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 계획에도 ESS 울상인 이유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 발표 이후 친환경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린뉴딜 계획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대폭 늘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서다. 그런데 이상하다. 2017년 이후 두차례 대형화재 사건을 겪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는 침울하다. 엄연한 친환경 관련 시장이고, 발전용량을 늘리면 수혜를 보기 마련일 텐데, 왜 그런 걸까. 

정부는 그린뉴딜 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을 위한 보조금 정책은 언급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정부는 그린뉴딜 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을 위한 보조금 정책은 언급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지난 7월 정부가 한국형 뉴딜 계획을 발표한 이후 신재생에너지 업계에 활기가 돌고 있다. 한국형 뉴딜 계획에 담긴 그린뉴딜 투자 계획 덕분이다. 한국형 뉴딜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총 73조4000억원을 기후변화 대응 강화와 친환경 경제 구현을 위해 투자한다. 이 투자액에 들어가는 국비만 4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확산기반 구축과 공정한 전환 지원’에 9조2000억원이 쓰인다. 전체의 21.5%(국비 기준) 규모다. 

이렇게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 수요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그린뉴딜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은 2019년 13GW에서 2025년 43GW로 늘어날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몰라보게 뛰어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초부터 지난 6월까지 1만원대를 오르내리던 한화솔루션 주가는 7월 이후 급등해 14일 기준 4만6250원을 기록했다. 태양광모듈과 인버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생산하는 현대에너지솔루션의 주가도 같은 기간 1만원대에서 3만5000원 선까지 치솟았다. 1000원도 채 안 하던 풍력발전 설비 설계·제조업체 유니슨의 주가 역시 6000원 선까지 상승했다. 실제 사업 추진 소식도 들린다. 최근 울산 등 일부 지자체는 대규모 부유식 해상풍력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만 보면 신재생에너지 업계 전체가 마냥 신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부의 표정은 썩 좋지 않다. 바로 ESS 생산업체들이다. 신재생에너지는 그 특성상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ESS가 필수항목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ESS 업체들의 표정이 밝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사실 국내 신재생에너지(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보조금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와 공급인증서(REC) 제도를 통해서다. RPS 제도는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이 일정한 비율의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REC 제도는 발전사업자들이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로 할당 비율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없으니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로부터 인증서를 구입해 대체하도록 한 제도다. 전기를 좀 더 비싼 값에 구매하더라도 신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된 제도들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신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7% 수준이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30년까지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추진했다. REC 가중치를 5배까지 인정해주기로 한 거다.

예컨대 태양광발전을 통해 1의 전력을 생산하면 5만큼 생산한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거였다. 태양광발전이 곧 ‘돈 되는 사업’이 된 셈이다. 태양광발전 설비가 2017년 5062㎿에서 2019년 1만505㎿로 2배 이상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최근 들어 REC 가중치가 조정됐다는 점이다. 5.0이었던 REC 가중치는 지난 7월부터 4.0으로 하향조정됐다. 여전히 낮은 수준의 인센티브는 아니지만, 이마저도 2021년 일몰을 전제로 한 제도다. 정부가 연장 방침을 밝히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건데,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에겐 정책 불확실성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자칫하면 REC 가중치를 적용받지 못할 수도 있다. 2017년부터 잇달아 ESS의 과한 충전으로 화재가 발생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 RPS 관리운영 지침을 개정해 발표했다. 내용은 ‘안전기준치(옥내 80%·옥외 90%)를 초과해 충전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해당 월의 REC 가중치를 0으로 조정한다’는 거였다. 과충전을 막아 ESS 화재를 막겠다는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전력은 ESS 특례할인제도도 축소한다. 특례할인 제도는 전기공급약관에 따라 특정한 용도 혹은 특정한 대상의 전력요금을 할인해주는 거다. 이 가운데 ESS 특례할인은 ESS를 설치한 이들에게 충전요금과 피크감축량에 따른 기본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 한전의 신통치 않은 실적 영향으로 축소되는 추세다.

ESS 화재 사고를 막는다는 이유로 산자부는 REC가중치를 조정했다.[사진=뉴시스]
ESS 화재 사고를 막는다는 이유로 산자부는 REC가중치를 조정했다.[사진=뉴시스]

이쯤 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의 입장에선 계산기를 두드려볼 수밖에 없다. 한 발전사업자는 “정책이 장기적이지 않고 몇년에 한번씩 이렇게 들쑥날쑥하니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면서 “태양광발전을 계속 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발전사업자들이 정책에 의문을 가지면 정부 정책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증설할 이들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ESS 생산업체들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 A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산업용(공장)의 경우엔 전력을 모아뒀다가 피크시간대에 사용해 전기료를 아낀다는 측면이 있어 ESS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발전사업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보조금(REC 가중치)이 줄어드는 데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신규 설치는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현재 국내 발전용 ESS 수요는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회사 내부적으로는 해외 쪽으로 집중할 예정이다.”

해외에선 보조금 늘리는데

해외 분위기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일례로 미국은 최근 ESS 보조금을 더 늘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입법안도 나왔다. 이전에는 태양광과 연계해 ESS를 설치할 때에만 보조금을 줬지만, ESS만 설치하거나 풍력과 연계해 설치할 때에도 보조금을 주겠다는 거다.

이에 따라 ESS 시장도 2024년까지 연평균 60%대로 성장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국은 투자 설비액의 30%를 세액공제해 주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국내 ESS 업체들 사이에서 해외를 공략하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정부가 그린뉴딜을 발표하면서 발전설비를 늘린다고는 했지만, 보조금(REC 가중치)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방침을 내지 않았다”면서 “그래서인지 업계 안팎에 뜬소문만 무성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연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면 REC 가중치 연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그린뉴딜을 추진하겠다면 단계적으로 일몰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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