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OP? STORY!
TV만 틀면 트로트 나오는 이유

트로트를 주제로 삼은 TV방송 프로그램이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오죽하면 TV만 틀면 트로트가 나온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다른 분석도 나옵니다. TV로 성공한 트로트 신드롬에 되레 ‘TV의 위기’가 숨어 있다는 겁니다. 20~30대가 유튜브, OTT 등으로 빠져나간 빈자리를 트로트의 주요 타깃인 중장년층이 메웠을 뿐이라는 겁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TV만 틀면 트로트가 나오는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찾아봤습니다.

방송 업계에서 트로트가 대세가 된 이유로 주요 시청자층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방송 업계에서 트로트가 대세가 된 이유로 주요 시청자층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고속버스에서나 듣던 트로트가 일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트로트 열풍’입니다. 지니뮤직이 2019년 2월부터 1년간의 자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상위 200위권 음원에 트로트 장르의 음원이 진입한 횟수는 전년 동기 대비 5.8배나 늘었습니다.

이처럼 트로트가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TV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트로트 노래들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른 게 TV에서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한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지난해 5월 종영된 ‘미스트롯(TV조선)’이었습니다. 그저 그런 경연 프로그램이란 전망이 쏟아졌지만 미스트롯은 최고 시청률 18.1%(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트로트의 흥행에 불을 지폈습니다.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 건 올해 초 방영한 ‘미스터트롯(TV조선)’이었습니다.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마지막 회에선 무려 35.7%를 기록했습니다.

미스터트롯의 파급력은 꽤 큽니다. 방송에서 나온 노래 대부분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톱100에 진입했습니다. ‘어르신 노래’란 평가를 비웃듯 젊은 트로트 가수들은 세련된 무대를 선보였고, 이런 점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지쳐 있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때문인지 요즘 들어선 TV만 틀면 트로트가 나옵니다. 이런 현상이 단지 트로트가 대세가 됐기 때문일까요? 혹시 TV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일단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19 국민여가활동 조사’의 결과를 보시죠.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으로 ‘TV 시청’은 71.4%(복수응답)를 차지해 10개 항목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참고 : 이 통계에선 응답자들이 고른 여가생활 상위 10개 항목 중 상위 5위 내에 ‘TV 시청’이 포함된 데이터만 집계했습니다.] TV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진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볼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령별로 나눠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10대(42.3%)와 20대(46.5%)의 TV 시청 선호도가 40대(76.3%)·50대(80. 0%)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이런 차이는 ‘TV 시청’을 1순위로 꼽은 통계만 놓고 보면 더 극명해집니다. 40대와 50대 중에서 TV를 1순위로 선택한 응답자는 각각 45.9%· 80.0%였던 반면 10대와 20대는 10.2%· 14.5%에 불과했습니다.

10~20대가 TV를 즐겨보지 않는다는 건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TV 말고도 볼거리가 많은 플랫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플랫폼은 유튜브입니다. 한국인의 유튜브 앱 월평균 이용 시간은 9월 기준 29.5시간으로, 카카오톡(12시간)의 2배가 넘습니다(아이지에이웍스). 그중 10대의 이용시간은 48.1시간으로 가장 많고, 20대가 40.5시간으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넷플릭스·티빙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이용하는 20대도 많습니다. 주 시청층이 20대(65.4%)인 OTT는 TV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17년 36.1%였던 OTT 이용률은 지난해 52.0%로 2년 사이에 15.9%포인트 상승했습니다(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 2명 중 1명이 OTT를 이용하고 있다는 얘긴데, TV가 OTT 측에 10대·20대 시청자를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듭니다.

20~30대 시청자들이 TV를 즐겨보지 않는다는 건 방송 프로그램들의 시청률만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며 8월에 종영했던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tvN)’는 최고 시청률 7.3%을 기록하며 종영됐습니다. 젊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20~30대 시청자를 공략한 드라마였지만 두자릿수 시청률을 내지 못했죠.

반면, KBS의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최고 시청률 49.4%(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말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중장년층이 즐겨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TV 앞에 앉는 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릴 만합니다.

이렇다 보니 트로트가 TV에서 트렌드가 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방송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송국 PD들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타깃의 연령층”이라면서 “어르신의 전유물과 같은 트로트를 내세운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 건 지금 TV를 보는 시청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층 시청자들이 TV를 떠나가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이 부각되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콘텐트가 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트로트 장르를 즐기는 연령층이 점점 확대하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손민정 한국교원대(음악교육)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트로트의 특징 중 하나는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어투로 가사를 표현한다는 점이다. 직설적인 트로트에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최근 트로트가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면서 젊은이들도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게 됐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중장년층 시청자뿐만 아니라 젊은층 시청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미스터트롯 관련 정보 중 10대와 20대가 게시하는 정보가 전체의 44.8%·24.5%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2월 기준). 다른 연령층의 통계를 덧붙이자면, 40대의 점유율은 6.8%였고, 50대는 1.8%에 불과했죠. 그렇지만 이 데이터만으로 젊은 시청자 상당수가 트로트 프로그램을 즐겨본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고연령층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숙한 젊은 시청자들이 게시물을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10대~20대의 점유율이 높아졌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트로트의 열풍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로트가 강력한 흥행 티켓임이 증명되자 다른 채널에서도 ‘트로트의 민족(MBC)’ ‘트롯신이 떴다(SBS)’ 등 트로트를 주제로 한 방송을 내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트롯의 차기작(미스트롯2)도 12월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드롬은 ‘TV를 시청하는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 ‘TV가 올드해졌다’는 분석과도 맥이 같습니다. TV를 통해 전파되는 트로트 열풍에 아이러니하게도 TV의 위기가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