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병진 ㈜나르크테크놀로지 대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란 말이 있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결국엔 승리할 수 있단 얘기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버티는 데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인내와 끈기는 물론이요, 생존을 이어갈 자금도 있어야 한다. 한병진(45) ㈜나르크테크놀로지 대표는 치열한 창업시장에서 이렇다 할 수익도 없이 8년을 버텼다.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악물고 버텼고, 이제 그 인내가 서서히 빛을 내고 있다.

한병진 ㈜나르크테크놀로지 대표는 이제 본격적인 도약을 꿈꾼다.[사진=천막사진관]
한병진 ㈜나르크테크놀로지 대표는 이제 본격적인 도약을 꿈꾼다.[사진=천막사진관]

7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사람과 손을 잡고 회사를 세웠다. 작은 통신 관련 업체였다. 실패했다. 다시 도전했지만 또 쓴잔을 마셨다. 이해관계는 같았지만 의견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그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삼세번 아니던가. 한번만 더 해보자. 대신 제대로 배워보자.”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들어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갖고 무턱대고 회사를 차렸던 그는 그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웠다. 회사는 어떻게 이끌어 가고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그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하지만 창업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좋고 기술만 괜찮으면 당장이라도 성공할 줄 알았어요.” 

그는 8년여간 ‘자신이 만든’ 통신기술이 시장으로부터 인정받을 날만을 기다렸다. 자금줄이 막힐 때면 문턱이 닳도록 은행과 정부기관을 찾아다니면서 기다렸지만 그날은 올 듯 오지 않았다. 2012년 11월 유선통신전송장비 제조업체 ㈜나르크테크놀로지를 창업해 올해 드디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한 한병진 대표의 이야기다.

✚ 8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버티셨어요?
“이렇게 길어질 줄 처음엔 알았겠습니까. 사업이라는 게 될 거 같으면서도 안 되더라고요. 그동안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몇번이나 좌절했고, 저 한 사람 때문에 괜히 직원들 생고생하는 거 아닌가 자괴감도 들었어요.”

✚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혼자였으면 아마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직원들이 되레 응원해줬어요. 덕분에 올해는 하나둘 좋은 성과들이 나오네요.”

✚ 그동안 성과가 전혀 없었나요?
“조금씩 수익이 나긴 했지만 거의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술이 인정을 받을 때까지, 기회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 무엇이 문제였죠?
“기술 스타트업이 짊어져야 할 어쩔 수 없는 한계인데요. 우리처럼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시장 진입 자체가 너무 힘듭니다. 더군다나 시장에 국제표준기술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자체 개발한 기술은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은 ‘시장을 뚫기만 하자’는 게 첫번째 목표였습니다.”

㈜나르크테크놀로지는 유선통신전송장비 전문업체다. 유·무선 통신분야엔 ‘PoE(Po wer over Ethernet)’라는 국제표준기술이 있다. PoE는 CCTV·와이파이 등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할 때 LAN 케이블로 데이터와 전력을 동시에 보내는 기술이다. 하지만 PoE 기술은 1회선당 1대의 네트워크 장치만 설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PoE 기술로 CCTV를 다수 또는 추가 설치해야 할 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나르크테크놀로지는 이런 점을 보완한 MPoE (Matched Power over Ethernet) 시스템을 2013년 자체 개발했다. MPoE는 PoE 기술과 마찬가지로 LAN 케이블에 통신신호와 전원을 동시에 전송한다. PoE와 다른 게 있다면 1회선당 최대 8대 CCTV를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설치가 용이하고, 시간과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 시장을 뚫는 데 8년이 걸린 건가요?
“기술 자체를 완성한 건 2013년이에요. 하지만 시장성 측면에서 참패했습니다.”

✚ 왜죠?
“ ㈜나르크테크놀로지를 창업했을 때 전략은 기존 PoE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거였습니다. 기존 PoE는 원거리까지 전송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거든요. 우리가 그 설치 거리를 연장하면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접근이었어요.”

✚ 문제가 있었나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장 크기도 그만큼 작아지더라고요. 장거리로 전송하는 솔루션은 통신전송장비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던 거죠. 우린 그걸 몰랐던 겁니다. 그러다 전시회에서 만난 바이어들을 통해 시장에서 원하는 바를 알게 됐습니다.”

✚ 그게 뭐였죠?
“한 회선에 다수의 CCTV를 설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설치시간과 설치비용을 줄일 수 있겠더라고요.”

MPoE 기술로는 1회선당 최대 8개의 CCTV를 설치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MPoE 기술로는 1회선당 최대 8개의 CCTV를 설치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쉽게 말해 더 많은 기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가요?
“적용할 수 있는 분야도 훨씬 많아요. PoE는 와이파이·CCTV·인터넷전화 등에 적용하고 있지만 MPoE는 전력을 많이 보내줄 수 있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TV·노트북·프린터·일체형PC 등 가정 내 전자제품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 LAN선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고요. 칩셋 대신 자체 회로를 사용해 많은 전력을 전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발열을 낮춰 제품 수명이 오래간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 획기적인 기술인데, 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거죠?
“참 아이러니한 부분인데요.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MPoE는 국제표준기술이 아니라 자체기술이기 때문에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요. 표준기술은 이미 인증된 것이기 때문에 돈이 더 들더라도 사용하려고 하지만 자체기술은 검증된 사례가 없으니까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잖아요.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단독으로 접촉하기도 어려워요. 제품을 납품하려면 1차 벤더를 통해야 해요. 해외는 또 어떻고요. 수출하려고 해도 ‘대기업 적용 사례가 있느냐’고 물어요. 스타트업이고, 우리가 처음 만든 기술인데 그게 있겠어요? 그런 게 쌓여야 뭐라도 할 수 있더라고요.”

✚ 비유하자면 경력자를 찾는 셈이네요.
“네, 그렇죠. 시장에서 우리 기술을 인정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 지난 시간들에 후회는 없나요?
“그런 생각은 가끔 해요. ‘8년이란 시간을 헛되게 보낸 건 아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이런저런 기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올해 ADT캡스에 제품을 납품하게 됐고, 조달청 벤처창업 혁신조달상품으로 지정된 것도 잘 버텨온 결과죠.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이런 기회조차 사라지는 거잖아요.”

✚ 이제 목표도 세우셔야죠.
“유선통신전송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무선전송전력까지 연구해볼 생각이고요. 또 하나 목표가 있긴 한데….”

✚ 무엇인가요?
“제가 고생을 해봤잖아요. 그걸 교훈 삼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가능성이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면 남 같지 않더라고요. 잘 버티고, 잘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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