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의 불투명한 사업
그들은 왜 ‘수의계약’ 고집했나

# 대한적십자사는 비영리 특수법인이다. ‘혈액사업’ ‘대북민간사업’ ‘재난구호’ 등 공공사업을 맡고 있다. 직원 복무관리엔 국가공무원 규정을 준용하고, 계약을 맺을 땐 국가계약법을 따른다. 예산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적십자회비와 헌혈로 모인 피를 활용해 만든 돈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대한적십자사가 사업을 진행할 땐 공공성은 물론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 

# 최근 이 기관이 벌인 두건의 사업을 보자. ‘헌혈송’을 만드는 데 2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고, 3분짜리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용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데 1억5400만원을 투입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수의계약으로 진행했고, 사업자도 똑같았다. ‘공개입찰’이 만능은 아니지만, 애초부터 계약의 상대방을 정해두고 사업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적십자사 내부에서도 “공개입찰을 통해 예산을 줄일 수 있었음에도 그런 노력 없이 수의계약을 진행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데 투입된 예산 중 절반은 ‘혈액관리본부’의 돈이 투입됐다. 혈액관리본부는 국가 혈액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다. 이 부서의 예산은 국민들이 헌혈한 피로 구성되는데, 대한적십자사가 이를 두루뭉술한 프로젝트에 투입했다는 얘기다. 대한적십자사 안팎에서 “사업목적도 불투명하고, 효과도 뚜렷하지 않은 사업에 왜 혈액관리본부의 예산까지 동원했는가”란 불만이 새어 나오는 이유다. 

# 대한적십자사 측은 “혈액관리본부의 돈이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분담할 수 있고, 코로나19로 후속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뿐 사업성이 없거나 실효성이 부족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병원회계는 적자가 심각해서 대한적십자사 회계 내에서 그나마 여유가 있는 본사 일반회계와 혈액회계를 분담해 사업을 추진했다”고 털어놨다. 넉넉지 않은 예산에도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은 인정한 셈이다. 

#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준수해야 할 ‘공기업ㆍ준정부기관 예산집행 지침’의 취지도 무색하게 만든 조치였다. 이 지침은 ‘조달ㆍ구매예산에 대해선 수의계약 축소, 경쟁 확대 등을 통해 관련 예산의 절감을 추진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헌혈송과 뮤직비디오를 만든 이는 국내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하지만 왜 하필 그여야만 했는지는 대한적십자사만이 알고 있다. 작곡가는 잘못한 게 없지만, 그 역시 대한적십자사의 이상한 계약방식 때문에 손해를 봤다. 

#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한적십자사의 수의계약 논란을 단독 취재했다. 

혈액관리본부가 뮤직비디오 제작 사업에 7700만원의 예산을 소요했다.[사진=뉴시스]
혈액관리본부가 뮤직비디오 제작 사업에 7700만원의 예산을 소요했다.[사진=뉴시스]

“피를 나눠요 사랑을 나눠요. 비움 채움 나눔으로 기쁨, 우린 하나가 되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헌혈송’ 가사다. 그릇된 편견을 없애고 대국민 헌혈 참여를 독려하자는 취지로 제작됐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김광석)’ ‘이 밤의 끝을 잡고(솔리드)’ ‘너의 뒤에서(박진영)’ ‘I Believe (신승훈)’ 등 숱한 히트곡을 탄생시킨 김형석씨다.

대한적십자사는 2018년 1월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트펌팩토리ㆍ아트펌컴퍼니와 ‘사회공헌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김형석씨는 아트펌팩토리의 프로듀서이자 아트펌컴퍼니의 대표였다. 대한적십자사는 두 회사와 MOU를 맺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젊은층과 더욱 편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나눔 문화 콘텐트를 기부받기로 했다.”

“헌혈송을 아시나요”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2018년 11월, 헌혈송이 첫선을 보였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헌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개선하기 위해 (헌헐송을) 만들었다”면서 “헌혈로 얻을 수 있는 나눔의 가치와 즐거움을 노래를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공기관의 평범한 활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헌혈송 제작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대한적십자사와 김씨 측 사이에 돈 관련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헌혈송은 ‘제작 실비’ 수준의 금액을 받은 김씨의 재능기부로 탄생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측은 이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가 사달이 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입수한 ‘2018년 헌혈송 제작 관련’ 감사보고서를 보자. 헌혈송 제작을 추진한 혈액관리본부 헌혈증진국 국장과 팀장이 지난해 11월 각각 ‘경고’ 처분을 받았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헌혈송 저작재산권 양도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계약부서에 계약을 요청하지 않고 재무원(재무업무 담당자)에 보고하지도 않은 채 수요부서(헌혈증진국)에서 직접 계약서에 직인 날인해 부서장 전결로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을 체결했다. 헌혈송 제작과 관련한 사업계획 및 예산 수립의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관련 업무를 소홀히 했다.” 쉽게 말해, 실무진이 순리대로 계약하지 않고 헌혈송 제작을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대한적십자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예산을 집행할 땐 공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혈액관리본부를 예로 들면, 재무기획과 내부감독을 담당하는 ‘재무원(간부직원)’의 직인이 계약서에 찍혀있지 않으면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국민들의 소중한 피로 만들어진 대한적십자사의 예산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취지에서다. 그런데도 실무부서인 헌혈증진국은 재무원 직인을 생략하고 전결專決 처리된 약정서를 김씨 측과 작성했다. 제작실비 금액도 두루뭉술하게 정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2018년 헌혈송 사업을 진행할 때 실무팀에서 제작 실비 5000만원을 언급했는데, 이를 계약부서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실비 지급에 차질을 빚었다”면서 “대한적십자사 본부 내부조사에서 문제를 지적했고 현재는 정상적인 계약절차를 거쳐 종결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와 아트펌컴퍼니ㆍ아트펌팩토리는 올해 2월 헌혈송 정식계약서를 작성했다. 헌혈송이 발표된 지 1년3개월이나 흐른 뒤였다. 5000만원으로 협의되던 제작실비도 2000만원으로 감액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계약과정에서 발생한 실무진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당시 사업 전반을 지켜본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수의계약 과정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재무원에 보고도 없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제작실비 지급이 제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한적십자사 본부의 자체감사가 진행됐고, 담당자들이 문책을 당했다. 그때 예산이 축소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말 그대로 수의계약 촌극이었다.” 

촌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헌혈송을 작곡한 김씨 측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실비를 받지 못한 사이, 양측은 또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도 수의계약이었고, 혈액관리본부가 나서 지갑을 열었다. 이 과정 역시 숱한 의문에 휩싸여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의문❶ 왜 또 수의계약인가 = 지난해 9월 대한적십자사와 아트펌컴퍼니ㆍ아트펌팩토리가 또다시 뭉쳤다. 이번엔 ‘글로벌 나눔 캠페인을 위한 창작곡 재능기부 및 영상콘텐트 제작’ 약정서에 각각 사인했다. 약정서 제목에서 드러나듯, 대한적십자사가 아트펌컴퍼니ㆍ아트펌팩토리에 발주한 용역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헌혈송을 만들 때처럼 김형석씨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곡을 제작한다. 그다음 해당 곡을 바탕으로 영상 콘텐트(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대한적십자사는 “뮤직비디오 제작 비용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사이드 바이 사이드(Side by side)’란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제작비용은 총 1억5400만원. 혈액송 때와 비교하면 예산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사업 스케일도 어마어마해졌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단순히 대한적십자사의 위상을 높이는 로고송이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 내 특별 조직인 혁신사업개발추진팀이 자신들의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은 문화 공적개발원조사업(ODA)의 중심사업 중 하나였다. 정부 부처인 외교부와도 MOU 를 맺고 긴밀하게 움직였다. 
이 때문인지 국내 가수뿐만 아니라 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각국의 유명가수가 녹음에 참여했고, 뮤직비디오에 모습도 비쳤다.

‘2019년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부대행사인 ‘한ㆍ아세안 문화혁신포럼’의 주제곡으로도 꼽혔다. 2019년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 10개국 정상과 밀착 스킨십을 하며 ‘신新남방정책 2.0’의 토대를 다지는 중요한 행사였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아시나요”

외교부는 이 행사의 성과사업 중 하나로 ‘예술과 함께 하는 미래(Growing with arts)’ 캠페인을 추진 중이었다. 한국과 아세안 개발도상국의 미래 세대가 문화 콘텐트로 협력하자는 취지의 ODA였는데, 대한적십자사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양측은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캠페인 증진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럴듯한 성과를 낸 것 같지만, 이 역시 뒷말이 무성했다. 이 사업은 대한적십자사와 외교부가 협력하는 장기프로젝트인 ‘문화 ODA’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사업의 결과물인 ‘사이드 바이 사이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는 2019년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끝난 후 어디에도 활용되지 않았다.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아세안 아동ㆍ청소년의 문화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대한적십자사의 포부도 뜬구름 잡는 청사진에 불과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2019년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후 진행된 사업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1억원이 훌쩍 넘는 예산을 들인 사업이 ‘2019년 단 한순간’에 끝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업의 계약 방식도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헌혈송 사업과 비슷했다. 입찰공고를 하지 않은 채 ‘수의계약’으로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정부나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몇몇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공개경쟁을 통해 사업체를 선정하게 돼있다. 더구나 이 사업은 예산규모가 1억5400만원이나 됐다.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물품 및 용역 계약은 ‘추정가 5000만원 이하’의 경우에만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의문❷ 수의계약 사유 합당한가 = 물론 5000만원이 넘는 모든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불가피하게 수의계약을 진행해야 한다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는 김형석씨 측과 ‘사이드 바이 사이드’ 사업 관련 약정서를 작성하면서 ‘수의계약 특별 사유서’도 만들었다. 자사 법무팀에 법률 자문을 구한 결과였다. 

당시 법무팀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 사업 관련) 약정서는 그 실질이 영상물 제작계약에 해당한다. 계약금액이 1억5400만원이므로 공개입찰 대상이다. 하지만 수의계약을 체결할 경우엔 그 사유를 특정해야 한다. 국가계약법에 정해진 수의계약 사유를 특정해 수의계약 사유서를 첨부해야 한다.”

대한적십자사는 ‘해당 물품의 생산자가 1인뿐인 경우로서 다른 물품을 제조하게 하거나 구매해서는 사업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수의계약 사유로 선택했다. 쉽게 말해, 반드시 김형석씨와 그의 회사인 아트펌컴퍼니ㆍ아트펌팩토리와 계약을 진행해야만 사업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공언한 셈이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작곡한 게 김형석씨였고, 이를 기초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기 때문에 생산자가 1인인 수의계약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만든 게 김형석씨 1인이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대한적십자사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에 뮤직비디오 제작 사업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 않았다. 출발은 ‘제로베이스’였다. 김형석씨가 작곡한 ‘사이드 바이 사이드’란 노래는 약정 후에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김씨는 약정 후에 재능기부를 통해 작곡을 했고, 대한적십자사는 이를 토대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데 돈을 댔다. 노래를 작곡할 수 있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역량을 갖춘 회사라면 누구든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준수해야 할 ‘공기업ㆍ준정부기관 예산집행 지침’의 취지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지침은 ‘조달ㆍ구매예산에 대해 수의계약 축소, 경쟁 확대 등을 통해 관련예산 절감을 추진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국가계약법 전문 법조인은 “처음부터 김형석씨와 계약할 의도로 사업을 진행했고, 수의계약 사유는 나중에 끼워 맞춘 것처럼 보인다”면서 “곡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일을 ‘1인’만이 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적십자사 측이 수의계약의 사유 중 하나인 ‘‘해당 물품의 생산자가 1인뿐인 경우로서 다른 물품을 제조하게 하거나 구매해서는 사업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주 변호사(법무법인 젠)는 “특정인의 기술ㆍ품질이나 경험ㆍ자격을 필요로 하는 용역 계약일 경우에만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유”이라면서 “음원 제작 능력이 특정한 범위로 한정된다고 할지라도 작곡가가 세상에 2인 이상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제한ㆍ지명 경쟁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정말 수의계약 말곤 방법 없었나

물론 대한적십자사엔 김형석씨 측과 계약할 동기는 충분했다. 김씨가 선뜻 작곡 재능기부의 뜻을 밝힌 데다 혈액송을 제작한 ‘레퍼런스(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지칭하는 업계 용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국내서 손에 꼽히는 스타 작곡가란 점도 고려됐을 거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가 영상제작 사업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하지도 않은 채 수의계약을 밀어붙였다는 점은 문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품질을 제시할 만한 회사끼리 경쟁구도를 만들었다면 사업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면서 “공개입찰이 아니더라도 경쟁 구도를 만들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면 100가지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문❸ 왜 혈액 예산 썼나 = 더 황당한 건 전체 사업비 1억5400만원 중 절반인 7700여만원이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지갑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특별회계 예산은 국민의 헌혈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가 정한 혈액가격만큼 병원에 공급하고 받는 수익금으로 충당된다. 이 때문에 대한적십자사 내 다른 회계와도 분리돼 있다. 이런 혈액관리본부의 예산이 ‘사이드 바이 사이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데 쓰였다는 얘기다. 

대한적십자사 본사의 예산은 국민의 소중한 기부로 모인 적십자회비가 근간이다.[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본사의 예산은 국민의 소중한 기부로 모인 적십자회비가 근간이다.[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혈액관리본부의 회계가 분리돼 있긴 하지만 본사 공통의 사업비는 협의에 따라 분담하고 있다”면서 “이 사업이 ‘인도주의 가치 보급’이라는 대한적십자사 전체의 사업 목적과도 연관돼있고 ‘헌혈 및 공공의료사업과의 연계’도 추후 고려한 만큼 혈액관리본부 예산을 쓰는 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혈액업계 관계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뮤직비디오와 혈액사업 간의 접점을 찾긴 어렵다”면서 “혈액관리본부 내부에선 ‘아세안 아동에게 헌혈이라도 받을 셈이냐’는 비아냥도 없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한적십자사의 회계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 회계는 총 ‘본사 일반회계’ ‘혈액회계’ ‘병원회계’ 등 총 3대 회계로 분류되는데, 이번 사업비용은 본사 일반회계와 혈액회계가 1대 1 동률로 부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적자가 발생하는 병원회계 예산은 동원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본사 일반회계와 혈액회계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적십자회비가 덜 걷히고 있고, 헌혈인구도 감소하고 있어서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예산도 없는 상황에서 왜 불투명한 사업에 1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의문❹ 접점 없는 ODA 사업의 민낯 = 냉정하게 따지면 ‘사이드 바이 사이드’ 사업은 대한적십자로선 안 해도 되는 프로젝트였다. 대한적십자사가 문화 ODA 사업을 진행해본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실패에 따른 리스크도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낯선 사업을 위해 1억5400만원짜리 뮤직비디오를 찍고, 여기에 혈액관리본부의 회계까지 동원했으니 본사 내부에서도 뒷말이 많았다. 

사업을 추진했던 실무자의 항변이다. “사업의 과정과 결과에 미흡한 점은 있었다. 다만 혁신사업개발추진팀은 본사 내부의 임시 조직이다. 대한적십자사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내자는 야심 찬 취지로 구성됐다. 이번 뮤직비디오 사업 역시 한국의 문화를 콘텐트로 활용해 개도국 아동ㆍ청소년의 문화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선한 의도로 기획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아세안 국가와의 소통이 줄어들면서 활동 반경도 쪼그라들었다.”

실제로 이 사업의 ‘후속 스텝’은 불발된 상황이다. K-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를 활용해 아세안 개도국의 사회안전망 강화 사업에 징검다리 구실을 하겠다는 취지의 사업이었지만, 이후로 추진된 사안이 없다.  

결론만 따지면 1억5400만원의 돈으로 만들어진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수는 9만6000회에 그쳤다. 2000만원이 든 헌혈송의 유튜브 조회 수는 7000회에 불과하다. 이 돈의 대부분은 국민의 피로 만들어졌고, 공교롭게도 ‘수의계약’이란 방식을 사용했다. 과연 누구의 문제일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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