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지선씨의 나누는 삶
제9회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 수상

​김지선씨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눔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김지선씨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눔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사진=천막사진관]

온종일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개그맨이다. 때론 웃고 싶지 않은 날도 있을 텐데…. 그는 오히려 “웃음 많은 자리에 가는 복 받은 직업인”이라고 말한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네 아이의 엄마가 된다. 어느덧 10년째 한부모·조손가정 아이들의 ‘어른 친구’가 돼주고 있다. 지난 5일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개그맨 김지선(49)씨의 이야기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활동을 하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김씨를 만나봤다. 

거동이 불편한 이웃들에게 30년째 도시락을 배달해온 이갑순(74)씨, 팥죽을 팔아 모은 돈으로 44년 동안 장애인을 도와온 김은숙(81)씨, 다른 세상으로 가는 순간까지도 소외받는 독거노인의 장례비용을 지원해온 김갑석(55)씨…. 올해로 9회째를 맞은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보건복지부ㆍKBSㆍ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주최) 수상자들의 면면이다. 133명(단체ㆍ기관 포함)의 얼굴 중엔 개그맨 김지선씨도 있다. 

김씨는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지만, 김씨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그만의 헌신’에 박수와 존경을 보낸다. 실제로 그는 헌신적인 나눔활동을 남몰래 이어왔다. 지난 10월엔 남편 김현민씨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멋대로 비꼬는 이들도 숱하다. 그래서 ‘선행善行’을 펼쳐놓고 뒤에서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다. 단단한 마음가짐이나 확고한 철학이 없다면 ‘헌신의 길’을 걷는 게 맘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다. 

더구나 김씨는 방송인, 개그맨 등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워킹맘’이자 아이 넷을 키우는 ‘다둥이 엄마’다. 하루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도 모자라, 기쁜 날도 슬픈 날도 누군가를 위해 ‘밝은 웃음’을 전달해야 할 텐데, 그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걸까. 

김지선씨는 지난 5일 ‘2020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사진 위). 시상식을 마치고 러빙핸즈 가족들과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김금옥 러빙핸즈 사무국장,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김지선씨, 김혜영 러빙핸즈 활동가.[사진=나눔국민대상 제공]
김지선씨는 지난 5일 ‘2020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사진 위). 시상식을 마치고 러빙핸즈 가족들과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김금옥 러빙핸즈 사무국장, 박현홍 러빙핸즈 대표, 김지선씨, 김혜영 러빙핸즈 활동가.[사진=나눔국민대상 제공]

밤바람이 부쩍 차가워진 11월 2일, 서울 마포구 초록리본도서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2010년부터 그는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에서 한부모ㆍ조손가정 아이들을 멘토링하는 등 후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초록리본도서관은 러빙핸즈가 운영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공간인데, 놀랍게도 김씨는 이곳의 관장이었다.

그날 오후 6시께, 막 방송을 마친 김씨가 초록리본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습니다!” 밝은 에너지가 도서관을 금세 채웠다. 초록리본도서관에 찾아온 청소년들과는 스스럼없이 일상을 공유했다. “오~ 오늘은 학생처럼 입고 왔네.(웃음) 그땐 정말 어른 같았어. 몰라봤잖아.” 긴 시간 함께한 ‘친근함’이 묻어났다. 

✚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부끄럽습니다. 함께 상 받으신 분들을 보니 제가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상을 받는다는 건 기쁜 만큼 부담도 큰 듯합니다. 이제 겨우 10년 했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나눔을 해야죠.(웃음)” 

✚ 10월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셔서 이슈가 됐어요. 
“사실 오래전부터 장애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알게 됐어요. 원하는 단체에 지정 기부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좋은 계기가 됐어요.” 

✚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를 지원하셨나요. 
“장애인의 사회 진출을 돕는 곳이에요. 장애인도 얼마든지 사회구성원으로서 일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좌절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분들에게 ‘당신도 충분히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 누군가에게 이렇게 헌신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 시청자분들의 ‘사랑’을 받아서 이렇게 개그맨으로 살 수 있었죠. 일하면서도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 어떤 도움들이었나요. 
“1990년대 데뷔 초 의상비가 없었어요. 당시엔 스타일리스트도 없었고, 모든 옷을 직접 사 입어야 했죠. 그때 한 의류브랜드 담당자 분이 ‘열심히 사는 지선씨가 너무 예쁘다’면서 아무 조건도 없이 의상을 지원해주셨어요. 그분 덕분에 무대에 오를 수 있었죠. 그렇게 제가 받았던 것들을 어디론가 다시 흘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러빙핸즈 활동은 언제 시작하시게 됐나요. 
“넷째 아이를 출산(2009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웃음). 그때 우연한 계기로 러빙핸즈를 알게 됐어요.” 

✚ 러빙핸즈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 보니 여러 NGO 단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홍보대사로 활동해 달라는 거였죠. 하지만 늘 무언가 아쉬웠어요. 홍보대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물질적 지원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발만 담그는 것’에서 그치고 싶진 않았어요.” 

✚ 러빙핸즈 멘토링은 어떤 점이 달랐나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때 내게 믿고 의지할 어른이 한명만 있었다면 덜 방황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만큼 아이들에겐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줄 어른이 필요해요. 러빙핸즈는 아이들에게 ‘어른 친구’가 돼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해주고, 1회성에 그치지 않는 일, 제가 원하던 거였죠.” 

✚ ‘다산의 여왕’으로 잘 알려져 있고, 출산장려 활동도 많이 하시죠. 가정의 중요성을 잘 아시는 듯합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가정의 역할이 중요해요. 사랑을 받고 또 주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하죠.” 

✚ 하지만 가정이 와해되거나 울타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그렇죠. 많은 사람이 아동 문제라고 하면 학대나 폭력을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가정에서 무관심이나 소외로 상처받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요. 부모가 자기 사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관심 갖지 못하는 거죠. 이렇게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린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받게 되죠.” 

김지선씨는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 공동관장을 맡고 있다. 한달에 한번 ‘김지선 아줌마와 책읽기,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초록리본도서관.[사진=천막사진관]
김지선씨는 러빙핸즈 초록리본도서관 공동관장을 맡고 있다. 한달에 한번 ‘김지선 아줌마와 책읽기,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초록리본도서관.[사진=천막사진관]

✚ 그럼에도 사회 안전망은 부족한 듯해요.  
“그래서 러빙핸즈와 같은 단체가 필요해요. 아이들에게 친구가 돼주는 거죠. 뭔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온정’을 나누는 거예요. 주기적으로 만나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게 가족이구나’ ‘사랑이구나’ ‘따뜻함이구나’를 알게 해주는 거죠.” 

✚ 멘토는 어떻게 다른가요. 
“멘토는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하죠. 아이의 말에 집중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사랑의 말’이 나오게 돼요.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이죠. 이렇게 세상에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엇나가지 않아요.” 

✚ 네 아이를 키워온 경험이 멘토링에도 도움이 되나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건, 아이들은 모두 다 다르다는 거예요. 개성도, 생각도 다르죠. 그래서 기다려주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러빙핸즈는 아동 문제가 터지고 난 후에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예방’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사전에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거다. 김씨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고, 소를 잃기 전에 튼튼하고 따뜻한 외양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웃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초록리본도서관에도 그의 흔적이 많다. 매월 한차례씩 지역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김지선 아줌마와 책 읽기, 토크 콘서트’를 이곳에서 진행한다. 초록리본도서관에 기부한 책만 해도 1000여권이 훌쩍 넘는다. 

✚ 한달 일정, 1년 계획을 세울 때에도 러빙핸즈 활동이 1순위라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아무래도 가족과의 시간이나 일의 기회를 내려놔야 했죠. 하지만 그만큼 제가 얻어가는 게 많아요.” 

✚ 스스로도 성장한다고 느끼시나요.
“물론이죠. 예컨대 초록리본도서관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함께 동화책 읽기를 시작했어요. ‘성대모사’나 ‘재밌게 이야기’하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웃음) 동화책을 읽고 나서 함께 토론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 어떤 이야기인가요. 
“동화 속 인물의 사건이 내게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었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지혜로운 대답들이 나와요. 그때마다 제 생활을 돌아보고 뭔가가 차오르는 걸 느낍니다.” 

✚ 멘토 활동이 어렵지는 않나요. 
“일련의 교육이 필요하지만, 어렵지 않아요. 멘토링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 내서 함께 밥 먹고 눈 마주치고, 귀 기울여주는 거죠.” 

✚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나요. 
“말 잘하는 달변가나 ‘길’을 안내해줄 사회사업가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작은 일은 아니죠.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몇십년도 투자하잖아요. 멘토링은 멘토에게도 가치 있는 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열정적으로 나눔 활동을 하시는 원동력이 뭔가요. 
“사람이 꿈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길을 몰라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많죠. 제가 인생 선배로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즐거워요. 아이들의 눈빛이 열정으로 반짝이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는 듯해요.” 

✚ 하지만 기부금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나눔활동’이 위축된 것도 사실이에요. 
“정말 안타까워요. 나눔을 하신 분들에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나눔을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우리 주위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극소수 사람들의 잘못으로 이들이 소외받아선 안 되겠죠. 좋은 방향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만큼 나눔 문화가 확산하길 바랍니다.” 

✚ 언제까지 나눔 활동을 계속하실 건가요. 
“끝이 없을 것 같아요(웃음). 물질적으로 도울 여력이 없다면, 정신적으로 나눔을 실천할 생각이에요.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줄 수도 있겠죠. 손을 잡아줄 수도 있고요. 그렇게라도 나눔을 계속하지 않을까요.” 

글 =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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