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신세계 ❹

경찰은 우리사회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어야 한다. 제아무리 짙은 어둠도 먼동이 트면 물러가게 마련인데, ‘골드문’이라는 어둠의 세력은 아무리 빛을 비춰도 물러가기는커녕 어둠은 점점 짙어지고 넓어진다. 이대로 뒀다가는 미국의 마피아처럼 통제불능 상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얀 종이 위의 검은 점을 검정 물감으로 지우려면 결국 종이 전체가 검어진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하얀 종이 위의 검은 점을 검정 물감으로 지우려면 결국 종이 전체가 검어진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어둠을 몰아내야 할 경찰은 점점 초조해지고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몽양 여운형 선생도 해방정국의 혼란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사람들이 비상한 각오로 비상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특단의 대책을 세운다. 여운형 선생처럼 경찰청의 ‘비상한 사람들’이 ‘일이 틀어지면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는 ‘비상한 각오’로 아예 경찰을 ‘골드문’ 조직 회장에 앉히려는 ‘비상한 작전’에 들어간다.

‘비상非常’이란 말 그대로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비상’한 것은 결국 무리한 일이다. 무리를 하지 않고 되는 일이란 없다고도 하지만, 무리를 해서 뒤탈이 없는 일도 없다. 경찰이 본분에서 벗어난 무리한 꼼수를 부려 ‘골드문’의 2인자 정청(황정민)과 3인자 이중구(박성웅)를 이간질하고, 골드문의 바지사장 장수기(최일화)에 줄을 대 어두운 음모를 꾸민다. 

강과장(최민식)은 유치장에 잡아넣은 이중구를 기만하고 꼬드겨 장천을 제거한다. 결국 이중구의 돌격대들이 정청을 덮쳐, 영화 신세계의 소위 ‘시그니처 폭력’ 장면을 완성한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갇혀 홀로 칼 한자루 든 장천은 손에 회칼과 쇠몽둥이를 들고 끝없이 엘리베이터 속으로 몰려들어오는 이중구의 돌격대를 맞는다. 정청은 온몸에 피 떡칠을 한 채 ‘드루와! 드루와!’란 명대사를 남기고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어둠을 어둠으로 밀어내려 했던 강과장의 작전은 실패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둠을 어둠으로 밀어내려 했던 강과장의 작전은 실패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중구는 아마도 정청을 제거해준 공로를 인정받아서인지 유치장에서 풀려나지만, 이자성(이정재)의 수하들에게 담배 한대 얻어  피우고는 “죽기 좋~은 날씨네”라는 멋들어진 드립을 날리고 추락사 당한다. 이자성을 제거하려던 장수기(최일화)는 되치기를 당해 이자성이 보는 앞에서 수하들에게 말 그대로 맞아 죽는다. 명색이 경찰인 이자성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도 않고 범죄 피의자를 그 자리에서 때려 죽인다.

이쯤 되면 빛과 어둠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과 어둠의 싸움이 돼버린다.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내려 하고, 폭력을 더 강한 폭력으로 몰아내려 한다.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질색할 장면들이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둠은 그보다 더한 어둠으로 물리칠 수 없고, 오직 빛으로만 물리칠 수 있다. 폭력은 더 강한 폭력으로 물리칠 수 없으며, 오직 평화로만 물리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마틴 루서 킹은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며 철저히 평화운동을 고수했지만, 같은 대표적인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맬컴 X(Malcom X)는 마틴 루서 킹의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을 ‘얼간이 짓’이라고 비난하고, 흑인 탄압에 저항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흑인들을 이끌었다. 어둠을 어둠의 힘으로 물리치려 했던 거다.

맬컴 X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을 때에도 공개석상에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을 뿐, 슬픈 일이 아니다’고 독설을 날릴 정도로 ‘비상非常’한 인물이었다. 많은 흑인들이 ‘답답한’ 마틴 루서 킹 목사 대신 ‘화끈한’ 맬컴 X에 열광하기도 했지만, 큰 흐름 속에서 흑인들의 인권과 시민권을 향상한 것은 마틴 루서 킹의 ‘어둠이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폭력으로 폭력을 몰아낼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적폐청산’을 내건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했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연합뉴스]
‘적폐청산’을 내건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했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연합뉴스]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걸고 ‘촛불’의 힘으로 집권했지만 어떤 적폐가 청산됐는지 뚜렷하게 체감되지 않는 듯하다. 영화 ‘신세계’ 속 경찰수뇌부가 그랬듯 ‘적폐세력’이 ‘골드문’ 조직처럼 일거에 제거될 수 없다는 초조감과 위기의식을 느낄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문득문득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사람’들이 ‘비상한 각오’로 ‘비상한 일’을 도모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어둠’을 향해 쏟아내는 말들도 맬컴 X의 독설처럼 거칠고 과격하다. 문득문득 어둠과 어둠이 부딪치고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내려는 절박함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내려 했던 영화 속 강과장의 ‘비상한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점을 검정 물감으로 지울 수 있을까. 검정 물감으로 검은 점을 지우려 한다면 검은 점은 점점 커지고 결국 종이 전체를 검은색으로 칠하는 수밖에 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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