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울리는 신종 피싱
레버리지 사기의 실체

주식투자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강하게 꿈틀거리던 개미들의 움직임도 여전하다. 문제는 그런 열풍의 틈새를 ‘사기꾼’들이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엔 신종 피싱이 우려되는 사기 수법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게 ‘레버리지 투자사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투자자를 울리는 레버리지 사기를 취재했다.

가짜 주식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만들어 피해를 키우는 사이버금융범죄가 확산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짜 주식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만들어 피해를 키우는 사이버금융범죄가 확산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3월 코로나19로 인해 증시가 무너진 후 본격 시작된 개미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국제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1~2019년 총 40조6000억원의 순매도세를 기록했던 개인투자자는 올 상반기 57조원의 순매수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611만명(예탁결제원·중복 집계 제외)을 기록했던 개인투자자의 수는 올해 1000만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3~5월 스마트폰 이용자(안드로이드 기준) 중 303만5403명이 증권사 앱을 새로 설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전망치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투자열풍의 틈새를 ‘사기꾼’들이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6721건이었던 사이버금융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1만542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 숫자는 올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투자금의 10배 빌려드립니다 = 최근 유행하는 수법은 주식 리딩방을 활용한 레버리지 사기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주식 리딩방을 만들어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그중 전략적으로 소개한 급등주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를 ‘VIP방’으로 유인한다. VIP방 입장 조건은 일반적인 리딩방과 다르다. 수십에서 수백만원의 가입비를 요구하는 리딩방과 달리 입장비가 없다. 레버리지 사기꾼이 요구하는 건 단 하나다.

자신들의 주식매매시스템인 HTS(홈트레이딩시스템)나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를 사용하라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시스템을 사용하면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돈을 빌려주겠다면서 유혹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증권사의 ‘신용융자거래’를 사용하면 연 5~10%의 이자가 발생하지만 우린 투자금의 10배의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가 없다.” 실제로 기자가 참여한 레버리지 리딩방의 상담원은 “100만원 정도의 소액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며 “증권사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거래 수수료만 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투자금이 부족하다고 느낀 투자자에겐 혹할 만한 조건인 셈이다.

■투자금은 법인통장으로 = 레버리지 사기꾼이 투자금을 받는 계좌는 ‘○○스탁’ ‘○○스탁론’ 등으로 개설한 법인통장이다. 증권사에 개설한 투자자 명의 계좌로 투자금을 이체해 거래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거래 방식에 의심을 품은 투자자가 있다면 그럴듯한 거짓말로 회유한다. 실제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레버리지 리딩방 상담원은 이렇게 말했다.

“VIP방 참여자는 주가를 움직이는 세력과 함께 투자한다. 고객 계좌로 투자금의 10배가 입금되고 난 다음에 갑작스럽게 큰 수익이 나면 금감원 조사를 받을 수 있다. 법인통장은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어 투자금을 법인통장으로 받는 거다.” 하지만 이는 ‘피싱 사기’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피해자의 돈을 빼돌리기 위해 대포통장으로 돈을 입금하게 하려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거다.

■전직 ‘증권맨’도 깜빡 = 레버리지 사기꾼의 말에 속아 투자금을 예치하면 피해자가 설치한 그들만의 HTS나 MTS로 투자금의 10배에 이르는 돈이 들어온다. 그 이후부턴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위는 가짜다. 사기꾼이 만든 HTS에선 시세만 보여줄 뿐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HTS가 증권사 모델을 모방한 가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치금의 10배에 이르는 투자금 역시 가짜(사이버머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레버리지 사기꾼들이 만든 HTS가 얼마나 정교한지 여기에 속은 전직 증권맨도 있다”면서 “최근엔 대형 증권사와 제휴를 맺는 업체라는 식으로 고객을 현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숫자 조작 행위와 손절매 = 문제는 레버리지 사기꾼들이 이런 손실을 ‘사기가 아닌 투자실패’로 여기게 만드는 데 능숙하단 점이다. 이들은 투자 전 피해자들에게 “레버리지 투자로 발생하는 손실은 고객이 예치한 투자금에서 먼저 빠져나간다”며 “주가하락으로 투자금이 원금의 10~20%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로스컷(손절매)이 이뤄져 추가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이 말은 사실일까. 피해자가 레버리지 사기꾼에게 100만원을 입금하고 10배인 1000만원의 레버리지를 받았다고 치자. 피해자의 투자금액은 총 1100만원이다. 투자 이후 주가가 떨어져 5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면, 레버리지 사기꾼들은 피해자가 최초 입금한 투자금 100만원에서 50만원을 차감한다.

추가 하락으로 손실이 80만~90만원으로 커지면 손절매를 하고, 투자자에겐 10만~20만원이 남는다. 로스컷을 액면만 보면, 주가 하락으로 인한 투자 손실이 원금은 물론 10배로 빌린 레버리지로 번지는 걸 막아주는 안전장치 같다.

하지만 로스컷은 피해자로부터 더 많은 투자금을 빼돌리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 투자 손실이라고 여긴 투자자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입금하면 같은 방법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돈을 편취한다. 이를 위해 주식 투자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도록 HTS의 숫자를 조작하기도 한다. 끝내 사기를 당했다는 걸 모르는 피해자가 숱할 뿐만 아니라 그 사기를 눈치채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행 따라 변하는 사기 수단 = 사실 주식 레버리지 사기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그 이전엔 선물옵션과 FX 마진(서로 다른 통화를 실시간으로 사고팔아 환차익을 얻는 외환거래) 사기에서도 레버리지 꼼수는 존재했다.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장은 “FX 마진 거래에서 성행했던 레버리지 사기가 최근 주식투자로 번지고 있다”며 “어떤 수법이 통하면 유행처럼 번지는 보이스피싱과 같은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버리지 사기를 투자 사기가 아닌 신종 피싱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사기를 당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피해자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레버지리 제공을 빌미로 피해자의 투자금을 편취하는 레버리지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레버지리 제공을 빌미로 피해자의 투자금을 편취하는 레버리지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규제 허점 파고드는 레버리지 사기 = 레버리지 사기는 규제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면서 성행하고 있다. 언급했듯 피해자들이 레버리지 사기가 신종 피싱인지 투자 실패인지 알아차리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레버리지 사기에 개인통장이 아닌 법인통장이 동원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이스피싱이 확산하면서 범죄에 사용되는 개인명의의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책이 마련됐다. 통장개설 후 20영업일 이내 다른 통장을 개설하는 걸 어렵게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법인통장

최근엔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대포통장을 양도·양수·대여했을 때 받는 처벌을 기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했다(2020년 8월 20일 시행). 하지만 법인통장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매출이 없는 신설법인이라도 사무실 임대차계약서만 있으면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 이런 허점 때문에 ‘○○스탁’ 등 비슷비슷한 이름의 법인이 같은 날 같은 대표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설립된 사례가 숱하다.

법률법인 자산의 조새한 변호사는 “ABC스탁, ABD스탁, ABE스탁 등 비슷한 법인이 같은 날에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설립된 사례도 있다”며 “대표자의 이름도 모두 같아 레버리지 사기에 필요한 통장을 만들기 위한 법인 설립 과정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명은 ‘○○스탁’이지만 신고한 업종은 의류 도매업이나 통신기기 판매업인 경우가 많았다”며 “레버리지 사기 업체가 법인 설립 과정이 허술하다는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 미진한 규제와 수사 = 레버리지 사기가 유행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금융당국과 사정기관이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금융당국은 레버리지 사기가 주식투자를 매개로 한 사기사건이기 때문에 손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레버리지 사기업체의 경우, 대부분 금융감독원에 신고·등록한 업체가 아니어서 규제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버리지 사기를 수사하는 경찰의 문제점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레버리지 사기 피해자 A씨는 “경찰에 사기 사실을 신고했지만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범죄에 사용됐다고 신고한 법인의 통장이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정미 단장은 “레버리지 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선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면서 “레버리지 사기 피해 사실을 전파해 피해자가 늘어나는 걸 막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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