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화장품 수출업체 김선미 유리코스 대표

몇 년 전부터 K-뷰티가 해외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스킨케어가 인기다. 화장품업체라면 한번쯤 기회를 노려볼 만하다.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블루오션일까 레드오션일까. 답은 간단하다.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아직도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면, 그곳은 블루오션이다. 김선미(45) 유리코스 대표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 화장품 수출회사를 차린 이유다.

김선미 유리코스 대표는 K-방역이 주목받는 지금이 해외 시장을 두드를 적기라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김선미 유리코스 대표는 K-방역이 주목받는 지금이 해외 시장을 두드를 적기라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파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기계도 팔고, 타이어도 팔았다. 영업현장에서만 20년, 뒤돌아보지 않고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한해 두해 지날수록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커져만 갔다. 더 늦기 전에 ‘내 일’을 하고 싶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배짱으로 창업을 하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던 일을 밖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직도 직장인인 것 같다”는 김선미 유리코스 대표는 오늘도 백팩을 메고 일터로 향한다. 

✚ 영업을 오래 하셨는데, 화장품도 팔아보셨나요?
“직전 회사에서 일할 때 화장품 사업부가 신설됐어요. 화장품 사업부 총괄책임자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화장품 시장을 들여다보게 됐죠. 더 정확하게는 마스크팩이었어요.”

✚ 들여다보니 어떻던가요?
“회사에서 중남미 바이어들을 많이 상대했는데, 언젠가부터 한국 마스크팩에 높은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처음에 그들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마스크팩을 제안받길 원했어요. 그러다 점점 우리 제품을 원하더라고요.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으니, 그걸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받길 원했던 거죠. 해외 바이어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자사 마스크팩을 생산·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게 창업의 계기가 된 건가요?
“마스크팩을 공부하다 보니 점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창업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5월 말에 사표를 냈고, 6월 10일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 퇴사하고 창업하는 데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고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놨거든요. 창업하기 전에 이미 종합화장품의 제형劑形(의약품을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맞게 적절한 형태로 만든 것)을 갖추고 있었어요. 테스트도 이미 마친 단계였고요. 언제든지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창업 전에 해놓은 거죠. 법인 설립하고 채 한달이 되지 않아 마스크팩을 출시했어요. 이후 세럼 1종, 크림 1종을 생산했고, 현재는 클렌저와 기초화장품 몇가지가 생산을 기다리고 있죠.”

✚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새로운 원료를 개발하고 특허를 내는 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원료로 제품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직전 회사에서 화장품 사업부를 맡아 일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 전에 다니던 회사 입장에선 불편한 상황일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직원, 그것도 총괄책임자였던 사람이 같은 아이템으로 창업을 한다는 건 다른 말로 회사의 정보와 기술, 고객이 빠져나가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대표께선 ‘한번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어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파트너사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창업하기 전에 고민을 공유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조건으로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주셨어요. 덕분에 이것저것 걱정하지 않고 마음먹었던 것을 빨리 현실화할 수 있었습니다.”

✚ 6월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중국·베트남에서도 상표 출원을 했습니다.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동시에 두드리는 전략인가요?
“유리코스는 수출회사를 표방합니다. 주력 바이어들도 해외 바이어고요. 유리코스는 그들에게 한국 화장품을 팔려고 창업한 회사지, 국내 경쟁에 끼어들려고 출발한 회사가 아닙니다.”

✚ 국내 화장품 시장이 치열해서인가요?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판단했습니다. 경쟁이 과도하다 보니 어렵게 만든 화장품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죠. 우리 같은 신생업체까지 간판 내걸고 그곳에 뛰어들어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국내 영업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한국 시장에선 서비스 차원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국내 업체들도 해외 시장에 많이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도 치열할 것 같은데요.
“네. 그렇죠. 하지만 주요 마켓에 몇개의 상품이 있는지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해외 주요 마켓에 수백, 수천개의 상품이 있는데 그중 한국 상품이 두세개다? 그럼 승산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 입장에선 별천지나 마찬가지죠.”

✚ 그렇더라도 지금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선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상황이 원활하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창업을 만류한 대부분의 이유도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금을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이 위기가 절호의 기회라고요?
“코로나19로 K-방역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방역이 뭔가요. 의학·기술력·위생이 포함된 것입니다. 화장품은 그중 기술력과 위생이 중요한 품목이고요. 해외 바이어에게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에 한국 화장품을 제안한다면 어떤 걸 더 신뢰할까요? 당연히 후자겠죠.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이 세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한발 후퇴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 화장품 산업은 정부가 육성하는 산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이니 정부의 지원을 좀 받으셨나요?
“창업을 하고 나서 정부의 여러 지원사업에 공모했습니다만 실제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어요.”

✚ 이유가 뭔가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사업은 대부분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공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죠. 우리는 자사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직접 제조를 하지 않고 위탁합니다. 그러다보니 제조업체가 아닌 책임판매업자로 분류가 되더라고요. ‘제조업이 아니니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김선미 대표는 창업 전 제품 출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선미 대표는 창업 전 제품 출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많이 아쉽겠습니다.
“조금 씁쓸하죠. 우리 회사는 자사 브랜드도 있지만 OEM·ODM도 합니다. 해외에서 의뢰를 해오면 우리의 에코 파트너사들이 나눠서 생산을 하죠. 그들은 우리를 제조업체로 여기고 OEM·ODM을 의뢰하는 건데, 정작 우리는 자국에서 제조업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입니다. 화장품을 위탁 제조해 수출하거나 OEM·ODM 제품을 위탁 제조해 공급하는 화장품 업체도 제조업으로 인정해줬으면 합니다.” 

✚ 직접 제조를 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앞으로도 공장을 운영할 생각은 없습니다.”

✚ 의외의 답인데요. 
“그런가요?(웃음) 우리 사회 곳곳엔 인생을 걸고 공장을 운영해 오신 수많은 ‘쟁이’분들이 계세요. 다만 그분들은 수출과 영업을 잘 하진 못하시죠. 대신 우린 영업 하나만은 자신 있어요. 그런 분들과 협업을 하면 됩니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걸 할 때 가장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창업 4개월 차입니다. 다시 5월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창업을 하시겠습니까?
“시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창업할 거 같습니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죠. 살면서 그것만큼 큰 행복이 있을까요?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얻는 건 있잖아요.”   

김미란 더스쿠크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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