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창신동 | 1층 사무실의 가치

누군가는 불쑥 길을 묻는다. 또다른 누군가는 불쑥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돌발상황에 때론 당황스럽지만 그게 1층 사무실의 매력이다. 밖으로 나갈 때, 안으로 들어올 때 ‘귀찮음’이 존재하지 않는 1층은 확장, 공유, 그리고 커뮤니티의 시작점일지 모른다. 내가 1층에 건축사사무소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찬 바람이 불긴 전에는 출입문을 늘 열어두었다. 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누구든지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점이 1층의 매력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찬 바람이 불긴 전에는 출입문을 늘 열어두었다. 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누구든지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점이 1층의 매력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1층’ 사무실 = 건축사사무소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곳은 아니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뭐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잘 모르는 것을 대면하는 건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건축 작업에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무실 출입에 심리적 불편함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무소 오픈을 준비하며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옛 복덕방 같은 건축사사무소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 곳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 주민들이 자주 마주치도록 마을 내부에 있어야 한다. 
- 출입이 쉬운 1층에 있어야 한다. 
- 편의점처럼 내부가 투명하게 보여야 한다. 

이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물리적 심리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 진입하는 불편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1층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땅이 닿는 층, ‘1층 사무실’에 대한 소소한 고찰을 시작해보도록 한다.

해가 진다. 퇴근하는 어른들, 자전거를 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실루엣이 노을빛에 걸린다. 사무소에서 문만 열면 볼 수 있는 1층의 풍경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해가 진다. 퇴근하는 어른들, 자전거를 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실루엣이 노을빛에 걸린다. 사무소에서 문만 열면 볼 수 있는 1층의 풍경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 문턱 낮은 1층 = 지난여름 어느날이었다. “사장님 물 한 잔만 주세요!!” 유리문이 벌컥 열리면서 형광색 옷을 입은 환경미화원께서 대뜸 물을 청한다. 얼른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물을 가져다드리며 웃는다. 갑작스럽게 문을 열어젖힌 걸 뒤늦게 알아차려서인지 아저씨도 멋쩍게 웃는다. 

또 한번은 자리에 앉아 집중해서 컴퓨터 작업하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을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사무실 중간에 서서 인사도 없이 들어와 구경하고 있다. 깜짝 놀라 “어떻게 오셨어요?” 하니 사무실을 좌우상하 둘러보시며 “여긴 뭐 하는 데예요?” 하고 묻더니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냥 나간다. 물었으면 대답이라도 듣고 가시지, 문밖으로 사라진 아주머니는 어디서 오셨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누군가는 길을 묻고, 화장실을 찾는다. 1층은 그런 곳이다. 들어가기 불편함이 없고, 망설임이 없는 곳이다. 나는 그런 곳을 원했다.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만남을 갖고 싶었다. 이런 방법이 마을건축가를 꿈꿨던 나에게 주민들과 만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동네 주민이 슥 들어왔다 나갈때도 있다. 마을건축가를 꿈꾸는 박용준 건축가는 망설임 없이 누구든지 쉽게 드나드는 사무실을 원했다. 1층은 바로 그런 점에 있어 첫번째 조건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특별한 일이 없어도 동네 주민이 슥 들어왔다 나갈때도 있다. 마을건축가를 꿈꾸는 박용준 건축가는 망설임 없이 누구든지 쉽게 드나드는 사무실을 원했다. 1층은 바로 그런 점에 있어 첫번째 조건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 쉽게 나갈 수 있는 1층 = 하루에도 몇시간을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피곤하다. 그럴 때 나는 사무실 바로 앞 정자에 쓱 걸어나가 누워 쉰다. 피로는 누워야 제대로 풀린다. 날씨 좋은 계절, 손님이 오시면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풍경을 보며 이야기하다 보면 훨씬 편안한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정자는 내 쉼터이자 일터다.

36개월 된 우리 딸은 아빠 사무실에 가는 걸 좋아한다. 사무실에서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사실 사무실 바로 앞 산마루놀이터에서 모래놀이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딸에게 놀이터는 아빠 사무실의 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직관적으로 공간의 확장을 체감한다.

1층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로 편하게 들어왔으면 했던 것이었지만, 막상 생활해 보니 ‘내’가 밖으로 나가기 쉽다는 점, 바로 근처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게 훨씬 큰 장점임을 느낀다. 임대계약 서류에 계약한 면적은 33㎡(약 10평)인데, 실제로 활용하는 면적은 사무실 앞 정자까지 39.6㎡(약 12평)는 되는 듯하다. 그리고 아마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우리 딸이 느끼기에는 엄청나게 넓은 ‘놀이터 딸린 사무실’일 것이다.

사무소에서 열 발자국 앞에 있는 산마루 놀이터. 모래 놀이터를 포함해 다양한 놀잇감이 널려 있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공간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무소에서 열 발자국 앞에 있는 산마루 놀이터. 모래 놀이터를 포함해 다양한 놀잇감이 널려 있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공간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1층과 고층의 비교 = 물론 1층이 아닌 고층에 살아도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는 약간의 수고만 더 한다면, 정자든 놀이터든 외부 목적지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적, 물리적 수고의 일상적 반복은 ‘귀찮음’의 시작이고, 그 ‘귀찮음’은 때로 합리적인 판단의 근거가 된다. 내가 사는 집과 사무실을 기준으로 각각 외부 ‘목적지’에 가는 단계를 살펴본다. 

[19층 아파트] 거실 : 준비→(중문을 열고) 현관문을 나선다→복도를 통해 엘리베이터홀로 간다(기다린다)→엘리베이터를 타서 1층을 누른다(기다린다)→문이 열리면 내려 복도를 걷는다→현관문(공용)을 나서 걷는다→목적지 도착

[1층 사무실] 거실 : 준비→현관문을 나서 걷는다→목적지 도착

나의 경우 아파트가 4단계 더 많다. 각자 집의 여건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땅이 바로 닿지 않는 층, 이를테면 2층 이상의 층에선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불편함을 일부 해소해줬지만 1층에 사는 만큼 밖에 닿는 것이 편할 수는 없다.

이 작은 차이가 고층과 1층에 사는 사람의 외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날씨 좋은 날, 19층 아파트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나와, 1층 사무실 앞 정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나의 차이는 단지 ‘귀찮음’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무소 앞에 있는 정자는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바람과 햇살을 맞이하는 장소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무소 앞에 있는 정자는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바람과 햇살을 맞이하는 장소다. [사진=오상민 작가]

■ 자연스러운 동네 커뮤니티 = 아침마다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는 아주머니들, 매일 같은 시간에 나타나 놀이터, 주차장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뛰어노니는 아이들, 공원에 앉아 장기 두시는 어르신들, 모두 각자의 생활영역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확장된 공간을 이웃 간에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저층 주거지, 개인 생활영역의 확장, 주민들 간의 공유, 그리고 자연스러운 공동체 발생, 이런 것들이 우리 옛 이웃사촌의 모습이며, 또한 동네 커뮤니티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다. 

1층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무심하게 가래떡을 놓고 가시는 옆집 할머니와 얼굴도 잘 모르는 아파트 19층 옆집 이웃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층에 따른 이웃과의 관계와 마을 커뮤니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늦은 밤 건축사사무소의 불빛이 밝아진다. 밖에서 실내가 훤히 보이지만 굳이 막아놓지 않는다. 누구든지 오가며 볼 수 있는 편의점 같은 사무실을 생각했다. 실외와 실내를 막지 않음은 소통의 시작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늦은 밤 건축사사무소의 불빛이 밝아진다. 밖에서 실내가 훤히 보이지만 굳이 막아놓지 않는다. 누구든지 오가며 볼 수 있는 편의점 같은 사무실을 생각했다. 실외와 실내를 막지 않음은 소통의 시작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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