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경제학

유럽에서는 빈 주택에 세금을 부과한다. 사용할 수 있는 집이 쓰이지 않아 낭비되는 일을 막으려는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도심 속 빈집을 활용하기 위한 법이 생겼다.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 주택 공급을 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만 빈집은 7384호다. 어마어마한 수의 빈집을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대단지 아파트 7개를 지을 수 있는 서울 빈집 7384호의 활용법을 취재했다. 

2015년 기준 서울에는 7384호의 활용 가능한 빈집이 있었다.[사진=연합뉴스]
2015년 기준 서울에는 7384호의 활용 가능한 빈집이 있었다.[사진=연합뉴스]

7384호의 주택을 상상해보자.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가 3800세대 규모다. 그만한 아파트 단지가 두개쯤 더 생긴다고 가정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384호. 서울에 있는 빈집의 수(통계청ㆍ2015년)다. 대단지 아파트의 기준이 1000호임을 고려하면 7개 단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모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아직도 감이 안 오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가늠해보자. 2019년 서울 주택 착공 실적은 6만2272호다. 빈집에 대입하면 2019년 한해 공사를 시작한 주택의 11%가 ‘빈집’이라는 거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95.9%라는 점을 생각하면 ‘빈집’은 그 자체로 낭비다.

‘빈집’은 2017년 1월 중요한 자원으로 인정받았다. ‘빈집 및 소규모 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특례법)’이 통과되면서 빈집의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이 사용 여부를 확인한 시점부터 1년간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면 이 집은 빈집이 된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2015년 서울의 빈집은 7만9049호. 2019년에는 9만3402호로 늘었다.

여기서 매매ㆍ임대로 인한 이사, 미분양ㆍ미입주로 인한 공실, 수리 중이라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집, 영업용으로 쓰는 주택, 가끔 이용하는 주택 등을 제외하면 정말 활용할 수 있는 빈집의 수는 서울에서만 7384호가 된다. 이 숫자의 기준은 2015년이다. 매년 ‘빈집’ 조사가 이뤄지지만 세부적으로 빈집의 종류를 골라낼 수 있는 통계는 5년에 한번 이뤄지는 ‘가구주택총조사’뿐이라서다.

 

2017년 당시 빈집특례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대규모 노후주거지가 아니더라도 집주인의 의지만 있다면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건축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되짚어보자. 빈집은 왜 생겨난 걸까. ‘빈집’은 이상한 주택이다. 집주인이라면 대부분 소유한 주택에서 살거나 임대를 놓아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돈을 얻을 수 있는 재산을 그냥 방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빈집은 말 그대로 방치돼 있다. 사람이 살기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이다. ‘빈집 분포 지역 특성 및 밀집 요인에 관한 기초 연구(이소영, 주희선2020년)’를 보자. 이 연구는 경남 진주시 성북동의 사례를 분석했는데, 골자는 이렇다. “사람과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최소폭인 4m가 되지 않는 길을 중심으로 빈집이 몰린다.”

빈집 생기는 이유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일단 차가 다닐 수 없다. 건축을 하려 해도 조건이 까다롭다. 그러니 주택이 낡을 공산이 크다. 불편한 집이다 보니 임대료가 아주 낮지 않으면 세입자가 들어올 유인도 크지 않다. 그렇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서도 굳이 돈을 들여 설비를 바꾸거나 집을 다시 지을 이유가 없다. 이런 곳에 ‘빈집’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다른 원인도 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구역 지정이다. 집을 고치지 않아도 개발될 계획이 있다면 집주인들은 집을 수리하거나 개선하는 데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당장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두고 보기만 해도 충분해서다. 개발 후 시세 차익을 노리거나 신축 후 세입자를 새로 받으면 된다.


문제는 개발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다. 보통 ‘빈집’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저층 주거지의 건물들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이 단독주택이거나 4층 이하의 공동주택이다. 재개발 사업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토지 소유 문제도 재건축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아 정비사업이 지체되기 일수다. 평균 8년 이상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 기간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지에 있는 주택은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숙박업소 플랫폼업체 스테이폴리오의 이상묵 대표는 2019년 서촌 일대에 있는 빈집을 보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했다. 하지만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 돈을 투입해 수리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면 도시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됐다가 풀린 지역에서는 빈집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도시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집을 수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렇다면 빈집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7384호의 서울 빈집 중 절반 이상(53.0%)은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 등이었다. 이런 주택이라면 대부분 소규모 정비사업이 가능하다. 사업지 주택 중 3분의 2 이상이 노후 불량주택이고 토지소유자 10인 이하, 다세대 주택 20세대 이하라면 추진할 수 있는 자율주택정비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135-100번지 일대는 도로 폭이 1m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좁은 길을 걸어야 갈 수 있다. 길이 좁은 탓에 접근성도 떨어지지만 주택 자체도 낡아 방치돼 있는 빈집이 숱했다. 그러나 2019년 도시재생뉴딜사업지로 선정된 후 이 일대는 올 2월부터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기존 토지소유자 8명이 주민합의체를 만들어 빈집 17개동(30호)을 철거하는 대신 8개동(66호)의 새집을 만들기로 했다. 주택 수로만 따지면 120%가 늘어난 셈이다. 도시재생뉴딜 지역에서 자율주택정비사업으로 집을 짓기 때문에 인근에 주차구역 확보가 가능하고 무인택배함 등 생활SOC 설치가 가능하다. 

빈집은 장기화한 도시정비구역에서 흔하게 발견된다.[사진=뉴시스]
빈집은 장기화한 도시정비구역에서 흔하게 발견된다.[사진=뉴시스]

새로 만들어지는 주택은 장기민간임대가 되기 때문에 임대주택 공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빈집이 포함된 사업지여서 사업을 위해 주택도시기금 융자를 받을 때도 원래 이자율인 1.5%보다 더 낮은 1.2%에 자금을 빌릴 수 있다.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과 비교하면 외관 변화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소규모로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면 빈집은 낭비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

도시 외관 정비와 임대주택 공급을 모두 해결할 수 있어서다. 낙후돼 있던 골목생활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4000호의 빈집을 매입해 저렴하게 임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 속 숨은 7384호의 주택은 어떻게 변할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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