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 앞에 놓인 더 무거운 과제

‘3조원여의 실탄을 넣겠다’는 두산중공업 자구안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이미 마련한 데다, 추가자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 때문인지 두산그룹 안팎에선 ‘7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의 재무적 문제가 풀린다고 모든 위기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해상풍력업체로 체질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두산중공업은 ‘바닷바람 앞 촛불’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두산중공업 앞에 놓인 무거운 과제를 취재했다. 

두산중공업이 해상풍력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두산중공업이 해상풍력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뼈를 깎는 자세로 준비했다.” 지난 4월 13일 두산그룹이 3조원여의 자금 확보를 골자로 하는 ‘두산중공업 재무구조개선 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출하면서 남긴 말이다. 빈말이 아니었다. 자구안을 제출한 지 6개월여,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두산중공업의 정상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3조원을 마련해야 하는 고강도 자구안이 벌써 7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지금까지 두산중공업에 넣기 위해 두산그룹이 확보한 자금은 총 2조2076억원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두산그룹이 보유한 두산타워와 클럽모우 골프장을 매각해 각각 8000억원, 1850억원을 조달했다.

돈이 될 만한 계열사에도 메스를 댔다. 유압기기를 제조하는 모트롤BG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4530억원에 매각하고,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의 지분 96.77%를 711억원에 팔았다. 전기차 배터리용 핵심 소재를 만드는 두산솔루스는 ㈜두산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18.05%와 특수관계인 지분 34.88%를 매각해 6985억원을 마련했다. 

이제 자구안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남은 금액은 1조여원. 두산그룹엔 두장의 매각 카드가 남았다. 그룹 내 골칫거리인 두산건설과 알짜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다. 그중 몸값이 1조원에 이르는 두산인프라코어를 매각하는 데 성공하면 단숨에 자구안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 이같은 인수ㆍ합병(M&A) 시나리오는 어렵지 않게 성사될 가능성도 높다. 두산인프라코어 M&A의 걸림돌로 꼽히던 우발채무를 두산그룹이 떠안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중공업 역시 1조171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다. 차질 없이 마무리되면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은 4조원을 넘어선다. [※참고 : 두산그룹이 보유한 자산 매각대금 2조2076억원, 두산인프라코어 예상 매각금액 1조원, 유상증자 1조1712억원을 모두 합하면 4조3788억원이다.] 

이는 자구안 목표치인 3조원을 초과달성할 뿐만 아니라 4조4358억원(지난 상반기 기준)에 달하는 두산중공업의 단기차입금을 한번에 털어낼 수 있는 금액이다. 아울러 오너 일가로부터 5744억원 상당의 두산퓨얼셀 지분 17.77%를 증여받아 자본금도 키웠다. 두산중공업이 숨통을 죄고 있는 부채 리스크에서 해소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재무구조만 개선하면 두산중공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거다.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진 게 부채 때문이라면 재무 문제만 손보면 된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의 위기 원인 중 하나는 ‘부실계열사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데 따른 재무적 문제’다. 두산중공업은 경영난에 빠진 두산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현물출자ㆍ유상증자 등 형태로 2조원에 가까운 돈을 투입했다. 이는 분명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가속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의 경영난을 초래한 원인이 ‘재무적 문제’에만 있는 건 아니다. 두산중공업의 매출(별도 기준)은 2012년 7조6726억원을 기록한 이후 줄곧 감소세를 그리다 지난해(3조7086억원)엔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5분의 1 토막 났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석탄 화력발전시장이 축소되고 신재생에너지가 대두되는 게 세계 시장의 흐름이었는데 두산중공업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거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도 같은 이유로 “두산중공업의 성장 잠재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두산중공업이 정상화하기 위해선 재무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체질개선까지 함께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다. 화력ㆍ원자력 중심의 사업구조를 신성장동력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건데, 그 중심엔 ‘해상풍력’이 있다. 해상풍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난 7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엔 국내 해상풍력발전 규모가 12기가와트(GW)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규모(124㎿)보다 100배 큰 수준이다.

문제는 두산중공업의 해상풍력사업이 얼마나 빨리 성장할 것이냐는 점이다. 현재 두산중공업의 매출은 대부분 화력과 원자력에서 나온다. 화력은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원전은 15% 수준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화력발전의 수요는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원전 상황도 여의치 않다.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국내에선 사업이 쉽지 않다. 원전시장 특성상 정부 지원 없이 기업 스스로 해외수주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산중공업에 그나마 남아있는 원전 일감도 2021년이면 동이 난다. 두산중공업의 해상풍력사업이 기대만큼 성장해주지 못한다면 자칫 매출 공백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두산중공업에 13조원가량(지난 상반기 기준)의 수주잔고가 남아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최근 두산중공업의 연간 매출이 4조원 안팎이란 걸 감안하면 3년간 수주를 받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수주잔고가 2017년 이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려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두산중공업이 정부 정책으로 인한 수혜를 얼마나 볼지 알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해상풍력 육성 정책은 장기플랜인 데다, 실제 인허가를 받고 설치하기까지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더구나 세계적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두산중공업의 해상풍력 경쟁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무조건 낙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상업운전 중인 두산중공업의 풍력발전기는 3㎿급이다. 5.5㎿급 발전기는 아직 실증단계에 있고, 8㎿급은 개발 중이다. 하지만 베스타스ㆍGEㆍ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8㎿급 풍력발전기를 납품하고, 현재는 12㎿급 발전기를 개발하고 있다. [※참고 : 다만, 두산중공업의 풍력발전기가 용량은 작지만 효율이 높다. 이 때문인지 바람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두산중공업 제품이 적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많다.] 

두산중공업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4조원이 넘는 실탄을 투입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더라도 ‘해상풍력회사’로 제대로 변신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지 모른다. 두산중공업에 ‘해상풍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까닭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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