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불복과 미국의 변화

조 바이든이 미국 46대 대통령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더라도 당분간 마침표를 찍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전부터 공언했던 ‘대선 불복’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불복이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불복’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이상한 변화는 주목해야 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불복의 정치경제학’을 취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할 뜻을 밝혔다.[사진=뉴시스] 

# 2016년 혼돈의 시작 =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사건은 오바마의 당선도, 금융위기도, 이라크전쟁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현이다.” 국제정치학자인 권용립 전 경성대(정치외교학) 교수가 쓴 「미국의 정치 문명(2019년 개정판)」 머리말에 등장하는 내용의 일부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걸까.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시 대선주자였을 때부터 화제의 인물이었다. 긍정적인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행보가 거칠고, 즉흥적이며, 직설적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외신들의 표현을 빌려보면 트럼프는 ‘정치적 교양’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장사꾼’이었다. 그랬던 그가 힐러리 민주당 대선후보(당시)를 꺾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제는 트럼프란 럭비공 같은 인물이 대통령에 오른 이후 미 공화당이 오랫동안 내걸어왔던 가치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본래 가치가 아닌 ‘인종주의(백인우월주의)’를 발판으로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참고 : 권용립 교수는 미국이 트럼프를 선출한 그 저변에는 ‘미국의 근원적인 보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주요 이념이던 자유무역의 기조까지 버렸다. 미국의 이익만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중국이든 유럽이든 적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등장은 ‘혼돈의 시작점’이었다는 얘기다.

# 2020년 혼돈의 재연 = 11월 4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이 치러졌다. 재선에 도전한 트럼프는 개표 초반에 승리를 확신했고, 이날 저녁때까지만 해도 당선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우편투표가 집계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점점 우세해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개표 중단을 요구했고, 예상대로 소송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선거 결과에 불복할 뜻을 내비친 거다.

[※참고: 조 바이든은 7일(현지시간)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에서 승리하며 279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그 결과, 바이든은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을 획득해 대통령 당선을 확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선거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소송전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질 경우 선거에 불복하고 소송까지 가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지난 7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패배 시 승복할지를 묻는 말에 “나는 순순히 승복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임기 2기 내각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나온다. 언론은 이를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인 복불 움직임에 나섰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 당일 “우편투표의 개표를 중단시키기 위해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선 전 보수성향이 짙은 에이미 배럿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해 9명 대법관의 정치성향을 보수 6명 대 진보 3명으로 맞춰 놓은 게 소송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숱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년 전인 2000년 11월 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붙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71표 대 266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하자 재검표를 요구했다. 결국 법정 공방까지 갔는데,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 판결을 내놓은 12월 12일까지 대통령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했다. 36일간 대통령 부재 상황이었다는 거다. 당시 앨 고어가 판결을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럼 트럼프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혼돈의 늪’에 빠뜨릴 수 있을까. 사실 트럼프의 ‘불복의지’가 다른 국가들에 달가운 일은 아니다. 정치적 불안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글로벌 금융시장도 출렁일 게 뻔하다. 미국의 정치적 불안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미 대선일을 기점으로 원· 달러 환율이 출렁인 건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시장에선 상승세를 보이는 증시가 미국의 정치 이슈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관계에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 트럼프가 불복해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바이든에겐 밖을 돌아볼 여유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이든 유럽이든 트럼프가 흔들어놨던 국제질서가 제자리를 찾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악의 시나리오다. 트럼프의 불복 프로젝트는 일단 벽에 부닥쳤다. 트럼프는 바이든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경합주 3곳(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을 상대로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시간주와 조지아주는 트럼프의 소송을 기각했다.[※참고 : 트럼프는 개표 막판 바이든에게 역전당한 위스콘신주에선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안정화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선불복의 영향력이 크든 작든 ‘보이지 않는 균열점’이 존재해서다. 그건 트럼프가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된 2016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확연히 다른 정치 양상’이다.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백인우월주의의 발현이다. 앞서 오바마의 등장으로 ‘백악관의 주인=백인’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미국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들에게 깊숙이 내재돼 있던 인종주의가 발현했고, 그게 트럼프를 통해 강력하게 드러났다는 거다. 

미국의 두가지 소용돌이

둘째는 이로 인한 국민 분열이다. 미국 사람들은 ‘패배 승복 문화’에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언했듯 ‘대선불복열차’에 탑승함으로써 우월감에 상처가 났다. 게다가 그 중심에 트럼프를 지지했거나 지지한 백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양극화란 전열이 형성됐다.

이런 상황은 상당수 미국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고, 이는 결코 작은 ‘혼란’이 아니다. 누군가는 ‘대선불복’ 따위에 흔들릴 미국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 상황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국은 지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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