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놀다가 보던 그 달
일하러 가면서 보는 그 달

[2020/그믐달/서울/오상민작가]
[2020/그믐달/서울/오상민작가]

# 잠을 좋아합니다. 다음 생에는 하루의 3분의 2를 잠자는 데 쓴다는 사자나 고양이로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당연히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총각 땐 휴일이면 오후가 될 때까지 자기도 했습니다. 

#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등에 올라타고 발가락을 간지럽히고 팔을 꺾기도 하면서 일어나라고 재촉합니다. 부스스한 눈으로 일어나 아이들을 꼭 안고 있다 보면 꿈나라보다 더 행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일어나는 게 힘든 일만은 아닙니다.

# 그믐달은 음력 27일에 뜨는 눈썹 모양의 달입니다. 보통 새벽 3시에 떠서 오후 3시에 집니다. 새벽에서 해뜨기 전까지만 잠깐 볼 수 있는 달이지요. 예전엔 종종 그믐달을 보곤 했습니다. 새벽까지 신나게 놀던 그 시절의 얘기죠. 

# 며칠 전 새벽 촬영을 위해 집을 나설 때입니다. 주차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떠오르는 햇살에 물든 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습니다. 달력을 보니 음력 27일이더군요. 밤새 놀다가 보던 그 달을 이젠 일하러 가면서 보게 됐습니다. 

# 세월은 흐르고, 삶은 달라집니다. 여전히 고운 자태로 하늘에 떠 있는 그믐달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내년 그믐달이 뜨는 날엔 늦잠을 잘 수 있을까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가만히 놔둘까요? 글쎄요, 인생이 궁금합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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