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죽음의 계곡

창업지원금, 청년창업사관학교, 청년전용창업자금….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져봤을 법한 제도들이다. 정부는 해마다 예산을 늘려가며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 덕에 창업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출발은 도와줬으니 무조건 버티라고만 할 게 아니다. 창업시장에선 1년 1년이 ‘생존의 기로’다. 창업시장에서 ‘죽음의 계곡(Vally of Death)’이란 말이 괜히 통용되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의 5년 생존율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타트업의 5년 생존율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9.2%. 스타트업이 창업 후 5년까지 생존할 확률이다. 너도나도 창업시장에 뛰어들지만 살아남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거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통계에 따르면 신설법인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9만8420개에서 2018년 10만2042개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10만8874개로 더 늘었다. ‘창업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 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중기부가 16~64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업벤처 정책인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60.2%로 2018년 58.1%보다 늘었다. ‘창업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률도 65.7%에서 71.1%로 상승했다. 


정부도 창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올해 정부는 창업지원에 1조4517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2018년 8000억원, 2019년 1조1000억원에서 더 늘어났다. 정부의 지원 규모가 커지니 지원제도를 활용해 창업을 하려는 이들도 그만큼 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생존은 또다른 문제다. 통계에 따르면 창업 1년차 생존율은 65.0%다. 하지만 3년이 지나면 생존율이 42.5%로 뚝 떨어진다. 5년차가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열에 일곱(29.2%)이 문을 닫는다. 5년차 생존율이 40%대인 프랑스·영국 등에 비해 크게 밑도는 수치인데, 대체 왜일까. 

중기부가 벤처기업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라고 물어본 결과를 보자. 벤처기업 CEO들은 자금조달·운용(56.2%)이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 국내 판로를 개척하고(54.7%), 필요인력을 확보·유지(54.0%)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최근 한 보고서를 통해 그 이유가 “연속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2018년 창업지원사업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성장단계별로 지원제도를 개편했지만 단계별 연계시스템이 꼼꼼하지 못하고 미흡하다는 것이다. 가령, 창업에 실패했다가 재창업에 도전한 ‘예비창업자’가 업력제한에 걸리는 식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보고서를 통해 “창업 자체에 성과를 두는 스타트업 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들이 지속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창업에 도전했거나 도전 중인 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이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기술창업을 예로 들어보자. 정부의 창업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그 기술을 당장 사업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자금이 원활하게 투입되지 않는다면 반짝이는 새로운 기술은 빛도 못 보고 사장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어려움을 우리는 ‘죽음의 계곡(Vally of Death)’이라고 일컫는다. 대개 창업 후 3~5년에 이 계곡을 만난다. 이 계곡을 무사히 건너 생존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계곡에 휩쓸리고 만다. 3년차 때부터 생존율(42.5%)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이유다. “창업을 부추기는 제도가 아닌 지속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이처럼 스타트업이 넘어야 할 산은 숱하다. 기술형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기술을 알리는 것도 힘든데, 그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어서다. 코로나19 국면이 큰 원인이겠지만 국가기관의 시범서비스 기회도 이런 유형의 스타트업엔 언감생심이다.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꾸고, 대박 스타트업을 만들길 바란다. 하지만 정부는 ‘눈앞 실적’만 원하고, 장기적 밑그림은 창업가들의 몫으로 떠넘긴다. 그래서 창업가들은 “1년 1년이 생존의 기로”라면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우린 지금 스타트업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제도적 지원시스템은 정말 그들을 위한 걸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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