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창신동 높은 곳의 소소한 고찰

높은 곳의 장점은 ‘기막힌 전망’이다. 탁 트인 전망을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높은 곳’은 피하고 싶은 삶의 공간이자 잊고 싶은 삶의 불편함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높은 곳’을 찾은 이들에게 삶의 한구석을 침범당했다고 느낄지 모른다.

동이 튼다. 높은 곳부터 햇살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높은 지형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저 꼭대기 언저리에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가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동이 튼다. 높은 곳부터 햇살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높은 지형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저 꼭대기 언저리에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가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는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지하철보다 버스를 타고 기차, 비행기를 예약할 때도 창가 자리를 선택하곤 한다. 카페를 가거나, 도서관에 자리를 잡을 때에도 전망이 가장 좋은 창가 자리에 앉는다.
 
결혼을 하고 이사할 집을 고를 때도, 사무실 자리를 알아볼 때도, 풍경을 보고자 하는 성향은 달라질 리 없다. 기본 조건인 예산과 규모(면적), 위치를 결정하고 몇개의 적절한 장소를 골라내면 최종 선택은 ‘좋은 전망’이 있는 곳이다.
 
나는 ‘전망욕’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가장 긴 시간을 머무르는 ‘사는 곳’과 ‘일하는 곳’ 모두에 괜찮은 전망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곳들은 꽤 높은 곳에 있다.
 
창신동 사무실 : 해발 72m
정릉동 아파트 : 해발 191m

 
서울의 평균 해발고도가 38m이고 사대문 안 도심지 고도가 대략 20~30m인 것을 고려하면 집과 사무실 모두 상당히 높은 곳에 있다. 지금부터 사는 곳의 ‘높이’에 대한 소소한 고찰을 시작한다.

노을을 보기 위해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 사무실에서 단 몇걸음만 걸어 나오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노을을 보기 위해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 사무실에서 단 몇걸음만 걸어 나오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해가 지고 펼쳐지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 제자리에 서있기만 해도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풍광을 보여준다. [사진=오상민 작가]
해가 지고 펼쳐지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 제자리에 서있기만 해도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풍광을 보여준다. [사진=오상민 작가]

■전망이 좋다 = 높은 곳은 낮은 곳보다 시야의 각도가 훨씬 넓다. 낮은 곳에서는 크고 높은 것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고 가려진 시야 사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는 크고 높은 것들을 모두 발아래 둘 수 있어 시야의 반은 하늘, 나머지 반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탁 트인 전망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다.
 
내 사무실은 창신동 낙산 중턱에 있다. 산 위에 있다 보니 높은 건물이 없어 위로는 하늘이 넓게 보인다. 아래로는 동대문 일대 시가지가 와이드하게 펼쳐져 좋은 전망을 보여준다. 가끔 사무실 앞 정자에 앉아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모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사무실 창틀 밖 풍경. 종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다는 것은 더 아름다운 조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무실 창틀 밖 풍경. 종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다는 것은 더 아름다운 조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올라가야 한다 = 출근길 버스를 타고 동묘앞역(해발 20m)에서 내린다. 사무실이 해발 72m에 있으니 매일 아침 10분 남짓한 등산(?)을 해야 한다. 대략 18층 정도 높이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내려갔다 걸어 오르고 급한 일이 생겨 내려갔다 다시 오르면 하루에 54층, 72층을 오르는 셈이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전기밥솥을 사무실 주방에 가져다 놓았다. 근래에는 ‘코로나’를 핑계 삼아 자차로 출근을 시작했으며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도 배정받았다. 오르는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등산은 참 힘든 일이다.

점심시간이다. 수많은 계단을 다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 높이의 극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진=오상민 작가]
점심시간이다. 수많은 계단을 다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 높이의 극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진=오상민 작가]

■온도와 바람 = 내 사무실은 동묘앞역보다 수직으로 50m 정도 높다. 고도가 100m 높아질수록 기온이 0.6도가 내려간다고 하니 동묘앞역보다 실제로는 0.3도 정도 온도가 낮을 것이다. 기온차는 별로 없지만 체감온도는 확실히 다르다. 미세먼지를 쓸고갈 정도로 강력한 ‘높은 곳의 바람’ 때문인 듯하다. 이제 산위 사무실에서 맞을 첫번째 겨울이 오고 있다. 월동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가로운 분위기 = 사무실이 있는 창신동은 동대문, 동묘앞역, 한성대, 대학로로 둘러싸인 시내에 있는 꽤 복잡한 동네다. 그에 반해 사무실 근처 마을 분위기는 굉장히 한가롭다. 마치 다른 세상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첫번째 이유는 이곳의 건물 높이를 낮게 규제한 도시계획 때문이다. 1종·2종 일반주거지인 이곳은 저층의 주거지가 조성돼 다른지역지구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다.두번째 이유는 높이다. 특별한 유입시설 없이 높이가 높은 주거지에는 거주자 말고는 아무도 올라갈 일이 없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사무실 근처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만, 편의시설이 적은 면은 감수해야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무실 근처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만, 편의시설이 적은 면은 감수해야 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땅값 = 땅값은 이런 모든 조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동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산, 언덕 위 동네는 낮은 곳에 위치한 동네보다 땅값이 싸다. 전망이 신통찮거나 접근이 힘들면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반대로 전망이 좋으면 웃돈이 붙기도 한다.
 
■높이의 개념 변화 = 상도동 장승배기 ‘달동네’ 꼭대기 셋방은 부모님께서 처음 상경해 서울살이를 시작한 곳이다. 아마도 매일같이 퇴근하며 언덕길을 오르는 것은 가난을 가슴에 새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과거 달동네의 ‘높이’는 가난의 상징이자 ‘극복의 대상’이었다.

낙산꼭대기에 새로 생긴 카페의 옥상에는 전망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높이는 누군가에겐 극복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겐 조망의 대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낙산꼭대기에 새로 생긴 카페의 옥상에는 전망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높이는 누군가에겐 극복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겐 조망의 대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얼마 전 창신동 낙산 꼭대기에 눈에 띄는 건물들이 새로 들어섰다. 서울시에서 조성한 ‘채석장전망대’와 개인이 지은 ‘전망 좋은 카페’다. 이 두 건물들은 대지의 위치가 갖는 특징인 ‘높이’를 ‘전망의 도구’로 잘 활용한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전망을 서비스 하기 위해 최선의 건축계획을 한 듯하다. 사람들은 그 전망을 보기 위해 오늘도 낙산을 오른다.
 
높은 곳에서 전망을 보다보면 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전망대가 없었다면 관찰되지 않았을 삶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침범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악의는 없지만 마을 곳곳에 새로 생긴 불편한 시선일지 모른다. 그러나 높이의 개념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마을 주민들도 그런 변화를 불편함만이 아닌 좋은 가치로 누렸으면 한다.

글=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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