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의 새로운 길과 역설

최근 오비맥주가 ‘카스 0.0(카스 제로)’을 출시했다. ‘무알코올 맥주’로 불리는 성인용 음료다. 시장에 먼저 진출한 도수 0%의 하이트진로음료(하이트제로 0.00)와 롯데칠성음료(클라우드 클리어 제로)와는 달리 0.05% 미만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다. 도수 1% 미만이어서 카스 제로도 ‘무알코올’ 맥주로 분류되긴 했지만 경쟁제품과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알코올이 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출시한 오비맥주의 전략은 통할까. 

지난 10월 오비맥주가 비알코올 맥주  ‘카스 0.0’을 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오비맥주가 비알코올 맥주 ‘카스 0.0’을 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음료시장은 ‘무알코올’이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저도주 선호 트렌드가 무無도주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져서다. 해외 각국의 시장 상황을 살펴보자. 2000년대 중반부터 가파르게 커진 일본 무알코올 맥주시장의 규모는 8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주류시장에서 무알코올의 비중이 10%선까지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미국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IWSR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무알코올 음료 판매량은 2018~2022년 32.1%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이 수십년째 감소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국내에서도 무알코올 맥주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 사태로 자리 잡은 ‘홈술 문화’가 니즈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이끄는 건 하이트진로음료다. 2012년 출시한 무알코올 맥주 ‘하이트제로 0.00(이하 하이트제로)’은 지난 1~9월 누적판매량이 전년 대비 33% 증가해 2019년 한해 판매량(767만캔)을 벌써 넘어섰다. 시장점유율은 60%대에 달한다. 롯데칠성음료가 2017년 론칭한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시장점유율 20%대)’ 역시 인기몰이 중이다. 업체에 따르면 클라우드 제로의 1~5월 누적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60%가량 증가했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국내 무알코올 음료시장 규모는 지난해 70억~80억원대에서 올해 약 150억원대까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해외에 비하면 미미한 규모지만 지금까지 국내서 무알코올 음료가 ‘찬밥 신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장세”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음료 측은 “2012년 하이트제로를 출시할 때만 해도 국내 무알코올 음료시장 규모는 13억원에 불과했다”며 “지금 같은 추세라면 3~5년 사이 2000억원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다크호스’까지 등장했다. 지난 10월 알코올도수 1% 미만의 맥주 ‘카스 0.0(카스 제로)’을 출시한 오비맥주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출시가 차일피일 미뤄지던 끝에 비로소 시장에 등장했다. [※ 참고: 오비맥주가 비알코올 맥주 자체를 처음 출시한 건 아니다. 1993년 ‘OB사운드’라는 도수 0.7%짜리 맥주를 내놨지만 판매 부진으로 2007년 생산 중단됐다.] 

무알코올과 비알코올

때늦은 출시지만 무알코올 맥주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볼 만한 도전임에 분명하다. 다만, 오비맥주의 ‘카스 제로’는 알코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하이트제로’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와 결이 다르다. 도수가 1% 미만인 ‘비알코올’ 맥주라서다. 이는 오비맥주가 무알코올 맥주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하이트제로’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와는 다른 전략을 썼다는 방증이다. [※ 참고: ‘무알코올 맥주’ 제품은 도수가 없는 것과 소량이나마 도수가 있는 제품으로 나뉜다. 주세법상 도수 1% 미만의 제품은 주류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카스 제로 역시 엄밀히 말하면 ‘비알코올’이지만 제품군은 ‘무알코올 음료’에 해당한다.] 

 

그 전략은 다름 아닌 ‘맥주맛’이다. 사실 무알코올 맥주는 ‘보리맛 음료수’ 맛이다. 에탄올이 발생하는 맥주 특유의 발효과정 없이 맥아 엑기스에 홉 엑기스와 향을 첨가해 만들어서다. 하지만 비알코올 제품은 다르다. 일반 맥주를 만들 때와 같은 과정을 거치되 마지막 여과단계에서 알코올을 제거하거나, 발효를 제어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미량의 알코올이 남지만 ‘맥주맛’이 살아있다. 카스 제로는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업계의 관계자는 “제조공법에 따른 맛의 차이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무알코올 맥주가 그간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건 일반 맥주의 맛과 비슷하기는커녕, 음료로도 즐기기 힘들 만큼 맛이 떨어져서다. 하지만 맥주와 동일한 과정으로 만든 해외 제품 중엔 호평을 받는 것이 많다.” 이때문인지 오비맥주 역시 자신감이 충만한 듯하다. “카스 제로는 논알코올 맥주이지만 맥주 고유의 청량함과 짜릿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10월 16일자 보도자료).”

무알코올이지만 알코올 맛 나야

문제는 이런 전략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맛이야 담보할 수 있겠지만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미량의 알코올이라도 피하는 소비자로선 선뜻 구매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무알코올을 내걸었지만 정작 알코올에 극도로 민감한 소비자까진 안고 갈 수 없다는 거다. 문제는 또 있다. 카스 제로가 표방한 ‘제로’ ‘0.0’ 등의 표현이 ‘고도의 상술’이란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국내 무알코올 음료시장은 성장세지만, 일반 주류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무알코올 음료시장은 성장세지만, 일반 주류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가 꼼꼼히 보지 않으면 무알코올인지 비알코올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비맥주 측은 “카스 제로엔 알코올이 아예 없진 않지만 도수 0.05% 미만으로 매우 적은 편”이라며 “점심시간에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을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시장서 ‘비알코올’이란 새로운 길을 선택한 오비맥주의 전략은 과연 통할까.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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