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흑심
누군가의 흑심
  • 김미란 기자
  • 호수 416
  • 승인 2020.11.2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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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연필展
➊Alan Eglinton, “Yes, No, Maybe” ➋김수강, Pencils ➌승효상, 수졸당 설계도 ➍차영석, Something_s-64
➊Alan Eglinton, “Yes, No, Maybe” ➋김수강, Pencils ➌승효상, 수졸당 설계도 ➍차영석, Something_s-64

소설가 김훈은 원고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글을 쓴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의 건축철학이 시작된 수졸당의 건축 설계도를 연필로 완성했다. 화가 김학량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던 부모님이 평생 사용해온 농기구를 연필로 쓱 그렸다. 사진작가 김수강은 검 프린팅(Gum Bichromate Printing) 기법으로 연필에 독특한 존재감을 부여했고, 화가 김은주는 연필의 선을 켜켜이 쌓아 검은 꽃을 피웠다.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알란 에글린턴(Alan Eglinton)에게 연필은 사랑이다. 그는 연필로 한국어를 습작해 사랑하는 이에게 청혼편지를 썼다. 

스마트폰이 메모를 대신하는 시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연필을 고집한다. 많은 이들은 디지털 시대가 오면 종이책이 사라질 거라고 했지만 어떤가. 종이책은 아직도 우리 곁에 소중한 친구로 남아있다. 연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필기도구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지만 연필은 연필 나름대로 영감을 주는 존재로 우리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과 책, 사람과 사람, 삶과 예술을 잇는 공간 ‘큐레이터의 아틀리에49(Curator’s Atelier49)’가 개관 전시로 예술가들에게 영혼의 단짝인 ‘연필’의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시의 출발은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였다. 이 책의 목차는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등 쓰고 지우는 행위로 이뤄져 있다. 연필이 짧아지고 지우개똥이 쌓이는 반복을 통해 그의 글이 탄생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에게 연필은 치열한 전투를 함께 하는 전우이자, 무기다. 

‘예술가의 편지’ 전시에선 연필로 쓴 육필원고와 몽당연필, 연필로 그린 건축 설계도, 연필을 찍은 사진, 예술가들이 수집한 연필 등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인 아틀리에49의 김소희 디렉터는 “예술가의 손끝에서 흑심을 통해 표출되는 에너지와 역동성은 쌓여가는 몽당연필과 비례한다”며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예술장르에 녹아 있는 연필의 힘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작고 사소하지만 연필의 위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편지’ 전시는 오는 12월 22일까지 서울 양천구 신월동 큐레이터의 아틀리에49에서 열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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