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의 늪에 빠진 기업들
과도한 규제완화의 폐해
상장ㆍ임상 기준 높여야

국내 바이오산업이 사기와 기망으로 얼룩졌다. 코오롱티슈진ㆍ메디톡스ㆍ신라젠ㆍ헬릭스미스 등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기업들이 잇따라 조작ㆍ배임ㆍ횡령 논란에 휘말리면서다. 일부 기업의 일탈로 보기엔 바이오기업들의 모럴해저드 문제가 유독 심각하다. 그럼 원인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과도한 규제 완화로 공적 시스템이 허술해졌기 때문이라고 꼬집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바이오기업이 몰락한 이유를 분석했다.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바이오기업들이 잇따른 모럴해저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바이오기업들이 잇따른 모럴해저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4년 11월 19일 코스닥시장 제약업종의 시가총액은 14조7679억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2020년 11월 19일, 제약업종의 시총은 48조705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6년 새 34조원이나 불어난 셈이다. 

코스닥 제약업종에 속한 기업은 대부분 혁신 바이오기업으로 거듭나길 꿈꾸는 유망주다. 2015년께 불어닥친 바이오 붐과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이들의 덩치를 한껏 키웠다. 금융시장의 뭉칫돈이 바이오산업으로 흘렀고, 정부는 규제 완화로 화답했다. 

커진 건 몸집만이 아니었다. 지난 6년간 코스닥 제약업종의 기업도 52개에서 101개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달콤한 과실에 이끌린 숱한 기업들이 바이오산업에 출사표를 던지고, 기술특례 상장제도가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결과다.[※참고 :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수익성은 크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위해 상장 기준을 완화해 주는 제도다. 2005년에 처음 도입됐고, 2015년엔 중소기업의 상장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문턱을 더 낮췄다.]

문제는 바이오기업들이 불어난 몸집의 값어치를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알찬 결실을 맺을 때도 됐건만 현실은 그 반대다. 업계 간판스타로 떠올랐던 바이오기업 중 일부는 모럴해저드 논란에 휘말렸고, 국내 바이오산업은 ‘사기와 기망의 도가니’란 비판에 직면했다. 

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한 기업으로 주목을 받은 코오롱티슈진의 몰락은 단적인 예다. 2017년 11월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코스닥에 상장했지만 3년 만에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해 불거진 ‘인보사 성분변경 논란’ 때문이다. 인보사의 주요 성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코오롱티슈진이 상장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숨기고 허위 자료를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한차례 상폐 결정을 내렸던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코오롱티슈진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1년의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위원회는 지난 4일 2차 심의에서도 상폐로 의견을 모았다. 앞서 제기됐던 의혹들이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16일 다시 한번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과를 뒤집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국내 1호 보툴리눔 톡신 제제(일명 보톡스) ‘메디톡신’의 제조사 메디톡스를 둘러싼 논란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메디톡스는 2012~2015년 허가받지 않은 원액으로 메디톡신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시험성적서까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0월엔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은 제품을 해외에 불법 유통한 사실까지 적발됐다.

코오롱티슈진과 메디톡스뿐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논란에 휩쓸린 기업은 수없이 많다. 신라젠은 그중 한곳이다. 11월 안에 상폐 여부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 원인은 경영진의 횡령 혐의. 신라젠 경영진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금 없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때 코스닥 시총 순위 2위까지 올랐던 헬릭스미스도 모럴해저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구ㆍ개발(R&D)에 써야 할 주주들의 투자금을 지난 5년여간 고위험상품에 투자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최근엔 400억원가량을 부실펀드에 투자했는데,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헬릭스미스가 2861억원 규모(이후 1061억원으로 정정)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9월 17일 직후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게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밖에도 한올바이오파마는 임상시험 결과를 왜곡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씨엘바이오는 퓨젠바이오와의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성적서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전에도 바이오기업의 사기의혹과 모럴해저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엔 그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일탈이 아닌 시스템 문제

그렇다면 이를 일부 기업의 일탈 행위로만 봐야 할까. ‘업력이 짧은 바이오기업들의 경험 부족과 소통 부족에 따른 오해’란 일부의 옹호론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런 의견에 ‘거리두기’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 완화로 인해 허술해진 시스템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은 적절한 통제기제가 무력화된 상황”이라면서 “이는 바이오산업을 육성한다는 이유로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한 탓이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바이오산업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바이오산업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규제 완화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곳은 상장 기준과 임상허가 기준이다. 앞서 말했듯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상장 문턱을 대폭 낮추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숱한 바이오기업들이 이를 통해 주식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엄밀한 평가가 진행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기술특례 상장제도에서도 바이오기업은 유독 더 기준이 낮다. 서류 몇장으로 통과를 시키는데 이것만으론 기업의 실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바이오기업은 정보 접근이 어렵고,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장심사가 더 까다로워야 한다. 바이오산업 특성상 실적이 없어도 자본이 몰릴 수 있다고 하는데, 애초에 검증되지 않은 회사가 상장하고 투자금을 받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상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내실이 없는 기업들이 허위ㆍ과장 정보로 투자자들을 홀리면 정작 필요한 곳에선 돈이 돌지 않을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건실하게 연구하는 기업들이 박탈감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이는 바이오기업을 이끄는 경영진의 마음에 불법ㆍ탈법행위를 저질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방향성을 훼손한다는 건데, 국내 바이오산업은 이미 이런 상황이 20여년간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불법행위와 모럴해저드로 논란을 빚은 코오롱티슈진ㆍ메디톡스ㆍ신라젠ㆍ헬릭스미스에서 증발한 투자금은 18조6221억원에 달한다. 코오롱티슈진과 메디톡스는 4조원을 훌쩍 웃돌았던 시총이 지난 19일 각각 4896억원, 1조503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신라젠 시총은 10조3562억원에서 8666억원으로 무려 9조4896억원이 불탔고, 헬릭스미스는 3조원에 달했던 시총이 8030억원으로 감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돈이 다른 제대로 된 기업에 들어갔으면 이미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규제를 완화하면 더 많은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면 사모펀드들은 기업의 리소스(자원)를 제대로 보고 평가해서 내실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

또 다른 규제 완화의 폐해는 허술한 임상허가 절차다. 성분이 바뀐 인보사가 손쉽게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인력을 충원해 관리ㆍ감독ㆍ평가를 철저히 하고, 허가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회는 임상 2상에서도 조건부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기대를 모았던 바이오기업들의 잇따른 모럴해저드 논란. 이를 초래한 건 과도한 규제 완화에 따른 공적 시스템의 붕괴다.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규제 완화가 바이오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게 잘못됐다는 말일까.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디테일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콘셉트”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바이오 경쟁력을 진짜 높일 거라면 불나방에 돈을 퍼줄 게 아니라 중간 과정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기초의학을 강화해야 한다. 그게 시장을 선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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