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감자와 숨겨진 혜택들

아시아나항공이 균등감자를 단행한다. 개인주주들의 돈으로 회사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셈이 됐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다. “코로나19에 따른 부실이지 대주주 탓이 아니다.” 과거 대주주 차등감자를 단행한 기업이 들으면 억울할 만한 주장이다. 그 때문인지 재계 안팎에선 “또 박삼구 일가만 혜택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아시아나항공의 감자에 숨겨진 혜택들을 취재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위기에 빠진 건 오너일가의 경영 패착 영향도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이 위기에 빠진 건 오너일가의 경영 패착 영향도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보통주식 3주를 보통주식 1주의 비율로 무상 병합함.” 지난 3일 아시아나항공이 결정한 ‘무상감자’를 둘러싼 뒷말이 무성하다. 예견된 감자이긴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률은 56.3%다. 연말까지도 50%를 넘으면 거래소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감자를 실시하면 이 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뒷말이 나온 건 감자의 방식 때문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주식을 줄이는 비율에 차등을 두지 않기로 했다. 모든 주주의 주식 수가 3분의 1로 줄어드는 균등감자다. 당연히 재계 안팎에선 “왜 차등감자가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통상 채권단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에선 대주주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감자 비율에 차등을 둔다. 가령, 최대주주 금호산업(지분율 30.77%)의 주식 수를 일반 주주보다 더 줄여야 형평성에 맞다는 얘기다. 아시아나항공을 망가뜨린 책임을 져야 해서다.  

균등감자 실시하는 이유

하지만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형평성 논란을 일축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 무산과 재무구조 악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더 컸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라면서 “업황 부진에 따른 위기의 책임을 대주주가 지는 건 가혹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의 설명도 비슷하다. “대주주 지분은 매각 결정과 동시에 채권은행에 담보로 이미 제공됐다. 2019년 4월 매각 결정 이후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은 점, 거래종결을 앞둔 매각이 코로나19로 무산된 점 등을 고려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완전히 막혔으니 얼핏 설득력 있는 논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M&A 업계 관계자의 설명은 다르다. “과거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따라 대주주 차등감자를 강요당했던 기업의 오너라고 할 말이 없진 않을 거다. 업황 부진에 따른 구조적인 부실이라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이 순전히 코로나19만의 탓인가. 이 회사만 균등감자를 진행하는 건 형평성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의 특혜다.”

 

무슨 말일까. 대주주 차등감자가 시행된 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먼저 동부제철이다. 2014년 9월 이 회사에선 주주명부가 뒤바뀔 조짐이 감지됐다. 동부제철의 자율협약을 주도하던 채권단이 대주주 100대 1 차등감자를 결정하면서다. 당시 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동부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율 36.94%는 1%대의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동부그룹은 채권단의 조처가 너무 가혹하다고 맞섰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내고 감자를 강행했다.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인 이해관계자 간 손실분담 측면에서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는 대주주에 대해서는 차등감자를 적용해 소액주주의 피해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산업은행의 주장대로 오너의 패착이 있긴 했다. 동부제철 부실화의 주된 요인은 열연공장 신설이었는데, 이를 주도한 게 동부그룹 경영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황부진’이란 외부요인도 적지 않았다. 당시 한국 철강산업은 중국산 철강재 공습에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직전 해인 2013년 중국의 철강 수출은 6234만톤(t)으로 2009년(2457만t)에 비해 153.7% 늘어났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런 업황은 변수로 삼지 않았다. 2016년 현대상선에서 진행된 차등감자 역시 결이 비슷하다. 

산은은 2016년 현대상선 대주주에도 차등감자 결정을 유도했다. 당시 이 회사는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채권단의 지원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대주주 7대 1 차등감자로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율(20.93%)은 한자릿수(3.65%)로 급락했다. 

현대상선의 몰락 원인은 경영권 다툼을 하느라 세계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따라가지 못한 탓이 컸다. 2000년대 초반 왕자의 난 이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고, 현정은 회장이 부임한 후엔 KCC부터 현대중공업, 쉰들러까지 10여년간 지루한 경영권 다툼이 계속됐다. 

박삼구 전 회장의 책임론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에 따른 업황침체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당시 대형선사들은 덩치를 키워 해운 단가 인하를 주도하며 현대상선 같은 중하위권 선사들을 고사枯死시키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형 선박을 발주해 선박 규모를 키웠다. 한국 해운업계엔 그런 지원책이 없었다. 되레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을 파산시켰고 현대상선엔 가혹한 구조조정 잣대를 들이댔다. 

2013년 대주주 100대 1 차등감자를 당한 STX조선해양 역시 마찬가지다.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당시 STX 회장은 문어발식 확장의 대가를 ‘감자’로 지는 과정에서 20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등 세계불황에서 경영을 펼쳤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조선업이 호황을 계속 누렸다면 STX그룹이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사진=뉴시스]
조선업이 호황을 계속 누렸다면 STX그룹이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사진=뉴시스]

이처럼 이들 기업이 감자를 결정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업황 부진’이란 대외 변수가 뚜렷했다는 거다. 코로나19 영향만을 이유로 균등감자를 결정한 아시아나항공을 두고 특혜 논란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이 빚더미에 앉은 원인 중 하나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무리한 경영’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금호그룹의 재건 과정에서 동원되면서 급격히 부실해졌고, 끝내 시장의 매물로 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아시아나항공의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과 소액주주들은 왜 대주주가 더 많은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확산했다고 박 전 회장의 경영 패착이 사라지는 게 아닌 만큼 먼저 대주주가 투자금(보유 주식)으로 책임지는 게 올바른 순서”라면서 “다른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반드시 관철돼야 할 대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일반주주의 책임과 희생을 대주주와 동등한 무게로 강요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재무구조가 악화할 일도 없었고 매각도 완료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경영에 ‘만약’이란 없다. 코로나19와 무관하게 금호그룹과 오너 일가는 아시아나항공의 몰락을 야기했고, 실제로 몰락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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