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회사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안 우려 분석

‘상장회사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안’을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거세다. 재계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헤지펀드의 침략을 돕는 규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금융지주회사는 벌써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됐을 것이란 비판도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상장회사 감사위원 분리선출안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취재했다. 

감사위원 불리선출안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향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사진=뉴시스]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상장기업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이 회사의 지분율은 최대주주·특수관계인 40.0%, 헤지펀드 30.0%, 소액주주 30.0%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기 전엔 회사가 선임한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이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각각 3%가 적용됐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10.0%, 나머지 특수관계인 10명의 지분이 각각 3.0%라면, 총 3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3%에서 3%로 줄어든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 기준이 ‘합산 3%’로 바뀌기 때문이다. 문제는 헤지펀드가 가진 지분 30.0%는 의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헤지펀드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지분을 10개로 쪼개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아닌 주주는 지분의 3%(개별 기준)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헤지펀드가 교묘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거다.

정치권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 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 감독법 제정안)’을 향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국내 상장사를 대표하는 한국상장사협회와 코스닥협회는 공정경제 3법에 따른 규제 강화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경영 부담이 커져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필두로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산업연합포럼·코스닥협회 등 6개 경제단체는 공정경제 3법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재계가 느끼는 위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중 가장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이다. 감사위원은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기업의 활동과 재무제표 등을 감독·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회계감사를 위해 재무제표 등을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회사로부터 영업에 관한 사항을 보고받는다. 경영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감사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안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어떻게 될까. 먼저 개정 법안의 요지를 보자. “상장사가 주주총회에서 뽑은 이사 중 선출하던 감사위원(1인 이상)을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한다.”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경우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산해 3%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다(일반주주는 단순 3%).”

개정안을 통해 강화된 내용은 감사위원 1명을 분리해서 선출하고,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것이다. 예컨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0%라고 하더라도 3%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3% 룰’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감사위원 선임에 헤지펀드나 소액주주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계의 우려는 여기서 시작한다. 재계는 기업의 영업에 관한 사항과 경영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감사위원이 헤지펀드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 회사의 기밀을 유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영권 분쟁을 조장해 기업의 경영을 위태롭게 만들어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먹튀’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이 의결됐다.[사진=연합뉴스] 

상법 개정안으로 헤지펀드와 소액주주의 입김이 강해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계가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이 기업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공개’에 따르면 감사위원회의 원안 가결률은 99.4%를 기록했다. 감사위원의 기업 견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상법 개정안에 떠는 재계

감사위원 1명으로는 기업을 견제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주식시장의 대표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피200 소속 기업의 평균 감사위원 수는 3.3명이다. 감사위원 1명이 바뀐다고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준서 동국대(경영학과) 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로 헤지펀드가 추천한 감사위원이 선출되더라도 3명 중 1명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며 “감사위원 한명이 딴지를 놓는다고 해서 전체적인 방향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거수기로 불리는 다른 이사의 수는 한 기업에 7명 이상이라 충분히 견제가 가능하다”며 “재계의 우려는 매우 과도하다”고 꼬집었다.

감사위원이 기업 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허무맹랑한 얘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기업의 기밀과 기술을 빼내는 게 목적이라면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임직원을 스카우트하든가 매수하는 것이 빠르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감사위원을 추천하고, 주총에서 표대결까지 펼쳐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다. 감사위원이 이런 일을 벌인다면 이는 개인의 일탈이지 법의 부작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외국 기업은 동종 업종의 인사를 감사로 선출하는 경우도 많다. 재계의 우려라면 그런 기업에선 모두 기술 탈취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감사위원 선임 시 관련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도 마련돼 있다.”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해 단기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산업경영학) 교수는 “헤지펀드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기업을 공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금융지주회사는 이미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재계의 논리라면 주인이 없는 금융회사는 벌써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돼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지주의 회장은 여전히 제왕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상법 개정안이 도리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재벌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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