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사업단 특약
도심 속 방치된 유휴공간

도심 속 버려진 공간은 숱하다. 급격한 도시개발의 잔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은 우범지역이나 슬럼으로 바뀌면서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이 때문인지 유휴공간을 지역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톨릭대 학생 4명은 부천 심곡고가교 밑 ‘버려진 공간’을 주목했다.
 

삭막한 고가도로 아래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많은 이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도시’. 빌딩·아파트·상가 등으로 촘촘히 메워진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입주자가 사라진 황폐한 상가, 고가도로 밑 쓰레기만 가득한 공간, 목적을 알 수 없는 공터. 도심 속 유휴공간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개발이 남긴 흔적이다. 개발하려 했지만 불발됐거나, 개발했지만 이용하진 않는 방치된 공간들이다. 

학계와 정부가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한 수순이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버려지고 파편화한 공간들은 각종 문화 시설과 공원,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의 눈에 들지 못한 유휴공간은 여전히 숱하다. 쓰이지 못한 공간은 우범지역화, 노후화 등의 문제를 낳는다. 주위에서 쉽게 보이는 문제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가톨릭대 정영훈·이성민·염나경·장성민 학생은 부천 심곡고가교 하부에 있는  661㎡(200평)대 공간을 발견했다. 이들은 가톨릭대 LINK+산업단이 사회혁신융복합전공 교과목으로 개설한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소셜리빙랩’에서 ‘유후’라는 팀으로 뭉쳤다. ‘살아있는 연구실(Living Lab)’이라는 이름처럼 유후팀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심곡고가교 하부는 부천 자유시장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도 지역민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자 슬럼화, 쓰레기 무단투기 등의 문제가 생겼다. 유후팀은 이 공간을 청년예술복합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문화도시’란 타이틀과는 걸맞지 않게 부천에는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표도 있었다. 심곡고가교가 자유시장 입구에 맞닿아 있는 만큼 상인과 고객도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유후팀은 설문조사 패널을 들고 시장 상인들을 찾았다. 상인들은 심곡고가교 하부 공간에 필요한 것으로 ‘휴게공간(41.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를 이은 건 ‘문화공간(27.4%)’ ‘생활체육기구(21.4%)’ ‘도서관(3.4%)’ 등이었다. 그만큼 시장 주변에 상인과 고객을 위한 쉼터나 생활시설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유휴공간의 활용 방향을 정한 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를 들여다봤다. 이들이 참고한 곳은 서울시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의 ‘미인도’와 광주 대인예술시장이다. 미인도는 2015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문화예술공간이다. 고가도로와 바닥 사이에 벽을 세워 만든 이곳에선 지역 주민을 위한 전시·공연·마을장터·포럼 등이 열린다. 

광주 대인예술시장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 이후 예술가들이 시장에 들어오며 형성됐다. 시장 곳곳엔 상인과 예술가가 만든 공공 예술작품이, 점포 사이엔 문화공간·갤러리·작업실이 숨어 있다. 유후팀은 미아리와 광주의 사례를 바탕으로 부천 심곡고가교 하부를 ▲청년예술가를 위한 작업실 ▲주민을 위한 쉼터 ▲문화행사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로 했다.

 

서울시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의 미인도는 2015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문화예술공간이다. [사진=미아리고개 하부공간 미인도 제공]
서울시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의 미인도는 2015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문화예술공간이다. [사진=미아리고개 하부공간 미인도 제공]

하지만 공간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4명의 학생들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 사태로 현장을 자주 찾기 어려워 어떻게 실현할지 막막했다. 이들은 도면을 만들어 공간을 시각화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공간을 채울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유후팀은 멘토링을 통해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이들의 멘토는 공공적 문화예술기업 ㈜노리단의 김승현 실장이 맡았다. 

김승현 실장은 학생들에게 “하드웨어(공간의 형태)에 치중하기보단 소프트웨어(프로그램)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김 실장은 플리마켓·버스킹·이동식 포장마차 등 부천 자유시장에서 하지 않는 프로그램들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이성민 학생은 “문화시설로 재개발했음에도 활성화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며 “유휴공간이 또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했다”고 말했다.

바뀐 공간을 찾을 타깃도 구체화했다. 부천 자유시장이 있는 부천역 인근은 번화가로, 원룸과 오피스텔이 많다. 유후팀은 이곳의 20~30대 1인 가구를 타깃으로 정했다. 염나경 학생은 “시장을 찾는 이들은 주로 중장년층이고, 젊은층은 보기 힘들다”며 “공방이나 클래스를 열면 오피스텔촌의 1인 가구를 끌어들여 시장의 유입 인구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주민이 참여한다면 실현 가능”

유후팀은 치밀한 조사와 여러 논의를 거쳐 얻은 피드백을 반영해 최종도면을 만들었다. 먼저 구역을 크게 A·B·C 세곳으로 나눴다. A구역은 청년 예술가에게 저렴하게 대여할 작업실로 구성했다. B구역은 전시·행사 등이 열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C구역은 시장 상인과 고객을 위한 휴게공간으로 설계했다.

 

 

공간 개선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갖던 지역민의 기대감도 커졌다. 예술전공 학생들은 “작업실 월세가 비싸 부담스러운데, 저렴하게 이용할 곳이 생기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쉴 공간이 생기면 손님과 상인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며 “예술하는 청년들이 들어오면 시장에 활력이 생길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유후팀의 프로젝트는 청년예술가와 시장 상인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도면을 제작하는 것으로 끝났다. 현실이란 높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운영주체나 비용 조달방안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았다.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찾은 부천시 도시재생과와 도당 어울마당에선 ‘주민참여예산제’와 도시재생 사업 공모를 제안했다.

마침 인근 지역이 도시재생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아쉽게도 심곡고가교 하부까지 포함되진 않았다. 좀처럼 움직일 수 없는 코로나 국면도 발목을 잡았다. 염나경 학생은 “시범적으로 작은 플리마켓을 열고 싶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그조차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유후팀의 도전은 시도에 그쳤지만 남은 것은 크다. 학생들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데서 큰 보람을 느꼈다”며 “지자체의 지원과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성민 학생의 말에서 프로젝트의 의의를 엿볼 수 있다. “프로젝트가 실현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사소한 어떤 것이라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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