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노조 향한 오해와 진실
2018년 GM의 약속에 ‘답’ 있다

“노조가 또 몽니를 부린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GM의 노사갈등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노조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한국GM의 경영 사정이 악화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산은 자금이 투입된 2018년 이후 한국GM의 상황을 살펴보면 노조가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GM본사와 한국GM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노조의 우려를 부추긴 면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GM 노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취재했다. 

한국GM 노사갈등의 핵심 이유는 불확실한 전망에 따른 우려를 해소할 만한 장기 플랜이 없다는 점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 노사갈등의 핵심 이유는 불확실한 전망에 따른 우려를 해소할 만한 장기 플랜이 없다는 점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이 지난 9월 21일 언급했던 부평1공장 투자계획을 보류했다. 투자 규모는 1억9000만 달러(약 2115억원). 한국GM 측은 신차생산을 대비한 설비를 개선하는 데 쓸 계획이었다. 미래발전방안을 내놓으라는 노조의 요구에 꺼내든 투자안이었는데, 투자를 보류한 이유도 ‘노조’ 때문이다. 

한국GM 노사는 지난 7월 22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진행해왔다. ‘덜 주려는’ 회사와 ‘더 받으려는’ 노조의 줄다리기는 3개월간 이어졌다. 하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끝내 노조는 지난 10월 말 쟁의행위(잔업ㆍ특근 거부, 부분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투자계획 보류로 맞받아쳤다.

한국GM 측은 “노조의 쟁의행위 때문에 7000대 이상의 생산 손실을 입었고 유동성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부평공장 투자와 관련한 비용 집행을 보류하고 재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한국GM 노조는 현재(19일) 4번째 부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한국GM의 경영정상화가 시급한 데다 코로나19 여파로 시장상황까지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이뤄진 노조의 쟁의행위에 긍정적인 시선이 있을 리 없었다. “회사가 어려운 와중에도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노조가 또 몽니를 부린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쏟아진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원인이 정말 노조의 이기심 때문일까.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노조는 탐욕에 취해 쟁의행위를 벌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임단협에서 한국GM 노사가 충돌한 이유는 임금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국GM의 ‘장기플랜’이었다. 

그동안 숱한 철수설을 여기저기 뿌려왔던 한국GM은 2018년 5월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GM 노동자들로선 ‘보장된 일감(생산물량 확보)’이 필요했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GM은 불투명한 미래를 보장하고 그간의 우려를 씻어낼 만한 장기플랜을 내놓지 않았다. 되레 그 반대였다. 단종되거나 생산중단을 앞두고 있는 모델이 적지 않음에도 이를 대체할 만한 신차 배정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재 한국GM에는 신차 생산공장이 3개 있다. 부평1ㆍ2공장과 창원공장이다. 부평1공장에선 지난 1월 출시된 트레일블레이저를 제조하고 있다. 부평2공장은 트랙스와 말리부를 만들고, 창원공장에선 스파크ㆍ다마스ㆍ라보를 생산한다. 이 가운데 다마스와 라보는 2021년 단종이 결정됐다. 트랙스와 말리부도 현재로썬 2022년까지만 생산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도 수요가 많다면 생산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게 한국GM의 입장이지만 장담할 수 없다. 

한국GM이 지난 3년여간 단종한 모델은 이미 4개(아베오ㆍ크루즈ㆍ올란도ㆍ캡티바)다. 2021년엔 단종모델이 6개로 늘어나고, 2022년엔 8개가 될 수도 있다. 잔존 가능성이 높은 모델은 트레일블레이저와 스파크뿐이다. 반면, 투입이 확정된 신차는 1대가 전부다. 현재 개발 중인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CUV)가 2023년부터 창원공장에서 생산될 계획이다.

문제는 부평2공장이다. 한국GM은 지난 9월 부평2공장엔 신차를 배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인데, 트랙스와 말리부의 생산이 중단되면 부평2공장의 일감은 ‘제로’가 된다. 한국GM 노조 안팎에 우려감이 확산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감이 사라지면 인력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GM 노조 측은 “부평2공장의 설비개선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회사가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일감을 매번 보장해줄 순 없다. 하지만 한국GM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지난 2018년 산업은행은 한국GM의 회생에 GM본사가 동참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7억5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수만명에 이르는 한국GM과 협력업체 노동자, 지역경제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한국GM의 생존을 보장하라는 산은의 요구에 GM본사도 화답했다. 당시 GM본사가 산은과 합의한 내용을 보자. “신차 개발과 설비투자를 위해 28억 달러를 투자하고, 신차 2종을 배정한다.” 여기에 한국GM도 5년간 15종의 신차를 출시해 경영정상화를 앞당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GM에서 단종을 앞두고 있는 모델은 많지만 신규 투입이 예정된 신차는 1대뿐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에서 단종을 앞두고 있는 모델은 많지만 신규 투입이 예정된 신차는 1대뿐이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한국GM의 경영정상화 계획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28억 달러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수 없다. 한국GM 관계자는 “공장 설비투자와 신차를 개발하는 데 쓰고 있으며, 창원에 짓고 있는 도장공장에도 28억 달러 중 일부가 들어갔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 배정을 약속한 신차 2종 역시 의문투성이다. 1종은 올 1월 출시된 트레일블레이저다. 나머지 1종은 아직 개발 중인 CUV 모델인데, 2023년 출시 예정이다. 그런데, 의문점이 많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그동안 한국GM은 연구ㆍ개발(R&D) 비용으로 연간 6000억원씩 썼다. 2018년 경영정상화 계획 발표 이후 2년여가 지났으니 1조원이 훌쩍 넘는 돈이 들어갔을 거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가 신차를 개발하는 데는 통상 3000억원(소형차)에서 5000억원(중형차)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까지 한국GM이 내놓은 결과물이 소형 SUV인 트레일블레이저 한대뿐이라는 건 조금 이상하다.”

그럼 5년간 15종의 신차를 출시하겠다던 한국GM의 약속은 어떨까. 2018년 5월 스파크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를 시작으로 이쿼녹스, 말리부, 카마로, 트래버스, 콜로라도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던 스파크와 말리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수입차다. 이는 한국GM의 매출을 늘릴 수 있을진 몰라도 공장의 일감을 확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2년여간 일감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GM과 GM본사의 노력이 사실상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한국GM 노사 갈등의 원인이 노조의 이기심에만 있는지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노조 때문에 한국GM이 철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많다”면서 “하지만 이는 철수를 염두에 두고 노조 반발을 기다리는 GM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GM이 말을 바꾸며 몽니를 부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철수는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GM본사는 2018년 산은의 비토권(주주총회 특별결의 거부권)이 소멸되자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그해 말엔 ‘패싱’ 논란을 빚으며 법인 분할을 밀어붙였고, 이듬해엔 한국GM에 맡기기로 했던 신차(콤팩트 SUV) 개발권을 중국에 넘겼다. 한국GM은 매번 사실무근이라며 논란을 일축했지만 결국엔 GM의 뜻대로 됐다. 

그렇다면 GM본사는 2018년 산은과 체결한 합의안을 지킬까.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부평1공장 투자 계획은 2018년 합의한 투자 계획의 일환인데, 이를 재검토 운운하며 압박하는 것도 우습다”면서 “이럴 때 필요한 건 철수를 부추기는 게 아니라 GM이 약속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감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GM의 몽니를 견제할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고,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은은 ‘불구경’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들리는 한국GM, 보고만 있어야 할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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