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의 특별한 무대 

몹쓸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의 온기溫氣가 사라진 무대. 그 위에 61명의 학생이 차례로 섰다.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은 이들의 목소리가 객석을 아름답게 울렸다. 인생 2막을 모색하는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의 특별한 무대에선 ‘진심’의 소리가 굽이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들의 이색 스토리를 들어봤다.

11월 21일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사진=서울사이버대 제공]
11월 21일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사진=서울사이버대 제공]

고요한 무대.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흐른다. 멋진 드레스를 걸친 중년의 성악가가 걸어나와 노래를 부른다. 가곡 ‘님이 오시는지’의 노랫말이 아름답게 퍼진다. 그냥 노래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가락’이다. 11월 20~21일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완성된 특별한 공연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공연명은 ‘우리들의 노래’. 서울사이버대 성악과가 학과 개설 3주년을 맞아 개최한 음악회였다. 학생들의 무대경험도 쌓고 실력도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이틀간 세차례 공연에 걸쳐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 61명이 차례로 고난도 노래를 열창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 슈만의 ‘헌정(Widmung)’, 글룩의 ‘오 나의 감미로운 사랑(O del mio dolce ardor)’ 등 클래식 오페라 공연장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곡들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공연이 잇달아 취소 또는 연기되는 가운데 열린 특별한 무대였다. 300석 규모의 아트센터 객석은 한자리씩 띄우고 앉은 관람객이 채웠다. 

무대에 올라 갈고닦은 실력을 뽐낸 학생들의 목소리도 특별했다. 굴곡 많은 인생을 걸어온 듯 깊은 울림을 보였다. 이승현 서울사이버대 교수(성악과ㆍ학과장)는 “20대부터 60대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연령대의 재학생이 있다는 게 우리 학과의 특징”이라면서 “그중 40~50대 여학생의 비중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고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정식 고등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한 사이버대는 17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중 성악과가 있는 학교는 서울사이버대가 유일하다. ‘성악’이란 학문이 실습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비대면 중심 수업의 교육 효과가 일반 예술대학의 오프라인 수업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현 학과장은 이를 ‘고정관념’이라고 꼬집었다. 눈앞에서 실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성악가를 양성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꼭 온라인 교육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1대 1 레슨’ ‘1대 3 레슨’ ‘마스터클래스’ 등 오프라인 실기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비대면 수업이 예술교육에 부적합한 방식이라고 속단해선 안 됩니다. 실제로 우리 학과는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대학이 익숙지 않은 언택트 교육을 하느라 허둥지둥하는 사이 이미 체계적으로 준비된 성악이론 콘텐트와 온라인 레슨, 그리고 철저한 방역 속에 진행된 오프라인 레슨 덕분에 음악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북서울꿈의숲 울린 ‘아베 마리아’

학생들이 체감하는 교육의 질은 월등했다. 올해 성악과에서 6학기째 재학 중인 진소연(가명ㆍ50대)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처음 입학할 땐 정말 몰랐습니다. 성악의 ‘시옷’자도 모르던 우리들이 드레스를 차려입고 무대 위에서 완창을 해낼 거라곤요. 떨렸지만 막상 무대 위에 오르니 평상시의 내 모습을 잊게 되더군요. 노래를 부르면서 그제야 삶의 주인공이 됐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학생들마다 달랐다. 40대 주부 이슬기(가명)씨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했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전공은 트럼펫이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이씨의 마음 한편엔 늘 아쉬움이 있었다. KBS 9시 저녁 뉴스 직전에 편성돼 있던 가곡 프로그램 ‘내 마음의 노래’를 어릴 적부터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지만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노래는 딴따라고, 악기를 다루는 게 진짜 예술’이란 케케묵은 편견 때문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뒤늦게 서울사이버대에 입학한 슬기씨의 재능은 새롭게 빛을 내고 있다. 이곳에서 성악을 다시 전공한 슬기씨는 현재 음악치료사의 길을 밟고 있다. 음악의 리듬이나 감성을 활용해 신체나 심리를 치료하는 일이다. 슬기씨는 말했다. “음대를 졸업하긴 했지만 성악은 기초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나날이 실력이 쌓이는 게 신기했죠. 대학의 체계적인 온ㆍ오프라인 교육 과정 덕분이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론 졸업하는 게 싫을 정도입니다.”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은 온·오프라인이 혼합된 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사진=서울사이버대 제공]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들은 온·오프라인이 혼합된 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사진=서울사이버대 제공]

막연하게 노래를 좋아했던 최민영(가명ㆍ40대)씨도 사이버 공간에서 꿈과 기회를 찾았다. 지역 문화센터의 노래 강사로 활약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던 민영씨는 ‘다음 단계’를 부여받지 못했다. 비전공자란 꼬리표는 숱한 기회를 차단했고, 자격지심만 쌓여갔다.

그러던 2019년 최씨의 남편이 서울사이버대 성악과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인터넷 공고를 알려준 다음 인생의 결이 달라졌다. 민영씨는 수업을 들으며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을 실감했다. “아마 제가 노래를 좋아한단 이유로 20대에 성악을 공부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예요. 입시생들의 성악은 전쟁터나 다름없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배우는 성악에는 성역이 없어요. 잘하든 못하든 탐구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란 걸 알게 됐죠.”

6학기째 서울사이버대에서 성악을 공부 중인 정희선(가명ㆍ50대)씨의 사연은 더 드라마틱하다. 가정주부의 삶을 살다 병을 얻었고, 요양을 했음에도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희선씨는 버킷리스트(죽기 전 하고 싶은 일)에 ‘노래’를 적었다. 

버킷리스트의 벅찬 실현

우연찮게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그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들어 입학을 준비하긴 했지만, 몇번을 망설였다. 음악 교육을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배운 적도 없는데 건강까지 나쁘다보니 ‘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그런데 목 건강 유지와 컨디션 조절이 필수인 성악을 학습하다보니 자연스레 건강도 좋아지더군요.” 

3년 전 입학할 때만 해도 강의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힘겨워했던 희선씨는 졸업을 앞둔 지금 4~5층의 계단도 척척 오갈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나이나 환경을 따지고, 경제적인 이유로 음악 공부를 엄두도 못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럴 필요가 없죠. 누구든 포기하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서울사이버대에서 성악을 배운 학생들의 미래는 제각각이지만 꿈은 같다. 노래를 잘 하는 일이다. 코로나19란 몹쓸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국민들의 마음이 위안을 받을 수 있게끔 말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