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이 흉내 낸다고 오렌지 되랴
레몬이 흉내 낸다고 오렌지 되랴
  • 김필수 대림대 교수, 고준영 기자
  • 호수 416
  • 승인 2020.11.26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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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의 Clean Car Talk
실효성 없는 한국형 레몬법

레몬법은 자동차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1975년 미국에서 제정된 법이다. 우리나라에도 2019년 도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레몬법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지난 2년 가까이 레몬법이 효력을 발휘한 적은 한차례도 없다. 왜일까. 설익은 한국형 레몬법에 필요한 조건들을 살펴봤다.

국내에 레몬법이 도입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효력을 발휘한 적은 거의 없다.[사진=뉴시스]
국내에 레몬법이 도입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효력을 발휘한 적은 거의 없다.[사진=뉴시스]

2019년 1월, 우리나라에도 ‘레몬법(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도입됐다. 레몬법은 새 차를 구매한 이후 중대한 하자가 2회 이상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이상 발생했을 경우 자동차 제조사에 교환ㆍ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제조사 중심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레몬법이 도입된 건 분명 반가운 소식이었다. [※참고 : ‘레몬법’은 달콤한 오렌지인 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를 닮은 신 레몬이었다는 비유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레몬법이 시행된 지 1년 10개월여, 현재까지 레몬법에 따라 자동차의 교환이나 환불이 이뤄진 사례는 전무하다. 하자가 발견된 차량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연간 수백건의 교환ㆍ환불 요구가 있었음에도 실제로 성사된 건 3~4건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제조사와 소비자의 뒷거래로 이뤄진 합의였다. 레몬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얘기다.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레몬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레몬법의 시초는 미국(1975년 제정). 우리나라의 레몬법도 미국을 벤치마킹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미국의 법체계는 소비자 중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대부분 기업에 유리하고 소비자에겐 불리하다. 미국에선 레몬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환경이 마련돼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를 간과한 채 흉내만 냈으니 우리나라에서 레몬법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엔 있고 우리나라엔 없는 레몬법의 전제조건은 뭘까. 첫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이는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반사회적인 불법행위를 했을 때 손해액 이상의 배상액과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게 하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문제를 일으켜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에 굳이 법을 지키려는 기업이 적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차원이 다른 입증 책임이다. 미국에선 소비자가 교환ㆍ환불을 요구했을 때, 기업이 차량에 하자가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직접 밝혀야 한다. 제조사는 나서서 입증할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소비자가 승소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셋째 조건은 소비자 편에 설 공공기관의 유무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자동차에서 동일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면 공공기관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조사에 돌입한다. 제조사로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그런 공공기관이 없다. 소비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한국소비자원이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소비자원이 할 수 있는 건 권고 조치뿐이라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기업의 입증 책임, 소비자를 먼저 돕는 공공기관 등이 있는 미국에선 신차 불량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적극 나서 보상하고 문제를 보완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미국이 갖고 있는 세가지 조건 중 어느 것 하나 없는 우리나라에선 제조사가 굳이 나서 교환ㆍ환불을 해줄 필요가 없는 셈이다. 겉치레뿐인 우리나라의 레몬법이 무용지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레몬법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태생적 결함도 있다. 신차계약서에 교환ㆍ환불 의무를 명시해야만 레몬법이 적용된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결함 때문에 레몬법이 적용되지 않는 제조사도 많다. 설익은 레몬법을 발효한 혹독한 대가다. 

레몬법은 앞으로도 ‘사문화 상태’로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기본조건이 갖춰져야만 소비자 보호란 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텐데, 갈 길이 너무 멀다. 레몬법을 지금부터라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글=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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