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노조 마지막 이야기
힘없는 노동자 위한 노조 맞나

불법적으로 일감을 강탈하고, 조합원들에게 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받고, 조합원에게는 투표권조차 없는 이상한 노동조합. 바로 한국노총 소속 산별노조인 건설산업노동조합 얘기다. 이쯤 되면 이 노조가 과연 ‘노동자를 위한’ 노조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한국노총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도, 한국노총 총연맹도 이를 바로 잡을 생각이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준비한 건설산업노조에 관한 마지막 기사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가 건설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가 건설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이 노조는 노조가 아니다.”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내부에서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다. 실제로 이 노조가 하는 여러 행태를 보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적지 않다. [※참고 : 더스쿠프(The SCOOP)는 통권 408ㆍ409합본호와 410호의 기사를 통해 이 노조의 납득하기 힘든 행태를 보도한 바 있다. 이 노조의 비상식적 행태는 그 외에도 숱하다.]

하지만 행태가 이상하다고 해도 노조가 아니라고 주장할 순 없다. 건설산업노조는 2007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노조다. 2009년엔 한국노총 산별노조에 가입했다. 그럼 “노조가 아니다”는 비판은 왜 나오는 걸까. 근거는 또 뭘까. 이 질문을 법적 측면과 노조 규약 측면에서 살펴보자. 

■ 법적 정당성 논란 = 우선 ‘노동조합’의 정의부터 보자. 현행 노동조합법(노조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 근로자를 위한 조직인 만큼 ‘사용자’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근로자’와 ‘사용자’ 혹은 ‘근로자가 아닌 자’는 어떻게 판단할까. 판단 기준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 노조법상의 근로자 개념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따라서 실질적인 상황을 고려해 복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사용자, 어떤 이는 근로자라고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문제는 건설산업노조를 두고 “사용자(사업주ㆍ특히 법인사업주)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숱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노조에는 건설기계 임대사업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기업체 임원(전무)을 맡고 있는 사람이 지역 지회장을 맡았는데, 지역 신문을 통해 “공사 관련 적정 단가를 사수해 지역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건설산업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사업자등록을 갖고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온다”면서 “하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여서 그렇게 보일 뿐 ‘사용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참고 : 현행 노조법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단어가 없다. 특고라고 해서 무조건 근로자성을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현재 법원이 사안별로 소송을 통해 판단하고 있다. 특고를 상식적인 선에서 정의하면 대략 ‘개인사업자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용계약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법적보호가 필요한 근로자’ 다. 학습지교사, 지입차 운전자, 보험설계사 등을 일컫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견해는 다르다. 2018년과 2019년 두해에 걸쳐 건설산업노조 측에 “사업주가 포함돼 있으니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의 시정요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건설산업노조 소속 조합원 중 13명이 1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 활동하고 있음.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것으로 시정을 요구함.” 

건설산업노조 측은 남부지청의 문제제기에 어느 정도 수긍했다. 두해에 걸쳐 남부지청에 “사업주 논란을 시정했다”고 전했고, 남부지청은 2019년 1월과 2020년 1월에 이 문제를 행정종결했다. 그럼 건설산업노조에 가입해 있던 사업주는 깨끗이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당시 시정요구서 명단에 올랐던 이들 상당수는 지금도 조합원, 심지어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시정요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종결됐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노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수억원씩 하는 건설기계들을 구입해 임대사업을 하던 이들이 순식간에 사업장 없이 근로자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서류상으로만 요건을 갖추거나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산업노조는 법적으로나 노조 규약상으로나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한국노총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건설산업노조는 법적으로나 노조 규약상으로나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한국노총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남부지청은 당시 무얼 근거로 행정종결 처리를 했을까.[※ 참고 :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부분은 1문1답으로 표현했다.] 

더스쿠프 : “행정종결 처리 근거가 뭔가.” 
남부지청 관계자(당시 업무담당자) : “시정이 이행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 : “어떻게 확인했나.” 
남부지청 관계자 : “다양한 사안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다.”

더스쿠프 : 지금도 ‘건설산업노조에 사업주가 포함돼 있다’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부지청 관계자 : “사용자가 포함돼 있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계속 처리하고 있다.”

더스쿠프 : “전수조사 등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은가.” 
남부지청 관계자 : “일부 사용자가 포함돼 있다고 해서 노조가 아니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남부지청 관계자는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의 말은 노조에 ‘사용자’가 일부 섞여있다고 해서 문제 삼기는 힘들다는 건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조법엔 ‘사용자나 근로자가 아닌 자는 가입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노조법을 제멋대로 해석한 거나 다름없다. 

만약 남부지청 관계자 말대로 ‘사용자’의 노조활동을 인정해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사용자’에게 고용돼 일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노조법보다 명확하게 법적보호가 필요한 근로자)의 법적 지위가 애매해진다. 법조계에서 노조법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수의 변호사는 “노조법의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노조 규약상 정당성 논란 = 이번엔 노조 규약 측면에서 건설산업노조를 살펴보자. 한국노총 총연맹 규약으로 보면 건설산업노조는 존재 자체가 ‘논란거리’다. 이 노조는 2009년 총연맹 산하의 산별노조로 가입했는데, 총연맹 규약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총연맹 규약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1만명 이상’이 산별노조 가입 조건이다. 그런데 건설산업노조 위원장 A씨(2007년~현재)는 당시 조합원 명부를 거짓으로 꾸며 제출했다. 노조 내부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고, A씨는 2015년 사문서 위조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건설산업노조는 총연맹과의 서약도 지키지 않았다. 2009년 총연맹이 만든 ‘산별노조 서약서’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돼 있다. “2009년 10월부터 6개월마다 실 조합원 확인에 의한 월평균 1만명 이상의 의무금 납부를 성실히 이행한다.”

하지만 더스쿠프가 입수한 2012~2013년 ‘총연맹의 맹비(의무금) 월계표’에 따르면 건설산업노조가 낸 의무금은 3000명 몫이 채 안 된다. 총연맹과의 서약을 어겼다는 건데, 이는 심각한 문제다. ‘산별노조 서약서’엔 “의무금 성실 납부가 이행되지 않을 시 한국노총 회원조합 인준이 취소됨을 인정한다”고 적시돼 있다. 
 

위원장 A씨의 자격도 논란이 많다. 그는 2011년 1월 2대 건설산업노조(당시 전국건설ㆍ기계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심각한 후보자 결격 사유가 있었다. 출마 전에 제출한 A씨의 의무금 납부 내역이 엉터리였던 거다. 한국노총 총연맹 규약상 의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이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 A씨는 노조 관련 ‘업무상 횡령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직후였다. 

오죽하면 당시 노조 선거관리위원장도 “A씨의 당선은 무효”라고 공식 발표했을 정도다. 선관위는 노조 측에 ‘당선 취소’ 공문을 보냈지만 A씨는 물러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5선째 위원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A씨는 “뭘 다 지난 일을 묻느냐”면서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한국노총 총연맹 측은 질문도 받지 않았다. 

노조 논란은 한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실한 노동자의 자리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한 건설현장에서 기존 일감을 빼앗기 위해 수십명의 건설산업노조 조합원들이 사업자 1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용노동부도, 한노총 총연맹도 아무런 답이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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