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

[2020/핼러윈과동심/고창/오상민작가]
[2020/핼러윈과동심/고창/오상민작가]


# 며칠 전, 집에 들어가니 첫째가 얼굴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습니다. 깜짝 놀라 다친 거냐고 물어보니 핼러윈 때 미라를 할 거라며 연습 중이랍니다. 핼러윈데이는 서양에서 10월 31일 벌어지는 축제입니다. 아이들은 귀신 등 괴상한 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음식이나 초콜릿을 얻으러 다닙니다. 

# 저는 핼러윈데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태원에서 펼쳐지던 화려한 코스튬 플레이, 어린이집 핼러윈 행사를 위해 수십만원의 코스튬 복장을 준비했다는 뉴스 등을 접하곤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습니다. 전통 명절은 챙기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명절만 챙기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욱 그랬지요. 

#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추석, 설날보다 핼러윈데이를 더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마녀가 돼보기도 하고 붕대를 감고 미라가 돼보기도 합니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어벤져스’의 영웅이 돼보기도 합니다. 만화 속 주인공으로 신나게 변장하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핼러윈데이도 적당한 수준으로 즐긴다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아이가 미라로 변신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붕대 4개뿐이었습니다. 

# 핼러윈데이 축제가 펼쳐진 한 행사장입니다. 바닥에는 모형 해골들이 누워 있습니다. 묘지를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4~5살쯤 됐을까요? 한 아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뼈다귀를 주워옵니다. 그러더니 누워 있는 해골 옆에다 살짝 놓습니다. 아이는 따로 떨어져 있는 뼈다귀를 주인에게 돌려준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뻐 보이던지….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또 한번 배웁니다. 이럴 땐 어느새 선입견과 편견으로 물든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번 핼러윈에는 아이와 함께 저도 붕대를 준비해볼까 합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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