화학 기업들은 범용제품보다는 반도체나 LCD 등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고 있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는 출혈경쟁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출혈경쟁의 늪에 빠질 수도

정유업계도 반론은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PX 부문이 안 좋은 게 중국의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수요가 줄어서다. 코로나19가 겹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석유화학 시장의 경기는 사이클(주기)이 있다. PX 시장 역시 그랬다. 가격이 오를 때가 있고, 내릴 때가 있다. 올레핀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추격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시장이 죽지는 않는다. 게다가 올레핀은 후방산업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레핀 설비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발전해갈 수도 있다. 장기 생존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어쨌거나 석유화학제품으로 무장한 정유사들이 시장을 흔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올레핀 등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고, 출혈경쟁을 일으켜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묘수와 자충수, 정유사가 그 사이에 서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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