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

자동차 시장의 지배자는 반세기 이상 ‘내연차 메이커’들이었다. 최근 판도는 조금 다르다. 전기차의 성장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지면서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자동차 외형을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배터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5년 내 자체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맥이 같다.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뉴시스]

전기차의 성장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한번 충전해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어느샌가 400~500㎞로 훌쩍 늘어났다. 1㎾h당 150달러 선에서 오르내리던 전기차 배터리 가격은 100달러 미만으로 낮아질 공산이 커졌다.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는 건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향후 4~5년 내엔 정부 보조금이 없이도 내연기관차와 경쟁할 만한 전기차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 생태계를 쥐고 흔드는 ‘완성차 제작사’에 이런 상황은 결코 달갑지 않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완성차 제작사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어서다. 예를 들어보자.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선 자율주행차의 핵심인 라이다 센서(3차원 인식 센서) 업체의 입김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주문형 반도체와 같은 차량용 반도체 회사도 산업의 큰 축을 차지할 게 분명하다. 자동차의 운행을 책임지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인공지능(AI) 개발업체도 모빌리티 산업의 중심에 설 것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 ‘완성차 제작사’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완성차 제작사’엔 충격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훨씬 더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업체는 따로 있다. 바로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 구도는 명확하게 정리된다. 첫째, 전기차는 내연차의 점유율을 계속 잠식할 것이다. 그럼 소수의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힘’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 제아무리 전기차를 잘 만들어도 ‘배터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미래는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판도는 ‘완성차 제조사’가 아닌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가 좌지우지할 것이다.

어떤가. 설득력 있지 않은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이런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열린 ‘테슬라 배터리 데이’에서 “5년 내 자체적인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전기차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글로벌 배터리 업체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5년 안에 스스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선포한 셈이다. 이는 완성차(전기차)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사실 필자는 10년 전부터 완성차 제조사에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계열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전기차 플랫폼’을 통해 차세대 자동차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현대차가 발 빠르게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설립하거나 인수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는 현대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든 완성차 제조사가 ‘제로베이스’에서 경쟁을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완성차 제조사든 전기차 제조사든 냉정한 심판대에 올라섰다. 누구에게든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국내 완성차 제조사에 나쁜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의 주도권은 누가 거머쥘까. 총성 없는 경쟁은 벌써 시작됐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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