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화장품과 스타트업의 한계

맞춤형 화장품. 언뜻 스타트업에 적합한 업종일 것 같다. 작은 매장에서 원료를 혼합하는 그림이 그려지기 마련이어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화장품을 만들려면 전문자격증을 가진 조제관리사가 있어야 하고, 설비도 필요하다.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똬리를 튼 이유다. 그곳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이 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시행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시행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3대 화장품 수출국가로 도약하겠다.” 지난해 12월 5일 정부는 ‘미래 화장품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 4대 화장품 수출국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낯선 플랜이었지만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서 프랑스·미국 등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중국 현지 기업들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세계 3대 수출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능성’ ‘맞춤형’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세계 최초로 신설·시행하는 ‘맞춤형 화장품 제도’였다. 맞춤형 화장품은 개인별 피부 진단을 통해 고객 맞춤형으로 제조하는 화장품이다. 여기엔 맞춤형으로 화장품을 제조할 조제관리사가 필요한데, 정부는 “맞춤형 화장품 제도를 통해 원료를 혼합·소분 및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조제관리사 제도를 도입하면 신규 일자리(5000명)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로부터 두달여가 흐른 올 2월 22일, 드디어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시험이 치러졌다. 식약처가 처음 실시한 이 국가자격시험엔 전국에서 총 8837명이 응시해 2928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은 33%. 최근엔 두번째 시험까지 치러졌다. 응시자의 수에서 보듯 맞춤형 화장품은 국내외를 막론한 화장품 업계의 뜨거운 이슈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 로레알은 2015년 랑콤 브랜드를 통해 맞춤형 파운데이션을 제작해주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피부색이 다양한 미주 지역의 소비자를 잡겠다면서 론칭한 서비스다.

국내에선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이 일찌감치 맞춤형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2004년 피부 컬러, 유·수분을 진단한 후 원하는 색상과 향, 질감, 추출물까지 선택해 제조해주는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를 일부 매장에서 실시했다.

올 1월엔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피부 특성과 얼굴 크기 등을 고려해 3D프린팅 방식으로 맞춤 마스크팩을 제작하는 시스템도 선보였다. LG생건은 2017년부터 자회사(CNP코스메틱스)를 통해 맞춤형 세럼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정부도 2016년 이후 맞춤형 화장품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며 담금질을 해왔다.

그럼에도 맞춤형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아직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맞춤형 화장품 시장은 50억원 규모다. 화장품 전체 시장 규모가 16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협소한 시장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숙제도 많다. 맞춤형 화장품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란 한계를 갖고 있다. 맞춤형 화장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려면 제조설비를 갖추고 전문인력을 고용해야하기 때문에 1년 후를 내다보기 어려운 스타트업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맞춤형 화장품을 제조하기 위해 피부를 분석하고 진단해야 하는 것도 스타트업엔 쉽지 않은 일이다. 안전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좋은 원료, 좋은 향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혼합할 경우 갖가지 피부질환 또는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조제관리사가 현장에서 제품을 제조할 때, 위생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도 현재로썬 알 수 없다.

지난해 스킨케어 브랜드 리메코스(REM ACOS)를 론칭한 올리포유코스메틱스의 김기원 대표가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분자생명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개인마다 제각각인 유전자가 피부에 영향을 준다는 사전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맞춤형 화장품은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였다. 때마침 화학을 전공한 후배가 “맞춤형 화장품 사업을 한번 해보자”면서 손을 내밀었고, 김 대표는 힘을 합쳤다.

하지만 흥미와 현실은 엄연히 달랐다. 피부타입, 피부고민, 유·수분 레벨별에 따른 개인맞춤형 화장품을 그해 5월 론칭했지만 시장의 벽은 높았다. ‘스킨 실마리’란 구독 서비스는 정착하지 못했고, 크라우드 펀딩역시 깜짝 실적을 내는 데 머물렀다. “맞춤형 화장품을 찾는 고객이 많으면 감당하기 어렵더라고요. 수요가 증가하면 수작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었죠. 그렇다고 설비를 맘 놓고 갖출 수도 없었어요. 스타트업에 여력이 있을 턱이 없었죠.”

이런 이유로 김 대표는 전략을 바꿔 ‘스킨케어 브랜드’를 선보였다. 리메코스의 대표 제품인 PRA 시리즈는 ‘편안하게 빛나는 밤’이란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슬로건을 내세워 색다른 포지셔닝을 꾀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닥을 다진 다음 맞춤형 화장품에 다시 한번 도전하겠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하고 싶은 걸 실현하기 위해선 자금·인력·시간·네트워크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단 걸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살아남아 지속성을 확보하는 겁니다. 스킨케어 브랜드를 낸 것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고요. 그러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업체 중 60% 이상이 이익감소 또는 적자를 기록했다. 화장품 시장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창업은 쉽지만 그걸 지속하는 건 어려운 환경이다.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인 맞춤형 화장품은 더더욱 그렇다. 올리포유코스메틱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린 이미 출발선에서 발을 뗐습니다. 급성장을 바라지 않습니다. 살아남아 단계별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야죠. 쉽지 않은 시장인 건 맞지만 우리 같은 스타트업도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수년간 쌓아온 유전 진단 지식에 몸으로 체득한 시장 원리까지 더해졌으니 생존 확률이 처음보단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그는 도전했고, 벌써 ‘재도전’을 꿈꾸고 있다. 시장이 응답하는 건 어쩌면 다음 문제다.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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