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제재 압박 2개월
악재설과 호재설 맞아떨어졌나

미국이 화웨이를 본격적으로 제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던 지난 9월, 국내 시장에선 두가지 ‘설’이 교차했다. “반도체 ‘큰손’ 화웨이와의 거래가 금지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악재설과 “삼성전자만은 스마트폰ㆍ통신장비 부문에서 화웨이를 대체할 것”이란 호재설이었다. 그로부터 2개월여, 시장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악재설과 호재설은 맞아떨어졌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답을 찾아봤다. 

미국의 제재를 받은 화웨이의 빈자리를 삼성전자가 메울 거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행보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제재를 받은 화웨이의 빈자리를 삼성전자가 메울 거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행보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15일 미국이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를 강화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을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제재안의 골자였지만 사실상 화웨이와 거래하지 말라는 엄포에 가까웠다. 

문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이었다. 악재도, 호재도 있었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반도체 업계에서 미국 기술을 쓰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는데,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허가를 얻지 못한다면 9월 15일 이후엔 화웨이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거다. 

더구나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고객사 중 하나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화웨이와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 11%에 이른다. 액수로 따지면 10조원가량. 뒤집어 말하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했을 때 입을 손실액이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뜻이었다.

그렇다고 ‘화웨이 제재’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시장에선 “국내 스마트폰ㆍ통신장비 산업은 되레 화웨이 제재로 인한 특수를 누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웨이는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이자, 세계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다. 통신장비 부문에선 35.7%(지난 1분기 기준), 스마트폰 부문에선 18.5%(지난 2분기 매출 기준)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생산ㆍ납품에 차질을 빚으면 경쟁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릴 게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스마트폰ㆍ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와 경쟁 중인 기업이 삼성전자였으니, “화웨이의 이탈로 생긴 빈자리를 삼성전자가 메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건 과도한 기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화웨이 제재안을 발효한 지 약 2개월, 반도체 시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화웨이 제재가 시작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대對화웨이 수출이 막힐 것’이란 악재설과 ‘화웨이의 빈자리를 삼성전자가 꿰찰 것’이란 호재설 중 맞아떨어진 건 무엇일까. 

무엇보다 화웨이 수출길이 막히면서 급감할 것으로 보였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 10월 되레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반도체 일평균 수출액은 4억1329만 달러(약 4683억원). 전년 동기 대비 20.9%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올해 들어 최대 일평균 수출액을 기록했다. [※참고 : 일평균 수출액은 총 수출액을 조업일수로 나눈 값을 말한다. 조업일수는 휴일을 제외한 평일을 1일, 토요일을 0.5일로 계산한다.] 

혹자는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수출이 증가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표할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10월(10월 1~25일 기준)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비중은 40.2%로, 전월(39.4%)보다는 0.6%포인트, 지난해 10월(40.0%)보다는 0.2%포인트 커졌다. 액면 그대로 말하면 대중 수출이 늘었다는 거다. 

화웨이 수출길이 막혔음에도 대중 반도체 수출이 되레 증가한 이유는 뭘까. 샤오미ㆍ오포ㆍ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화웨이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반도체 주문량이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화웨이가 이탈한다고 전체 수요가 감소하는 건 아니어서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악화해도 중장기적으로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도 “하지만 중국 로컬기업들의 화웨이 대체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화웨이의 자리를 삼성전자가 대신할 것’이란 호재설이 들어맞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먼저 스마트폰 부문을 보자. 중국 업체들이 화웨이를 대체하는 건 중국시장에서만이 아니다. 반중反中 정서가 확산하고 있는 미국과 인도시장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중국업체들의 성장 속도가 꽤 빠르다. 

특히 지난 5월 유럽ㆍ독립국가연합(CIS) 시장에서 화웨이의 줄어든 시장점유율을 메운 건 샤오미와 오포였다(카운터포인트리서치 자료). 이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시장에선 오포와 비보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을 앞선 지 오래다. 러시아ㆍ남미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주춤한 틈을 타 샤오미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초 삼성전자가 화웨이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을 더 많이 입을 거라 예상했지만 최근 중국과 신흥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가 약해져 중국 업체들의 비중이 더 확대될 것 같다”면서 “화웨이의 주력 시장이었던 서유럽 지역에선 아직 삼성전자의 비중이 높지만 샤오미가 판매 전략을 강화한다면 화웨이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통신장비 부문에서도 삼성전자가 화웨이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점유율은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에 이어 4위에 올랐지만, 상반기 누적 순위에선 7위로 밀려났다(델오로 자료). 지난 3분기엔 삼성전자가 화웨이 장비 반입을 금지한 미국 시장에서 8조원 규모의 대형 수주를 따내긴 했지만 화웨이의 주력 시장인 유럽에선 에릭슨ㆍ노키아가 ‘호랑이 빠진 자리’를 꿰차고 앉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스마트폰과 달리 통신장비는 기존에 어떤 업체의 장비를 썼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호환성 때문이다. 설사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화웨이ㆍ에릭슨ㆍ노키아 등 경쟁업체의 장비가 깔려 있는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입지를 넓혀나가긴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김종기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5G 단독망이 아닌 LTE와 5G가 연동되는 비단독망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화웨이를 대체하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건 삼성전자가 미국과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입지를 조금씩 강화해나간다면 향후 5G 고도화망이나 5G 이후 시장에선 지금보다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이후 두 달여.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삼성전자는 화웨이 특수를 누릴 수 있을까. 낙관하긴 이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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