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잘못 끼운 첫단추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정치권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이름값’ 있는 인사들이 줄줄이 거론되고 있어서다. 사태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흐르자 정치권은 ‘네탓’ 공방을 시작했다. 여권에선 ‘박근혜 정부 때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게 원인’이라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 야권은 ‘또 전 정권 탓이냐’면서 맞받아치고 있다. 대체 어디에서 빈틈이 생긴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모펀드의 잘못 끼운 첫단추를 취재했다. 

사모펀드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사진=뉴시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격전지는 2020년 국정감사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모펀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정무위는 물론 법사위·기재위·행안위 등의 국감에서 사모펀드 사태를 두고 각을 세웠다.  

야당은 사모펀드 사태를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정권과 집권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등 정권과 맞닿을 수 있는 관계자들의 연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지난 22일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 설치에 관한 법률도 발의했다.

여당도 야당 인사의 라임·옵티머스 로비 의혹에 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이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모펀드 사태가 불거진 원인은 자본시장활성화법과 관련한 규제 완화에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몇몇 조항을 손질하면서 규제가 완화됐고, 그 허점을 노린 사기꾼들이 활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펀드 규제 완화가 사모펀드 사태의 씨를 뿌린 건 사실이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허가제였던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설립 기준을 등록제로 변경한 건 2015년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완화 내용을 보면, 설립 시 필요한 자기자본을 60억원 이상에서 20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투자자의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조정했다. 운용행위 감시 규정을 배제해 투자자산을 보관·관리하는 신탁업자의 사모펀드 감시 의무를 면제했다. 박근혜 정부의 과도한 규제 완화가 사모펀드 사태를 부추긴 셈이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오로지 피해자일까.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 역시 사모펀드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혁신성장’을 경제정책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문재인 정부도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게 금융위원회가 2017년 12월 발표한 ‘신뢰받고 역동적인 자산운용시장 발전방안’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전문 사모펀드운용사의 시장 진입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최소자본금 기준을 2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췄다. 사전 등록이 필요했던 사모펀드 설립 규정은 설립 후 2주 내 사후 보고하는 것으로 완화했다. 2015년 완화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설립 기준을 더 낮춘 셈이다. 공모펀드에 적용되는 분산투자 규제·금전 대여·채무보증 금지·공시 의무 등의 규제를 사모펀드엔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때다.


사모펀드 규제 푼 박근혜 정부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9월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개편 추진 방향’에선 사모펀드 투자자를 49인 이하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일반투자자의 수는 기존과 같은 49인 이하로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전문투자자와 기관투자자를 더 끌어모을 수 있도록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하지만 정부의 사모펀드 활성화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더 큰 문제는 사모펀드의 위험요인이 속속 노출되고 있음에도 ‘규제 완화’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해 8월 주요 시중은행이 판매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터진 직후였던 10월에도 문재인 정부는 규제를 계속 완화해 나갔다.

현 정부도 사모펀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사모펀드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공모펀드인 ‘사모펀드 재간접펀드’의 최소투자금액(500만원 이상)을 폐지한 건 단적인 사례다. 최소투자금액은 투자자의 신중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존재했던 규제였지만 일반투자자의 투자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목으로 폐지됐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DLF 사태와 라임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직후 금융위원회는 “실태를 점검했지만 대부분 운용사나 펀드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4개월 후 옵티머스 펀드가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사모펀드 부실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음에도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은 허술했다는 얘기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뤄진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현 정부의 관리 부실이 사모펀드 논란을 키웠다”며 “2015년 규제 완화로 수탁사·판매사·신탁사의 감시·확인·보고의무가 모조리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올 4월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옵티머스 사태가 터졌다”며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얼마나 부실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에 이어 올해 4월 ‘사모펀드 현황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 최소 투자금액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조정 ▲녹취·설명의무 등 판매절차 강화 ▲수탁사와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증권사의 사모펀드 관리·감시기능 부여 등이다. 금융당국은 상시 모니터링을 위한 감독·검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도 규제 완화 기조

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수탁사와 PBS 증권사에 사모펀드 감시 의무를 부여했지만 투자자산이나 운용전략 등 구체적인 감시 범위를 제시하지 않았다. 판매사에 사모펀드 투자설명자료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열어놨지만 어느 선까지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제도개선안에는 감독·검사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개선안이 투자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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