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이버대-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원격 레슨

러시아 모스크바와 대한민국 서울에 각각 피아노 한대씩을 놓는다. 한쪽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다른쪽 건반이 똑같이 움직인다. 누르는 무게, 음량, 음색까지 그대로 되살려낸다. 6시간 시차에도 0.25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서울사이버대 피아노과 학생들이 모스크바의 명문 음대 교수진의 생생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시공간을 초월한 특별한 강의를 더스쿠프(The SCOOP)가 들여다봤다.

모스크바에 있는 피아노를 치면, 서울에 있는 피아노 건반이 똑같이 움직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모스크바에 있는 피아노를 치면, 서울에 있는 피아노 건반이 똑같이 움직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피아노 귀신이 따로 없었다. 손을 대지 않았는데 건반이 저절로 눌렸고, 다리도 없는데 페달이 내려갔다. 강북구 미아동 서울사이버대 A동 5층 스튜디오에 놓인 피아노는 사람 없이 쇼팽의 구슬픈 멜로디를 연주했다. 이 기이한 무인無人 피아노의 정체는 ‘야마하 디스클라비어(Disklavier)’다. 연주자가 없어도 데이터만 있으면 스스로 작동하는 피아노다. 

건반 아래쪽에 달린 작은 셋톱박스 모양의 디지털 장치가 신통방통한 ‘무인 연주’의 비결이다. 여러 대의 피아노가 제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네트워킹 시스템’만 있으면 건반과 페달이 작동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신호를 받은 각각의 피아노는 똑같은 연주를 한다. 이 방식을 교육으로 응용한 게 ‘리모트 레슨(Remote lesson) 기술’이다. 11월 26일 오후 3시 서울사이버대 스튜디오에선 이 기술을 활용한 강의가 펼쳐졌다. 


놀랍게도 건반을 누른 이는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의 쉐파노프(Chefanov) 교수였다. [※참고 :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은 ‘차이콥스키 음악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이 학교의 초대 교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서울에 있는 피아노 건반이 그의 연주에 맞춰 똑같이 움직였다. 반대로 나경민(가명ㆍ30대) 학생이 건반을 누르면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연습실에 놓인 피아노가 멜로디를 울렸다. 쉐파노프 교수는 이를 듣고 연주방법을 조언했다. 바다와 국경, 6시간의 시차를 초월한 특별한 교육이었다. 

연주곡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연습곡 작품번호 10-3. 쇼팽 특유의 서글픈 감정이 배어있으면서도 다양함과 화려함이 절정을 이루는 곡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쉐파노프 교수는 나경민 학생이 건반을 누를 때마다 다양한 피드백을 쏟아냈다. “건반을 누르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페달을 깊게 밟았어요.” “좋은 연주지만 더 가볍게 쳤으면 합니다.”

쉐파노프 교수가 ‘익스큐즈 미’를 외친 뒤 직접 시범을 보였다. 나경민 학생은 눈을 반짝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장인匠人의 연주를 눈앞에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정혜 서울사이버대 교수(피아노과ㆍ학과장)는 “피아노 레슨은 현장감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많은 음악학도가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데, 우리 학교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무작정 현지에 가서 돈과 시간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수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시공간 초월한 ‘원격 레슨’

실제로 ‘야마하 디스클라비어’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는 강도와 세기, 속도를 그대로 재현한다. 페달의 미묘한 조작감도 세밀하게 되살려낸다. 시차도 0.25초로 체감하기 어렵다. 국경을 넘나드는  원격 수업임에도 섬세한 소통이 가능했던 이유다. 쉐파노프 교수 역시 강의 내내 편하면서도 쉽게 감정을 공유했다. “쇼팽은 굉장히 로맨틱한 작곡가입니다. 이 곡엔 고향 바르샤바를 떠나는 그의 무거운 마음, 첫사랑을 남기고 가야 하는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경민 학생도 여기에 몰입하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감정만이 아니었다. 쉐파노프 교수는 때론 감탄사를 내뱉고, 때론 미간을 찌푸렸다. 나경민 학생이 서울에서 연주한 쇼팽 연습곡의 음색과 음질이 그의 귀에 그대로 전달된 탓이었다. 그때마다 쉐파노프 교수는 섬세한 코칭을 아끼지 않았고, 나경민 학생의 손놀림은 갈수록 완숙해졌다. 

나정혜 교수는 “마이크와 스피커 소리를 통해 들리는 연주가 아닌 주법奏法까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다”면서 “오프라인 강의를 카메라로 찍어서 영상을 올리거나 화상수업을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사이버대는 2015년 3월 피아노과를 처음 개설했다. 전국 17개 사이버대 중 최초다. 아마추어 연주자에게도 피아노 공부의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여서인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주부, 피아노 학원 강사, 학교 교사 등이 학생으로 지원했다.  

이 학과는 경제적 사정이나 형편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한 이들에겐 재도전의 장으로 통하기도 한다. 온ㆍ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방식을 구축해 이론 지식은 물론 실기 능력도 탄탄히 쌓을 수 있어서다.


처음 피아노과가 문을 열었을 땐 13명에 불과했던 학생이 지금은 400여명에 이르는 이유다. [※참고 : 블렌디드 러닝은 두가지 이상의 방법을 결합한 학습을 뜻한다. 서울사이버대 피아노과의 경우, 이론은 온라인 강의 중심으로 하되 실기 수업은 온ㆍ오프라인에서 병행하고 있다.]

나정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러시아 모스크바와 연계한 원격 레슨은 학생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기에 적절한 교육입니다. 살아있는 음악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코로나19로 얼룩진 한 해를 보내고 있어서인지 많은 학생들은 ‘음악이 더 절실해졌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끔 힘껏 조력하겠습니다.” 

그때였다. 러시아에서 건너온 마법 같은 멜로디가 서울사이버대 강의실에 또다시 들렸다. 이를 들은 나경민 학생이 건반을 쳤다. 레슨은 시공을 초월했고, 멜로디는 그 사이를 흘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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