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나는 롤러블TV 통할까

1억6667만원. LG전자가 야심차게 출시한 롤러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의 가격(실제 매장판매가)이다. LG전자 측이 발표한 ‘1억원’보다 훨씬 비싼 수준이다. TV 1대 가격이라고 보기에도 지나치다. 그동안 롤러블TV를 향한 시장의 뜨거운 관심이 차갑게 식은 이유다. 그 어떤 경이로운 기술로 무장했다고 해도 소비자가 중심에 없으면 혁신제품은 사치품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롤러블TV는 과연 TV일까 사치품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억소리나는 롤러블TV를 취재했다. 

LG전자의 야심작 롤러블TV가 시장에 공개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사진=뉴시스]
LG전자의 야심작 롤러블TV가 시장에 공개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사진=뉴시스]

# 지난 20일 LG전자 유튜브 채널에 롤러블TV(제품명 LG 시그니처 올레드 R) 언팩 행사 영상이 공개됐다. 각계각층의 유명인사가 롤러블TV의 베일을 벗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들었다. 가로 145㎝ㆍ세로 83㎝. 65인치 크기의 TV화면이 스탠드 안에서 솟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래 기술인 줄만 알았는데 현재로 성큼 다가왔다. 우리 삶의 많은 면을 업그레이드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가장 진일보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를 TV로 구현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TV 형태로 만들기 위한 여러 구조물을 만드는 데도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LG전자가 선보인 올레드 R을 두고 ‘미래를 앞당겼다’는 찬사가 쏟아진 이유다.

하지만 TV상품으로서의 올레드 R은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소비자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TV상품이라면 스탠드 안으로 화면이 돌돌 말려들어가는 경이로운 기술 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숱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올레드 R은 한계가 뚜렷하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올레드 R의 판매가격은 무려 1억6667만원에 달한다. 일부 매장에 한해서만 가장 먼저 구매하는 고객 1명에게 1억원의 특별가로 판매한다. 그 ‘1명’이 아니라면 매장별 재량으로 할인 혜택을 받더라도 1억5000만원은 지불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는 엄두도 못 낼 금액이다. 

물론 이것도 LG전자가 고수하는 고급화 전략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올레드 R은 기술 혁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제품으로 애초에 일반 소비자가 타깃이 아니다”면서 “초프리미엄과 희소가치를 동시에 원하는 최상위 수요를 겨냥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레드 R이 초프리미엄 제품에 걸맞은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의문스럽다. 1억원을 호가하는 가격치곤 ‘스펙’이 부족해서다. 올레드 R은 해상도 4K, 크기 65인치의 단일 모델로 출시됐다. 해상도는 화질과 직결된다. ‘더 나은 화질의 TV를 만드는 것’은 제조사들의 영원한 화두이자 숙제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OLED냐 QLED냐” “누가 진짜 8K냐”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처럼 제조사 간 자존심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맥락에서 올레드 R의 해상도가 8K가 아닌 4K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참고 : 일부에선 “8K는 오버스펙”이라면서 올레드 R의 해상도가 현실적 수준이라고 옹호한다. 8K TV로 즐길 만한 콘텐트가 현재 없다는 건데, 콘텐트 제작사들이 완벽한 8K 영상을 구현하는 건 결국 시간문제다. 8K TV가 출시된 지도 벌써 2년여가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초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올레드 R이 4K라는 건 모순이다.] 

초프리미엄 제품치곤 스펙이…

올레드 R의 크기가 65인치밖에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65인치도 작은 크기는 아니지만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 TV는 ‘거거익선巨巨益善(크면 클수록 좋다)’으로 통한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65인치뿐이라는 점은 올레드 R의 결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LG전자 측이 “롤러블 기능이 왜 필요한지,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관해서 명쾌한 답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일례로 LG전자의 88인치 8K OLED TV가 5000만원대다. 올레드 R의 3분의 1 가격이다. ‘말렸다 펴는’ 기능을 빼면 OLED TV와 다를 게 없는 올레드 R이 왜 매력적인지 LG전자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기술 혁신, 폼팩터 혁신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올레드 R은 고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LG전자가 말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란 ‘TV 배치가 좀 더 자유롭다’는 것과 화면을 말아 넣었을 때 ‘개방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1억원 이상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말아 넣어야 하는 이유라기엔 설득력이 조금 떨어진다. 
 
‘올레드 R은 LG전자를 상징하는 제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올레드 R은 ‘LG전자가 TV시장에서 이런 제품도 팔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라는 데 방점을 찍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실질적인 수익은 거의 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사실 LG전자가 올레드 R을 4K 65인치 제품으로만 내놓을 수밖에 없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란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롤러블TV의 스펙을 바꾸는 건 간단치가 않다. 가령, 인치를 늘리면 커버윈도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유리가 깨질 우려가 크고, 구조를 만드는 기술 수준도 더 높아야 한다. 공정도 다시 세팅하고, 개선 과정도 필요하다. 개발 과정도 더 길어졌을 공산이 크다. 8K 역시 가격적 부담이 크다. 현재도 양산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나마 1억원대로 팔 수 있는 수준이 이 정도라고 봐야 한다.” 

고급화 전략이라곤 하지만 상용화는 시기상조란 얘기다. 이 때문인지 업계 안팎에선 ‘올레드 R이 학습효과의 대상’이란 말도 나온다. 제품의 판매ㆍ사후관리(AS) 과정에서 얻는 피드백을 롤러블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남상욱 연구위원은 “일례로 삼성전자의 엣지 디스플레이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때 받은 피드백과 경험 덕분에 지금의 삼성 폴더블폰이 나올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면서 “LG전자도 올레드 R을 통해 쌓은 경험을 거름 삼아 부족한 면을 개선하거나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올레드 R 언팩 영상은 공개됐고, 영상 속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영상의 조회수가 3일간 4만여건(22일 기준)에 그칠 정도로 소비자의 호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그동안 롤러블TV를 향해 시장이 보낸 기대와 찬사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숫자다. 올레드 R은 과연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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