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과 렌터카 시장의 양극화

2018년 말 단기렌터카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장기렌터카가 이미 대기업의 전유물이 된 상황에서 단기렌터카라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중소렌터카 업체들은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났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단기렌터카 시장에선 여전히 중소렌터카 업체들의 곡소리가 흘러나온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와 SK의 렌터카가 중소기업의 땅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취재했다. 

단기렌터카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단기렌터카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렌터카는 소위 뜨는 산업이다. 2010년 25만7751대(등록대수 기준) 수준이었던 국내 렌터카 시장 규모는 지난 7월 100만대를 돌파했다. 10년 만에 4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연간 성장률을 따져보면, 평균 16.5%에 이른다.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렌터카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게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의 등장도 렌터카 시장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전기차를 타보고는 싶은데 구매하기엔 망설여지는 소비자들이 렌터카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도 렌터카 시장의 성장을 부채질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개인이동수단의 선호도가 높아졌고 렌터카가 부각됐다. 

이런 가파른 성장세 때문인지 렌터카 시장을 차지하려는 기업들의 각축전도 치열하다. 2위 사업자였던 SK렌터카가 3위 사업자 AJ렌터카를 인수해(2019년 1월) 단숨에 덩치를 키우자, 올해 들어선 1위 롯데렌터카가 한진렌터카를 사들이며 맞불을 놨다. 그 결과, 2018년 11.5%포인트 차이가 나던 두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1.9%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현재 국내 렌터카 시장은 롯데렌터카(22.9%)와 SK렌터카(21.0%)가 양분하고 있고, 남은 시장을 여신금융사(캐피털)와 중소사업자들이 나눠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렌터카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2018년 말 지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렌터카 시장을 대기업과 여신금융사가 독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답은 국내 렌터카 시장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렌터카는 크게 단기렌터카(일단위), 중기렌터카(월단위), 장기렌터카(연단위)로 나뉜다.

이중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건 1년 미만의 단기렌터카(월단위 중기렌터카 포함) 사업이다. 하지만 국내 렌터카 시장의 중심은 ‘장기’이고, 대기업도 사업의 80% 이상이 장기렌터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장기렌터카 위주, 중소사업자는 단기렌터카와 사고ㆍ보험대차가 중심이기 때문에 포지션이 서로 다르다”면서 “롯데렌터카와 SK렌터카의 점유율이 높아진 건 국내 렌터카 시장이 장기렌터카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대기업이 활개를 치고 있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단기렌터카와 장기렌터카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기 힘들다. 대기업이 장기렌터카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시장 지위를 높였다고 하더라도 그런 움직임은 단기렌터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가령,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자동차 구매대수와 보험계약 건수가 늘어나 가격경쟁력이 생기고, 영업력이 커진다. 이렇게 커진 가격경쟁력과 영업력은 장기렌터카에든 단기렌터카에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기업의 단기렌터카 사업의 규모가 그리 작은 것도 아니다. [※참고 : 단기렌터카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건 2018년 말이다. 대기업은 2018년 이전 단기렌터카 관련 사업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롯데렌터카가 지난해 차량렌털로 벌어들인 매출은 1조4083억원이다. 그중 단기렌터카 비중이 약 20%를 차지한다고 봤을 때 단기렌터카 매출 규모는 2800억원 수준이다. 자동차 등록대수로 따져도 전체(롯데렌터카 22만7214대)의 20%이면 단기렌터카가 4만대를 훌쩍 넘어선다. 

그렇다면 단기렌터카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할 대비책이 마련됐을까. 대기업의 공세 속에서도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줬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대책은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대기업이 단기렌터카 시장에 신규 진입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긴 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는 거다. 신규 진입과 확장을 못하게 된 대기업이 ‘M&A’를 통해 몸집을 키웠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규제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셈이다. [※참고 : 앞서 말했듯 롯데렌터카와 SK렌터카는 M&A를 통해 몸집을 키웠고, 이미 시장을 양분했다.] 

허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에이전트 채널’이란 편법을 활용하면 규제의 벽을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다. 에이전트는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사업자다. 이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차량을 받아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렌터카 사업을 한다. 기업엔 소속돼 있지 않지만 사실상 기업의 영업사원이나 마찬가지다. 

김진섭 전국중소렌터카협의회 회장은 “대기업들은 서로 덩치를 키우기 위해 차량 등록대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기업들은 이를 통해 골목골목을 파고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사업자들의 곡소리도 날로 커져가고 있다. 한 중소렌터카업체 대표는 “일(단위) 대여, 월 대여, 사고대차 모두 대기업이 잠식하고 있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중소사업자들이 많다”면서 “중소사업자들은 차를 살 때도 은행에서 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데, 대기업은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자본력에서 이길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가볍게 볼 만한 문제가 아니다. 예전엔 중소사업자들도 장기렌터카 비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장기렌터카는 대기업의 전유물이 됐다. 중소사업자들은 신용이 안 좋아 대기업으로부터 장기대여를 받지 못한 고객들을 주로 상대한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단기렌터카도 대기업의 전유물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주관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엄벌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규제기관이 아닌 동반위는 합의내용을 지키라고 권고만 할 수 있어서다. 렌터카 시장의 호황에도 중소사업자들이 환히 웃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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